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거장 손끝에서 만개한 재즈…에디 고메즈 트리오 내한 공연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9-20 10:01

'빌 에반스 트리오' 출신 재즈 베이시스트…에반스 첫 만남 60주년


"빌과 11년 보낸 건 축복, 성숙한 뮤지션으로 성장"…유쾌함과 서정성 오간 85분


재즈 베이시스트 에디 고메즈재즈 베이시스트 에디 고메즈 [재즈브릿지컴퍼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시원한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온 지난 19일 밤.


서울 서울숲 인근 성수아트홀에서 82세 노장 재즈 베이시스트의 현란한 손끝에서 섬세한 소리가 깊은 울림을 내며 퍼져 나왔다. 아늑한 공연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숨죽이고 이 장면을 지켜봤다.


거장의 키보다 큰 베이스에서는 묵직하고 중후한 소리만 나온 게 아니었다. 때로는 구슬프고 서정적이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익살맞고 유쾌한 사운드가 만개했다.


바로 전설적인 재즈 트리오 '빌 에반스 트리오' 출신 베이시스트 에디 고메즈(82)가 이끄는 트리오의 내한 공연에서다.


1966년부터 1977년까지 11년간 빌 에반스 트리오에서 활동하며 팀에서 가장 오래 활동한 멤버로 기록된 고메즈는 30년간 호흡을 맞춘 스테판 칼슨(피아노), 밀도 높은 연주가 돋보인 드러머 스티브 프루잇(드럼)과 3인 구성으로 한국을 찾았다.


특히 올해는 고메즈가 빌 에반스를 처음 만난 지 6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고메즈는 빌 에반스의 대표곡과 자신의 창작곡, 멤버들이 작곡한 오리지널 곡들을 풍성하게 관객 앞에서 풀어냈다.


그는 공연 시작에 앞서 우리말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넨 뒤 "저희 음악을 들으러 와 주신 여기 계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한국에 오는 것은 늘 굉장하다"고 짧은 소감을 밝혔다.


감성적인 '마이 맨즈 곤 나우'(My Man's Gone Now)로 무대를 연 고메즈는 두 번째 곡 '칙스'(Cheeks)로 분위기를 반전시켜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하더니, '위 윌 밋 어게인'(We Will Meet Again)과 '에브리싱 아이 러브'(Everything I Love)로 아련하고 로맨틱한 무드를 자아냈다.


에디 고메즈 트리오 내한 공연에디 고메즈 트리오 내한 공연 [촬영=이태수]

tsl@yna.co.kr


고메즈가 몸담았던 빌 에반스 트리오는 피아노, 베이스, 드럼이 실시간으로 합(合)을 주고받는 인터플레이(Interplay)로 명성을 크게 얻었다. 그는 이날 공연에서도 빼어난 완급 조절을 보여주며 피아노·드럼과 호흡을 주고받았다.


고메즈는 공연에 앞서 지난달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트리오 연주는 마치 함께 노래하거나 춤을 추는 파트너가 있는 것과도 같다"며 "이런 여러 요소가 동시에 제대로 구현될 때 정말 멋진 일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그는 이 같은 무대 철학을 제대로 구현해냈다.


특히 베이스가 연주의 보조 악기가 아닌 피아노·드럼과 함께 주인공으로서 곡을 적극적으로 리드하는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무대의 가운데에서 음(音)의 중심을 잡고 곡을 진두지휘하는 손길에선 여유와 노련함이 느껴졌다.


고메즈는 눈을 지그시 감고 베이스와 혼연일체가 돼 현 위에서 춤추듯 손끝을 날렵하게 놀리다가, 몰입 끝에 흥에 겨워 스캣(Scat·즉흥 창법)처럼 소리를 냈다. 은발의 노년 거장이 내뿜는 거센 에너지에 놀란 관객은 즉흥 연주 구간이 끝나자 큰 박수로 화답했다.


고메즈는 빌 에반스의 '위 윌 밋 어게인'을 들려주기에 앞서 관객에게 그와의 인연도 소개했다.


고메즈는 "빌 에반스 트리오에서 함께 보낸 11년은 제게 축복과도 같았다"며 "제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재즈 베이시스트 에디 고메즈재즈 베이시스트 에디 고메즈 [재즈브릿지컴퍼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이어 "(그 11년은) 제가 성숙한 뮤지션이자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배움의 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스텔라'(Stella)와 '올 더 싱스 유 아'(All The Things You Are)를 지나 공연 후반부 '트라이킹스'(Trikings) 무대에서 고메즈는 활을 들고 베이스를 연주했다. 그는 이를 통해 이전의 생동감 있는 사운드와는 또 다른 결의 고전적인 소리를 직조해냈다. 여기에 화려한 피아노 연주가 더해지면서 곡은 한층 더 낭만적으로 들렸다.


고메즈는 신비로운 에너지가 돋보이는 '솔라'(Solar)에 이어 앙코르곡으로 빌 에반스 트리오의 대표곡 '마이 풀리시 하트'(My Foolish Heart)를 마지막으로 선보이고서 약 85분간의 공연을 마무리했다.


서정, 낭만, 아련함, 부드러움, 열정 등 곡마다 분위기를 달리하며 팔색조 같은 매력을 뽐낸 거장의 연주에 관객은 힘찬 박수를 오랜 시간 보냈다.


그는 '솔라'를 연주하기에 앞서 "여러분(관객)이 계시지 않는다면 저희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여러분이 여기 저희와 함께 있다는 게 의미가 있고, 그 사실이 저희를 행복하게 한다"고 관객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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