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폭격·지상군도 못잡은 후티…전쟁 치르며 더 강해졌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등록 2026-09-16 19:36

10년간 다국적군 공세에도 세력 확장…홍해 물류·글로벌 경제 위협


게릴라전 최적화한 산악 지형·이란의 전폭 지원·적대 세력 분열이 원인


 후티 반군 군사 미디어 센터가 7일 배포한 영상 캡처 화면. 예멘 동부 하드라무트주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지원 예멘 정부군 진지에서 후티 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추정되는 폭발이 발생해 트럭에서 연기와 화염이 치솟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 영국, 이스라엘 등 압도적인 군사력을 자랑하는 국가들이 지난 10년간 막대한 폭탄을 쏟아붓고 다국적 지상군까지 투입했지만, 예멘의 친이란 반군 후티는 궤멸하기는커녕 오히려 중동의 핵심 군사 위협으로 덩치를 키웠다.


후티는 최근 홍해의 남쪽 출입구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장악하고 사우디의 석유 시설을 타격해 글로벌 경제를 뒤흔들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사실상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일개 지방 반군이었던 후티는 어떻게 10여년간 전쟁을 거치며 세계 최강국들을 위협하는 거대 군사 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4월 6일 예멘 사나에서 무장한 부족민들이 전투원 추가 동원을 위한 반미·반이스라엘 집회에 참석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아랍의 봄' 혼란 틈타 국가 무기고 흡수…'게릴라'에서 '정규군'으로


공식 명칭이 '안사룰라(알라의 지지자들)'인 후티는 본래 1990년대 초 예멘 북부 사다 지역에서 사우디의 보수 수니파(와하비즘) 확장에 맞서 시작된 시아파 비주류 '자이드파'의 종교·문화 운동 단체였다.


2004년 예멘 정부의 탄압에 맞서 산악 게릴라전을 시작한 이들에게 2011년 불어닥친 '아랍의 봄' 민중항쟁은 도약의 결정적 발판이 됐다.


민주화 시위로 33년 철권통치 정권이 무너지고 극심한 정치적 혼란(권력 공백)이 발생하자, 후티는 구정권의 군부 잔존 세력과 손을 잡고 국가 정규군의 무기와 군사 지휘 체계를 통째로 흡수해 버렸다.


이렇게 정규군 수준의 무장을 갖춘 후티는 2014년 수도 사나를 기습 장악했고, 이듬해에는 과도정부를 몰아내며 예멘 북부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올라섰다.


지방의 소수 반군이 사실상의 '준 국가(de facto state)'로 체제화된 것이다.


 4월 3일 예멘 사나에서 후티 반군 지지자들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합동 작전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험준한 산악 지형의 함정…다국적 지상군의 뼈아픈 참패


자국과 맞닿은 국경에 친이란 무장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사우디아라비아는 2015년 아랍에미리트(UAE), 수단 등과 함께 10개국 아랍 연합군을 결성해 예멘 내전에 전격 개입했다.


당시 연합군은 막강한 공군력은 물론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정규 지상군을 예멘 본토에 파병했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10년간의 내전으로 험준한 산악 지형을 활용한 매복과 유격전에 통달해 있던 후티 반군에게, 지리에 어두운 다국적 지상군은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최전선에 투입됐던 수단군 수천 명이 전사하는 등 참혹한 인명 피해가 누적되자, 2019년 UAE를 시작으로 외국 지상군들은 사실상 예멘에서 발을 뺐다.


지상전의 뼈아픈 실패를 맛본 사우디 역시 직접적인 지상 병력 투입을 극도로 꺼리게 됐고, 전선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미국 싱크탱크 호라이즌 인게이지의 마이클 나이츠 연구 책임자는 AP 통신에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가 군사 역량을 구축하는 데 20년이 걸렸지만, 이란의 '속성 코스' 지원을 받은 후티는 단 5년 만에 이를 해냈다"고 평가했다.


 후티 군사 미디어가 8월 9일 배포한 자료 영상 캡처 화면. 예멘 내 미상의 장소에서 드론이 발사되는 모습. [EPA 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 지상군 빠진 틈 타 이란 기술 수혈…가자 전쟁 거치며 '글로벌 위협' 진화


연합군이 지상전을 포기하고 소모적인 공습에만 매달리는 사이, 후티는 방어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란의 전폭적인 기술 지원을 받아 사우디 본토와 주변국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탄도·순항미사일과 자폭 드론을 대량으로 비축·자체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5년 3만 명 수준이던 병력도 통제 구역 내 강제 징집 등을 통해 2024년 최대 35만 명 규모로 팽창했다.


이렇게 덩치를 키운 후티에게 2023년 말 발발한 '가자 전쟁'은 국제 무대에 존재감을 과시할 완벽한 명분이 됐다. 팔레스타인 연대를 빌미로 홍해를 지나는 상선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과 영국이 수억 달러어치의 폭탄을 쏟아부으며 보복 공습에 나섰지만 후티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후티는 이란에서 조달한 것으로 추정되는 최첨단 유도장치를 기반으로 탄도미사일과 순항 미사일, 자폭 드론 등을 비축한 뒤, 대당 3천만 달러가 넘는 미군의 MQ-9 리퍼 드론을 7대나 무더기로 격추하며 끈질기게 버텼다.


과거 사우디가 겪었던 '공습의 한계'를 미군도 똑같이 체감한 셈이다.


 7월 17일 예멘 사나에서 열린 반(反)사우디아라비아 시위 도중, 한 후티 반군 지지자가 모형 미사일을 들어 보이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반(反)후티 연합은 붕괴…외교적 해법도 '먹구름'


설상가상으로 후티에 맞서 예멘 땅을 수복해야 할 내부 적대 세력들은 사분오열된 상태다.


캐나다 오타와대 토마스 주노 교수는 "예멘 공식 정부는 파편화되고 부패했으며, 후티는 이 약점을 체계적으로 파고들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사우디의 지원을 받는 예멘 정부군과 UAE가 후원하는 남부 분리주의 세력은 목표가 달라 상호 교전을 벌이는 등 자멸하는 모습을 보였다.


후티 반군이 사분오열된 정부군을 밀어내고 홍해 입구인 바브엘만데브 해협 통제권을 사실상 확보한 상태다.


 2026년 3월 31일 예멘 사나에서 차량들이 후티 반군 지도자 압둘말리크 알후티의 모습이 띄워진 디지털 전광판 앞을 지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상태에서 '이란의 대리 세력'인 후티가 홍해까지 봉쇄하면 전 세계적인 에너지 공급 위기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후티를 상대로 한 외교적 출구도 마땅치가 않다.


후티는 적대 행위 중단 조건으로 사우디와 국제사회의 '완전한 해상 봉쇄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수용할 경우 이란의 대규모 최첨단 무기가 후티에게 제한 없이 흘러 들어갈 수 있어 사우디와 미국으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카드다.


결국 어느 쪽도 타협할 의사가 없고 군사적 제압도 불가능한 딜레마 속에서, 무소불위로 성장한 후티의 무력시위는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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