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빛·소리 겹친 홍콩작가 리킷 개인전…"하늘 보듯 봐주길"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등록 2026-08-04 14:36

스페이스 이수서 '곧 흘러가 버릴 날들을 천천히 곱씹으며'展


영상·설치·스프레이 페인트 회화 등…"정치적 작가로 규정되고 싶진 않아"


전시 전경 전시 전경 [스페이스 이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옅은 페인트가 칠해진 유리창 너머로 도시의 풍경이 흐르고, 전시장 안은 빛과 영상, 텍스트가 겹쳐진다. 그리고 닐 영의 노래 '온리 러브 캔 브레이크 유어 하트'(Only Love Can Break Your Heart)의 후렴구를 샘플링한 사운드가 반복해 울린다.


일상의 사소한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온 홍콩 출신 작가 리킷(Lee Kit·48)의 개인전 '곧 흘러가 버릴 날들을 천천히 곱씹으며'가 서울 반포동 스페이스 이수에서 오는 5일부터 열린다.


전시에서는 영상과 빛, 사운드, 텍스트, 회화가 결합한 장소 특정적 설치 작업과 작가가 최근 발전시켜 온 산업용 스프레이 페인트 회화 등 모두 9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전시장의 구조와 빛, 시간의 흐름, 공간을 오가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관찰했고, 도심 속 로비 공간과 창밖 풍경을 전시 안으로 끌어들였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이번 전시는 개별 작품들의 나열이라기보다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작업처럼 구성했다"고 말했다.


리킷 작 '창문'리킷 작 '창문' [스페이스 이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전시장 전면 유리창에는 작가가 현장에서 직접 그린 회화 '창문'이 펼쳐진다. 여러 겹의 물감으로 이뤄진 반투명한 색면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광과 만나 전시장 내부에 섬세한 빛과 그림자의 층위를 만들어낸다. 유리 너머의 풍경은 회화와 겹치며 실내와 실외, 이미지와 현실 사이의 경계를 느슨하게 연결한다.


함께 선보이는 회화 두 점은 스테인리스 스틸 위에 산업용 스프레이 페인트와 파스텔을 사용해 만든 작품이다. 물감을 흡수하는 캔버스나 종이와 달리 금속판 위의 색은 표면에 머무르며 미세한 층을 이룬다. 금속성의 화면에는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과 영상의 빛이 더해져 매 순간 다른 장면으로 다시 편집된다.


작가는 "하늘을 바라보면 무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무언가를 생각하게 된다"며 "내 그림도 그렇게 하늘을 보듯 바라보고 각자만의 생각을 가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리킷 작 '하지만 사랑만큼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픈 건 없지'리킷 작 '하지만 사랑만큼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픈 건 없지' [스페이스 이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하지만 사랑만큼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픈 건 없지'는 전시장을 채우는 닐 영의 노래 '온리 러브 캔 브레이크 유어 하트'에서 모티프를 얻은 영상 작품이다. 벽면을 덮은 카펫 위로 분홍 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8분 49초 길이의 영상이 반복 투사된다. 이 영상 위로 노래 가사에 기반한 텍스트들이 이어진다. 카펫의 짧은 섬유는 영상을 미세하게 분산시켜 오래된 필름 같은 질감을 만들고, 노래 후렴구를 샘플링한 사운드는 전시장 안에 낮게 반복해 울린다.


작가는 "2019년 서울에서 개인전을 하면서 서울이란 도시에서 구슬픔, 참을성, 조용한 감성 등을 느꼈다"며 "이번 서울 전시를 위해 만들어진 작품으로, 대만에서의 전시였다면 다른 노래가 쓰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가 리킷작가 리킷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작가 리킷이 4일 서울 반포동 스페이스 이수에서 전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2026.8.4. laecorp@yna.co.kr


홍콩 출신 리킷은 일상의 경험과 감정, 그 안의 긴장과 모순, 찰나의 정치적 감상을 절제해 드러내는 작가다. 2013년 제55회 베네치아비엔날레 홍콩관 대표 작가로 참여했다. 2000년대 초 손으로 줄무늬·격자무늬를 그린 천을 일상용품처럼 쓴 '핸드-페인티드 클로드' 시리즈로 주목받았고, 이 천은 2004년 홍콩 민주화 시위 현수막으로도 쓰였다.


10여년 전 대만으로 이주한 그는 2020년 이후 홍콩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리킷은 "대만 이주 이유가 정치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홍콩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라며 "스스로를 정치적인 작가로 규정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30일까지.


최용대 발행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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