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장소㉙] 안동에서 터를 잡고 사는 이윤학 시인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7-24 11:10

이윤학 시인과는 염천더위에 맨몸으로 첫인사 나눈 사이

1인출판사 ‘간드레’ 운영 편집, 디자인, 교정 직접 맡아

『우리가 사랑한 천국』 은 무려 37차례 교정 거쳐 완성

제비집


이윤학


제비가 떠난 다음 날 시누대나무 빗자루를 들고

제비집을 헐었다. 흙가루와 함께 알 수 없는

제비가 품다 간 만큼의 먼지와 비듬,

보드랍게 가슴털이 떨어진다. 제비는 어쩌면

떠나기 전에 집을 확인할지 모른다.

마음이 약한 제비는 상처를 생각하겠지.

전기줄에 떼 지어 앉아 다수결을 정한 다음 날

버리는 것이 빼앗기는 것보다 어려운 줄 아는 

제비떼가, 하늘 높이 까맣게 날아간다.

ㅡ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제비집 이미지 사진

해마다 여름이 되면 피서를 겸해서 야유회를 가는 모임이 있는데 몇 해 전 여름, 가까운 시인들과 무더위를 피해 가진 ‘경자년 안동도산회동(庚子年 安東陶山會同)’을 안동호반자연휴양림 호반하우스 검무산에서 가진 적이 있다.


이날 회동에는 박기영 이윤학 이동엽 류경무 윤봉초 박승민 이상도 신휘 그리고 나, 이렇게 아홉 시인이 참석해 숲속에 그동안 쌓인 근심을 다 풀고 왔다.


어제가 대서, 내일이 중복이다. 낮 최고 기온이 38도에 이르는 폭염이 지속되는 한여름이 되면 숲을 품은 노천 스파에서 찬물에 맨몸을 담그고 더위를 견딘 그날의 추억이 안부인사처럼 떠오른다.


숲을 품은 노천 스파에서 더위를 물에 풀어놓고 웃음으로 여름을 견딘 시간

이윤학 시인을 그때 처음 만났다. 뜨거운 햇살 아래 찬물에 맨몸을 담근 채 시와 사람 이야기가 오갔다. 땀 대신 웃음이 흐르고,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말 사이를 메워주던 오후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 여름의 한 장면이 훗날 이윤학의 시를 다시 읽을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이 될 줄은.


모임을 마친 뒤 안동에 터를 잡고 사는 그의 집을 찾았다. 서울에서 활동하면서도 틈틈이 안동으로 내려와 글을 쓰고 쉬는 공간이라고 했다. 넓은 마당과 산비탈에 세운 원두막 정자는 자연 속에서 시를 길어 올리는 그의 삶을 닮아 있었다.


이윤학 시인의 안동 시골집 원두막에서

이윤학 시인은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제비집」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먼지의 집』, 『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 『꽃 막대기와 꽃뱀과 소녀와』, 『그림자를 마신다』,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나를 울렸다』, 『짙은 백야』, 『나보다 더 오래 내게 다가온 사람』, 『곁에 머무는 느낌』을 비롯해 장편동화, 산문집, 사진 산문집, 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김수영문학상, 동국문학상, 불교문예작품상, 지훈문학상 등을 수상한 그는 섬세하면서도 예리한 감수성으로 물질 중심 시대를 견디고 성찰해 온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이윤학 시인은 1인 출판사 ‘간드레’를 운영하며 편집과 디자인, 교정까지 직접 맡고 있다.최근 그는 장편소설 『우리가 사랑한 천국』을 출간했다. 2005년 발표한 소설 『졸망제비꽃』을 전면 개작한 증보판으로, “오래된 집을 수리하듯 중요한 골격만 남기고 거의 새로 썼다”고 밝힐 만큼 공을 들인 작품이다. 또한 사진 산문집 『당신과 함께 있는 느낌』을 펴내 일상의 풍경과 기억을 담담한 시선으로 기록했으며, 지역 서점과 문화공간에서 독자들과 만나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1인 출판사 ‘간드레’를 운영하며 편집과 디자인, 교정까지 직접 맡고 있다. 『우리가 사랑한 천국』은 무려 37차례 교정을 거쳐 완성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심한 말더듬이를 겪었던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말하는 대신 글로 표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 경험은 오늘의 문학으로 이어졌고, 지금도 “말하지 않는 대신 보여주는 문장”을 지향한다고 한다. 최근 그의 작품은 초기의 강렬한 서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풍경과 기억을 천천히 응시하는 산문시적 문체로 깊이를 더하고 있으며,  특히 『곁에 머무는 느낌』과 『당신과 함께 있는 느낌』에서는 시와 산문의 경계가 거의 사라질 정도의 문체를 보여주고 있다.


이윤학 사진 산문집『당신과 함께 있는 느낌』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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