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RC, 한국의 이산·탈북 연구를 중동 실종자 가족 심리 지원에 접목
(암만=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김현 미네소타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교수가 16일(현지시간)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주최 컨퍼런스에서 발표하고 있다. 2026.09.18. ask@yna.co.kr
(암만=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실종자 가족들은 수색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멈출 것인지, 사망신고를 해야 할지와 같은 도덕적 결정 앞에 끊임없이 내몰립니다. 어떻게 결정하든 후유증을 남기게 됩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 조사단 일원으로 지난해 요르단에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운영하는 정신건강 및 심리·사회적 지원 프로그램(MHPSS)을 참관했던 김현 미네소타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실종자 가족이 느끼는 심리 상태를 이렇게 묘사했다.
김 교수는 "'모호한 상실'(Ambiguous loss)은 가족들이 왜 슬픔을 끝맺지 못하는지 설명해준다"며 게다가 "살아남은 이들은 '내가 그 자리에 있었는데도 실종을 막지 못했다''는 자기 비난의 논리에 시달린다"고 설명했다.
실종자 가족의 심리 지원 사업을 펼쳐온 ICRC는 소중한 사람이 한순간 사라지는 '모호한 상실'이라는 개념의 근본에 다가가고 실질적인 치유책을 모색하기 위해 활동 거점 지역인 요르단 암만에서 15∼17일(현지시간) 학술회의를 열었다.
이번 회의에는 6·25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이산가족, 북한이탈주민의 트라우마를 연구한 적이 있는 한국의 학자들이 초청돼 요르단은 물론 시리아, 레바논 등 중동 지역 학계와 현장 전문가들에게 정책·실무적 제언을 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암만=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을 지낸 장유량 박사가 16일(현지시간)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주최 컨퍼런스에서 발표하고 있다. 2026.09.18. ask@yna.co.kr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이 축적해 온 연구 자료와 정책 역량이 국제 인도주의 지원 실무에 접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장유량 박사는 "실종자는 물리적으로 부재하지만, 그 사람과 가족 간 관계가 끝난 것은 아니다"라며 "불확실성을 강제로 없애려 하기보다 불확실성 자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 박사는 특히 트라우마 지원을 국가의 책임으로 제도화한 한국의 대표적인 사례로 국립트라우마센터를 꼽으면서 "심리적·의료적 지원은 이제 단순히 선택적인 서비스가 아니라 지속적인 공공의 책임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료·심리·행정·법률 지원을 하나로 통합하는 국가 책임의 지속적 제도화가 필수적"이라고 제언했다.
북한이탈주민의 심리적 적응을 연구해온 김경아 박사는 화상으로 회의에 참여해 탈북민과 분쟁 지역에서 실종자 가족의 심리 상태에서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김 박사는 북한이탈주민 정착 실태조사에서는 북한이나 제3국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이 한국 생활에 불만족한 가장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 조사됐다는 점도 상기했다.
김 박사는 한국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 3만 4천명 가운데 약 72%가 여성이라는 통계를 인용해 어머니인 탈북 여성의 상실감은 양육자로서 자녀와의 관계와도 연결되는 만큼 개인을 넘어 가족 차원의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동 지역에서도 납치 대상자가 주로 남성이어서 여성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김 박사는 또 지원 정책의 초점이 물리적 부재 자체뿐 아니라 가족 단위를 아우르는 심리 지원 체계 구축에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