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된 익숙함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8-09 09:10



재난 문자



지난 3일, 사상 첫 수도권 폭염중대경보가 내린 그날, 서울 관악구에서 일주일 가까이 종적을 감췄던 여든의 노인이 잠실동 어느 골목에서 발견됐다. 

그를 찾아낸 것은 경찰도, 수색견도 아닌 한 시민의 눈이었다. 휴대전화 액정 위로 스쳐 지나갔을 문자 한 통이, 낯선 이의 걸음을 멈춰 세운 것이다.


경보는 본래 침묵을 깨기 위해 태어난다. 평상시라면 지나쳤을 얼굴 하나를 도드라지게 만드는 일, 그것이 경보의 존재 이유다. 그런데 이 경보가 하루에도 몇 통씩 되풀이되면서, 역설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21년 468건이던 실종경보문자 발송이 지난해 3천147건으로 불어나는 사이, 시민들은 그 문자를 여닫는 손끝의 속도를 서서히 늦추기 시작했다. 지난달만 열여섯 통을 받았다는 어느 기자의 고백처럼, 경보는 이제 일상의 배경음이 되어버렸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이를 '습관화(habituation)'라 부른다. 동일한 자극이 반복되면 유기체는 그것에 반응하는 힘을 줄여나간다. 


생존을 위한 지혜였을 이 기제가, 정보 과잉의 시대에는 도리어 생명을 위협하는 맹점이 된다. 실종경보문자를 본 시민 제보로 발견된 이들의 평균 발견 시간은 4시간 55분, 반면 문자 없이 발견된 치매 환자의 평균 발견 시간은 7시간 36분에 이른다. 


몇 시간의 차이 속에 생사가 갈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문자 발송 대비 시민 제보를 통한 발견율은 2022년 26%에서 지난해 22%로 내려앉았다. 효과가 입증된 제도가, 그 효과로 인해 스스로를 갉아먹는 셈이다.



이솝연구소 동화책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것은 '양치기 소년'의 오래된 우화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구조다. 

소년은 거짓을 반복해 신뢰를 잃었지만, 실종경보문자는 매번 진실을 말하면서도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정직함이 과잉될 때 오히려 무게를 잃는다는 이 불편한 역설이야말로, 재난문자든 안전안내문자든 오늘날 모든 공적 경보 시스템이 마주한 공통의 함정이다. 위험이 있을 때마다 알린다는 선의가, 알림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지점까지 와버린 것이다.

전문가들의 처방은 명료하다. 


이웅혁 건국대 교수는 발송 조건을 좁히고 지역 방송 등 병행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고, 김영식 순천향대 교수는 텍스트에 사진과 같은 시각 정보를 더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상 이 두 제언은 하나의 원리로 수렴한다. 넘쳐나는 자극 속에서 특정한 신호가 다시 도드라지려면, 양을 줄이거나 질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는 것. 문자의 총량을 조절하는 일과 그 안에 담기는 정보의 밀도를 높이는 일은, 결국 같은 목표를 향한 두 갈래 길이다.


한 사람의 실종은 그 자신에게는 세계 전체가 사라지는 사건이다. 그러나 그 소식을 전달받는 수만 명의 타인에게는, 하루에도 몇 번씩 되풀이되는 '알림' 중 하나로 축소된다.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은 시민의 각성이 아니라 설계의 몫이다.


우선 발령 기준부터 정교해져야 한다. 미국의 앰버 경보는 아동 납치 등 생명이 임박하게 위협받는 경우로 발령 요건을 못박아 연간 발령 건수를 극소수로 제한한다. 반면 우리의 실종경보문자는 치매·지적장애·아동 실종 전반에 폭넓게 적용되면서, 정작 즉각적 개입이 필요한 사례와 시간을 두고 찾아도 되는 사례가 같은 채널에서 같은 무게로 뒤섞인다. 위험도에 따라 발송 단계를 나누고, 초기 몇 시간은 인근 지역에 한정해 좁게 쏘았다가 미발견 시 반경을 넓히는 단계적 발령 체계가 대안이 될 수 있다.


다음은 정보의 밀도다. 현행 문자는 이름과 인상착의를 텍스트로 나열하는 데 그치지만, 재난문자에 링크를 삽입해 사진과 지도, 최종 목격 경로까지 담아내는 기술적 여건은 이미 갖춰져 있다. 이미지 한 장이 텍스트 열 줄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것은 굳이 인지심리학을 빌리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수신자의 참여 방식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문자를 받은 모든 사람이 거리로 나설 수는 없더라도, 발견 즉시 신고할 수 있는 원터치 제보 기능이나 지역 커뮤니티 앱과의 연동은 '읽고 지나치는' 문자를 '누르고 참여하는' 문자로 바꿀 수 있다.


경보의 생명은 반복이 아니라 정확함에 있다. 양을 줄이고, 정보의 질을 높이고, 참여의 문턱을 낮추는 이 세 갈래 손질이 함께 이루어질 때, 문자 한 통은 비로소 스팸함이 아닌 다시 낯선 얼굴로 우리 앞에 도착할 것이다.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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