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할 수 없는 철커덕 발목 걸려들고 싶은 팜므파탈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 없다는 고백하지 않고는
도저히 이 여름 떠나보낼 수가 없어요
20세기 초현실주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가 1960년에 그린 작품 <보이지 않는 거울을 보면서 등을 돌리고 있는 갈라>말복
박상봉
발아래 흐르는 강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날이다
주머니 속에 감춘 우울 만지작거리는 날이다
큰 잎사귀 위에 잠시 앉아 쉬기도 하는 날이다
아득했던 소식도 쉽게 찾아오는 날이다
약속 없이 애인을 만날 수 있는 날이다
덥거나 뜨겁거나 한 일을 잊고 바쁘게 움직이기도 하는 날이다
땀으로 목욕한 듯 등판이 칙칙 달라붙는 하루
땡볕에 뜨겁게 달구어진 아스팔트
쥐덫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새다
목구멍 깊숙이 새초롬한 사과꼭지 하나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철커덕 발목 걸려들고 싶은 팜므파탈이다
주릿대 꽁꽁 묶인 그리움
곰삭아 찌찌 지린내 나는 돼지부랄이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성스러운 밤이 오기도 전에
찔끔 오줌부터 지리는 견딜 수 없는 말복이다

중복날 아침부터 찌는듯한 더워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다. 중복은 지도 어디에도 표시되지 않지만 해마다 누구나 한 번쯤 지나가는 여름의 한복판이다. 초복이 더위의 입구라면 말복은 출구다. 중복은 그 둘 사이에서 가장 오래 머무는 뜨거운 방이다. 계절이 자신의 심장을 가장 크게 뛰게 하는 자리인 것이다.
골목도, 마당도, 논두렁도, 아스팔트도 모두 하나의 거대한 화로가 된다. 나무는 그늘을 끝까지 펼쳐 보지만 그늘조차 뜨거워지고, 바람은 더위를 식히기보다 옮겨 다니는 운반자가 된다.
냉장고 문을 열고, 수도꼭지를 틀고, 선풍기 앞에 서는 모든 행동이 하나의 피서다. 사람뿐 아니라 개도 혀를 내밀고, 매미도 울음을 쉬지 않는다. 생명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장소를 견디며 통과한다. 그래서 중복은 단순히 가장 더운 날이 아니라, 여름이 자신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장소다. 모든 것이 한계까지 달아오른 뒤에야 계절은 조금씩 내려올 준비를 한다. 가장 뜨거운 곳을 지나야 서늘함이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중복은 여름의 정상(頂上)이자, 이미 가을을 향해 몸을 돌리기 시작한 보이지 않는 고갯마루이기도 하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와 열대야주의보가 발효된 가운데, 중복(中伏)인 25일 대구의 낮 최고기온이 37도까지 치솟고, 경주는 최고 체감 온도가 38도에 육박하며 폭염중대경보가 발효 중이다.
오늘도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무더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보되고 있다. 현재 전국 각 지역별 기상특보 상황을 살펴보면, 경상북도(경주중북부, 경주남부)에 폭염중대경보가 발효된 것을 비롯해 서울·인천·광주·대구·부산·울산·세종 및 경기도, 강원도, 충청남·북도, 전라남·북도, 경상남·북도, 제주도 등 전국 곳곳에 폭염경보와 폭염주의보, 열대야주의보가 내려져 있다.
매일 찜통에 익혀지는 완벽한 무더위의 테크놀로지를 어떻게 견딜지 헤아려보다가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고. 무더위를 뜨겁게 껴안고 살 수 밖에 없겠다고 생각한다.
어쨋든 중복 더위를 맞아 아침부터 삼계탕 한 그릇 챙겨먹는다.
여름철 최애 보양음식 삼계탕
삼복 더위가 시작되면 땀을 많이 흘려 쉽게 지치게 되는데 이럴 때 몸 보신을 해주지 않으면 체력이 떨어져 병을 앓기도 한다.
여름철 보양음식으로는 삼계탕이 좋다. 영계의 뱃속에 찹쌀, 인삼, 대추, 마늘을 함께 채워 넣고 황기물에 푹 삶아 만든 삼계탕으로 배를 채우고 나면 기운이 솟아나고 잃었던 입맛도 살아난다.
삼계탕은 성질이 따뜻한 닭과 함께 인삼ㆍ황기ㆍ마늘 등을 넣어 위장을 보할 뿐만 아니라 여름철 땀을 많이 흘려 체내의 부족한 기운과 잃었던 입맛을 돋워주는 명약으로 손꼽히는 음식이다. 예로부터 복날 삼계탕을 먹는 풍습은 지혜롭게 여름을 나는 방법 중 하나였다.
지금은 삼계탕이 복날의 대표음식이지만 옛날의 복날 대표음식은 보신탕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삼계탕이 없었고 복날 닭찜이나 백숙도 그다지 많이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보신탕을 안 먹는 사람들이 대신 먹던 음식이 육개장이다.
육당 최남선이 저술한 『조선상식(朝鮮常識)』에 보면 보신탕이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쇠고기로 끓인 육개장을 먹으며 여름 무더위를 이겨냈다고 한다. 개장은 원래 개고기로 끓인 장국이라는 뜻인데 쇠고기를 대신 넣었기 때문에 고기 육(肉)자를 더해서 육개장이라고 한다.
삼계탕 한 그릇씩 잡수고 나서 옛날식 다방에 들러 후식으로 쌍화차 한잔씩 드시기 바란다. 쌍화차 역시 기를 북돋우고 혈액순환과 피로 회복에 도움을 주는, 여름을 이겨내는 보양 음료로 알려져 있다.
대구 중구 진골목 미도다방의 옛날식 쌍화차는
센베이(전병)가 같이 나온다.
우리 조상들은 일찍이 정월 대보름에 더위 팔이를 하는 풍습이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이웃 사람들에게 “내 더위 사라라”며 큰 소리로 외쳤는데 새해 들어 처음으로 맞이하는 둥근달을 보며 풍년과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올 한해도 큰 탈 없이 보낼 수 있게 해 달라는 소망을 담았다. 한 겨울에 여름 날 것을 걱정하고 미리미리 예방하려는 조상들의 의미가 돋보인다.한자어로는 ‘매서(賣暑)’라고 한다. 대보름날이 되면 아이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이웃에 사는 친구를 찾아가 그의 이름을 부른다.
친구에게 이름이 불린 아이가 무심코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가라.’ 또는 ‘내 더위 네 더위 먼 데 더위.’ 하고 외친다. 이렇게 하면 먼저 이름을 부른 사람은 더위를 팔게 되고, 대답을 한 사람은 친구의 더위를 산 셈이 된다.
그러나 친구가 더위를 팔기 위하여 이름을 부른 것임을 미리 알았을 때는 대답 대신 ‘내 더위 사가라.’고 외친다. 그렇게 하면 더위를 팔려던 아이가 오히려 더위를 사게 된다.
또한 조선 후기 사상가인 정약용이 쓴 ‘소서팔사(消署八事)’라는 시에서는 ‘8가지의 피서법’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는 솔밭에서 활을 쏘거나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네를 타는 것, 넓은 정각에서 투호를 하는 것들이 들어 있다. 또한, 대자리를 깔고 바둑을 두거나, 연못에 핀 연꽃을 유유자적하게 구경하는 것도 피서법이라고 적혀 있다. 게다가 숲 속에서 매미소리 듣고, 비오는 날에는 한시를 지으며, 달밤에는 탁족(濯足)을 하는 것도 더위를 피하는 방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물론 지금의 일상과 사뭇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가만히 열거된 내용을 보면, 하나같이 사소한 일상의 여유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부채는 눈에 보이는 사람의 땀을 식히지만, 매미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식힌다는 생활 속의 여유가 배어 있다.
삼복더위에 보양식보다, 8가지의 피서법보다 더 필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싶다. 배려(配慮)의 사전적 의미는 도와주거나 보살펴주려고 마음을 쓰는 것이다.
진심어린 배려는 신영복 선생의 글처럼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단지 37도 열 덩어리의 존재가 아니라 내가 부채가 되어 눈에 보이는 상대의 땀을 식히고, 내가 매미소리가 되어 상대의 마음을 식히는 것이다.
사랑은 기척 없이 왔다
여름은 문 앞에 신 포도를 주렁주렁 매달아 놓았다.
올 때는 몰랐다 갈 때 더 섬세한 색깔을 띄는 것이 사랑이라 믿었다.
한순간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고는
도저히 이 여름을 떠나보낼 수가 없어요.
정약용이 쓴 ‘소서팔사(消署八事)’에는 탁족(濯足)을 하는 것도 더위를 피하는 방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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