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암살자들 」 창작의 자유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책임까지 면제하는가 _이원희 기자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10-02 16:00

예술은 자유로워야 한다.

창작자는 이미 알려진 역사에 질문을 던질 수 있고, 기록되지 않은 부분을 상상으로 채울 수 있으며, 기존의 해석을 뒤집을 수도 있다. 실제 사건과 허구를 결합할 수도 있고, 역사적 인물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권력이 허용한 해석만 예술로 인정하는 사회에서 창작의 자유는 존재하기 어렵다. 그러나 자유가 크다고 해서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 암살자들의 한 장면 


실존 인물과 실제 역사적 사건을 작품의 중심으로 불러오는 순간 창작은 순수한 허구와 다른 영역에 들어선다. 그때부터 작품은 상상력에서 사회와 공유하는 기억과 만난다.


창작의 자유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책임까지 면제해 주는가.


최근 실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를 둘러싼 논란도 결국 이 질문으로 모인다.

제작자는 공개된 자료를 토대로 가상의 인물과 사건을 결합한 창작물이며 특정인을 역사적 사건의 배후로 단정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물론 영화는 역사책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장면을 사료에 맞춰 재현할 의무도 없고, 모든 대사에 출전을 붙일 수도 없다. 역사영화에서 각색을 금지한다면 역사영화라는 장르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대법원 역시 이 점을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2010년 7월 15일 선고 2007다3483 판결에서 실제 인물이나 사건을 모델로 한 상업영화의 경우,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하더라도 흥행이나 극적 효과를 위해 일정한 각색이 이루어지는 것은 영화의 본질상 어느 정도 허용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의도적인 악의의 표현에 이르지 않는 한 그러한 각색은 상업영화의 창작 영역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이 판결에서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대법원은 같은 판결에서 헌법 제22조가 보장하는 예술의 자유가 무제한적인 기본권은 아니며, 실제 인물이나 사건을 모델로 한 영화가 허위사실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그 결과 특정인의 명예를 침해한다면 예술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분명히 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22조 제1항은 이렇게 규정한다.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그러나 예술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마음대로 변경할 권리를 부여한다는 뜻이 아니다.


민법 제750조가 고의 또는 과실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의 불법행위 책임을 규정하고 있는 것도 같은 법질서의 맥락에 있다. 실제 인물을 대상으로 한 표현이 창작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타인의 권리와 명예에 대한 법적 검토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2007다3483 판결 역시 민법 제750조를 근거조문으로 삼고 있다.

대법원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매우 중요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영화가 특정 인물의 명예를 훼손했는지를 판단할 때 한 장면이나 한 문장만 떼어 볼 것이 아니라, 영화 전체의 흐름, 이야기와 화면의 구성방식, 대사의 통상적인 의미와 연결 방법, 그리고 그것들이 관객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 기준은 지금의 논쟁에서도 중요하다.


창작자가 작품 속에서 직접 “이 사람이 배후였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

영화 메커니즘 속에는 카메라가 누구를 바라보는지, 어떤 장면 뒤에 어떤 장면을 배치하는지, 어떤 인물의 표정에서 음악이 시작되는지, 어떤 대사를 반복하는지에 따라 하나의 인과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것이 영화가 가진 힘이다.


명시적인 단정 없이도 관객에게 하나의 확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관객이 영화를 보고 무엇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도록 구성되었느냐도 살펴야 한다.

창작된 장면이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충분히 허구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시청자가 그것을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역사영화가 가져야 할 창작윤리의 경계이다.


한 편의 영화 안에서 매우 설득력 있게 구성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며 영화적 개연성과 역사적 개연성은 같지 않다.

그러나 영화는 이 둘을 섞어 놓을 수 있는 강력한 매체다.

배우의 얼굴이 붙고, 음악이 흐르고, 실제 역사적 장소와 사건이 등장하는 순간 하나의 가설은 관객에게 하나의 기억이 된다.

특히 역사적 사건을 처음 접하는 세대에게 영화는 경우에 따라 교과서보다 먼저 만나는 역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화일 뿐”이라는 말만으로 모든 책임을 전가하기 어렵다.


관객에게 판단을 맡긴다고 말하려면 우선 관객이 판단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해야 하며 작품의 중심 서사가 실제 역사적 사건의 원인이나 책임 주체를 새롭게 설정하는 데 있다면 문제는 크게 달라진다.

그 부분이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실인지, 하나의 가설인지, 작가적 상상인지에 대해서는 창작자 역시 분명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오프닝 자막이나 엔딩 크레디트, 제작노트, 공식 홍보자료 등을 통해 실제 사실과 창작된 부분의 경계를 설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창작자는 정직성을 외면했다.


유네스코가 1980년 「예술가의 지위에 관한 권고」를 통해 예술가의 자유로운 표현과 창작환경을 국제적 기준으로 강조해 온 이유도 예술이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네스코는 오늘날까지도 이 권고를 예술적 자유와 예술가의 사회적·경제적 권리를 보호하는 중요한 국제적 기준으로 다루고 있다.


그 자유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정치권력이 불편한 작품을 금지하거나, 특정한 역사 해석만을 허용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예술의 죽음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예술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과 창작자의 모든 선택을 책임에서 면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예술에는 검열받지 않은 자유가 있지만, 비판받지 않을 특권은 없다.

더구나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을 사용하는 순간 그 책임은 순수한 허구를 창작할 때보다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가설과 기록 역시 같을 수 없는 그 경계를 흐려놓은 뒤 마지막에 “우리는 질문을 던졌을 뿐”이라고 말한다면 질문 자체가 이미 하나의 결론을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두 시간 동안 하나의 가능성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그 가능성에 인물의 얼굴과 대사와 음악을 입히고, 분노와 슬픔과 카타르시스까지 부여한 다음 마지막 순간 “판단은 관객의 몫”이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충분한가.

여기에서 창작자의 정체성과 정직성을 엿 볼 수있다.


창작자는 관객에게 질문을 건넨 것인가. 아니면 하나의 답에 이르는 감정의 길을 만들어 놓고 마지막 책임만 관객에게 넘긴 것인가.

역사는 어느 정치적 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특정 인물을 미화하기 위해 사실을 선택해서도 안 되며, 반대로 비판하기 위해 확인되지 않은 가설을 역사적 사실에 가까운 이미지로 고정해서도 안 된다.


역사를 비판할 자유와 역사를 임의로 바꿀 자유를 동일시해서는 안 되며

예술의 각색은 인정하되 역사적 사실과 극적 허구 사이에는 넓은 창작의 공간이 무제한의 면책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 인물과 사건을 다루면서 허위사실을 역사적 사실처럼 제시하고 타인의 명예나 인격권을 침해하는 단계에 이른다면 법적 책임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제작자가 “허구였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 해결법이 될 수 없다.


이 지점에서 오늘의 예술계도 한 번쯤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술가의 지위는 사실 확인의 책임을 벗어날 수 있는 특권이 아님을 명심해야 하며 예술적 자유 역시 역사적 모호성을 상업적 카타르시스로 소비하기 위한 면허가 아니기에 더더욱 정직성과 공적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예술의 자유를 오래 지키고 싶다면 오히려 창작자가 먼저 그 자유의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법적 판단보다 앞서야 하는 것이 창작윤리이고, 외부의 검열보다 먼저 작동해야 하는 것이 창작자의 공적 책임 의무이며 실존 인물과 실제 역사를 자신의 작품 안으로 불러들였다면 자신이 만들어낸 이미지가 한 세대의 역사적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 고려한 공적 책임성을 가져야 한다.


예술의 표현이 아무리 자유로워도 책임의 무게까지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 무게를 감당할 때 창작의 자유는 비로소 예술의 품격이 된다.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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