잠룡의 침묵과 날아오르는 시간

가을바람이 차갑게 살결을 스치는 저녁, 붉게 물들어가는 한강을 바라보며 문득 마음속에 묵직한 질문 하나를 던져봅니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의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는가.” 눈앞의 강물은 아무런 말이 없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수많은 생명이 숨을 죽인 채 저마다의 내일을 준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문득 오래전 펼쳐보았던 《주역(周易)》 건괘(乾卦)의 첫 구절이 가슴 속으로 잔잔하게 밀려드는 밤입니다.
우리는 흔히 세상을 바꿀 만한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이들을 ‘잠룡(潛龍)’, 즉 ‘물속에 깊이 잠겨 있는 용’이라 부르곤 합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전의 유력한 리더나 대권 주자들에게 붙는 이 근사한 수식어 뒤에는, 사실 주역이 건네는 엄중하고도 서글픈 경고가 숨어 있습니다. 주역은 잠룡을 소개하자마자 ‘물용(勿用)’, 즉 ‘지금은 절대 쓰지 말라’며 단호하게 제동을 거냅니다. 물속에 은거하는 존재는 아직 하늘을 품을 만한 진정한 용의 덕성도, 거친 비바람을 견딜 역량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역의 시선으로 보면, 준비되지 않은 채 서두르는 열정은 ‘진정한 용’이 아닌 그저 무모한 치기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떠합니까. ‘물용’의 미학을 잃어버린 현대 사회는 잠룡들에게 숨 고를 시간조차 허락지 않습니다. 속도전과 효율성이라는 잔인한 잣대 위에서, 세상은 아직 여물지 않은 젊은이들과 리더들을 너무나 쉽게 무대 위로 등 떠밉니다. 자본과 미디어가 만들어낸 조급증은 내실을 다지기도 전에 화려한 성과부터 증명해 보이라고 독촉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겉모습만 화려할 뿐,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고 마는 ‘설익은 잠룡’들의 부작용을 매일같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주역이 잠룡에게 내린 진짜 지침은 외로움 속에서 철저히 자신을 낮추고 내면의 단단한 근육을 키워내라는 은인자중(隱忍自重)의 시간인데도 말입니다.
이 서툴고 부족한 잠룡이 차가운 물속에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깎아내고 부단히 노력할 때, 비로소 세상은 그를 향해 ‘괄목상대(刮目相對)’의 경이로운 눈빛을 보내게 됩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장수 여몽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가슴을 뜨겁게 만듭니다. 오직 칼만 쓸 줄 알았던 무식한 여몽에게 주군 손권이 배움을 권했을 때, 그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밤낮으로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훗날 그의 깊어진 눈빛과 학식을 본 재상 노숙이 깜짝 놀라자, 여몽은 엷은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비란 모름지기 사흘만 떨어져서 만나도, 눈을 비비고 다시 대해야 하는 법입니다.”
그 눈부신 변화는 결코 하루아침에 찾아온 요행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자신을 무시하고 지나칠 때, 홀로 등불을 켜고 눈물로 훈련을 거듭했던 잠룡 시절의 지독한 자기 성찰이 있었기에 가능한 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스턴트식 성공 신화에 중독된 현대인들은 이 '과정의 고통'을 생략하려 듭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볼 만큼의 치열한 내적 변화 없이, 그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스펙과 포장지에만 매달리는 서글픈 풍경이 도처에 가득합니다.
그렇게 긴 어둠과 침묵의 터널을 지나 최고의 역량을 갖춘 용은 마침내 푸른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릅니다. 이것이 바로 주역이 말하는 최고의 경지, ‘비룡재천(飛龍在天)’입니다. 세종대왕 시절, 새로운 나라 조선의 건국 정당성을 아름다운 우리 가락으로 노래했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역시 이 비룡재천의 정신을 고스란히 빌려왔습니다. ‘날아오르는 용이 하늘에 있다’는 그 웅장한 선언은, 단순히 권력을 쥔 통치자의 거만한 외침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성스러운 주역의 권위를 빌려, 고단한 백성들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통치자의 엄숙한 다짐이자, 새로운 시대를 향해 바치는 간절한 ‘오마주’였습니다. 진정한 비룡의 비상은 사리사욕이 아닌 공공의 선(善)을 향해 있을 때 비로소 거룩해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비룡의 화려한 날갯짓에만 감탄할 뿐, 그 과정에 숨겨진 진짜 땀방울을 잊고 살아갑니다. 주역 건괘는 잠룡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로 솟구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차가운 강바닥과 푸른 하늘 사이에는, 낮과 밤으로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며 힘쓰는 ‘종일건건(終日乾乾)’의 날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깊은 연못 위를 날아오를 듯 말 듯,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끊임없이 고뇌하며 살피는 ‘혹약재연(或躍在淵)’의 위태롭고도 신중한 과도기가 반드시 채워져야만 합니다.
뒤돌아보면 우리의 삶도 이와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때로는 내가 세상이라는 커다란 강물 속에 갇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쓸쓸한 잠룡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남들은 저마다 SNS 속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룡처럼 화려해 보이는데, 나만 홀로 차가운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 것만 같아 조바심이 나기도 합니다. 타인의 시선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스스로를 갉아먹는 것이 현대인의 고질병입니다.
그러나 주역이 우리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는 명확합니다. 지금의 침묵은 잊혀진 것도, 뒤처진 것도 아니라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날아오르기 위해 숨을 고르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한 조급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오늘 하루 나에게 주어진 ‘종일건건’의 수고로움을 묵묵히 채워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결과만을 숭배하는 차가운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언젠가 다가올 나의 계절에 세상이 깜짝 놀라 눈을 비비고 나를 다시 바라볼 그 눈부신 승천의 순간을 기다리며, 오늘도 물속 깊은 곳에서 가만히 마음의 심지를 굳혀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