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검 전담팀 '사건 발생 이유'에 초점…"딸은 생존자"
캐리어 끌고 가는 피의자들…CCTV 영상에 포착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이밝음 최원정 기자 = 장모를 살해한 뒤 시신을 여행용 가방(캐리어)에 넣어 내다 버린 직후에도 사위 조재복은 기세가 등등했다.
아내 최모씨가 '알겠습니다', '아닙니다'라며 극존칭을 사용했지만, 남편 조씨는 거친 욕설을 일삼았다.
이런 부부의 모습은 대구지검 캐리어시신 사건 전담수사팀이 확보한 주거지 홈캠(가정용 소형 네트워트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검찰은 홈캠 영상을 바탕으로 조씨가 장모와 아내를 '지배-종속적' 관계에 두고 사실상 감금 및 가혹 행위를 일삼다 장모를 살해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내용은 전문가들이 조씨 아내를 공범이 아닌 피해자라고 판단한 근거 자료로도 쓰였다.
연합뉴스는 지난달 이른바 '캐리어 시신 사건' 전담수사팀인 대구지검 김영준(사법연수원 42기)·정연우(변호사시험 9회)·하경준(9회) 검사와 화상 인터뷰를 통해 수사 뒷얘기를 들었다.
지난 3월 31일 오전 대구 도심 하천인 신천에 떠내려온 캐리어 속에서 50대 여성 A씨 시신이 발견됐다.
경찰은 곧바로 A씨의 딸과 사위 조재복을 긴급체포했다.
지난 4월 9일 사건을 경찰로부터 넘겨받은 대구지검은 강력범죄전담부와 여성아동범죄조사부가 참여하는 전담수사팀을 꾸려 보완 수사에 나섰다.
대구지검 '캐리어 시신' 사건 전담수사팀 왼쪽부터 대구지검 정연우(변호사시험 9회)·김영준(사법연수원 42기)·하경준(9회) 검사
전담팀 주임 검사를 맡은 김영준 검사는 추가 압수수색과 현장 탐문을 벌였다.
김 검사는 조재복과 아내, 장모가 살던 오피스텔에서 홈캠 실리콘 마개 속에 있던 SD카드를 찾아냈다.
조재복이 장모를 살해하던 당시 영상은 시간이 지나 지워졌지만, 시신을 유기한 직후부터 체포되기까지 둘의 모습은 홈캠에 남아있었다고 한다.
영상 속 아내는 항상 극존칭을 썼지만, 남편 조씨는 욕설을 일상적으로 사용했다.
조씨는 집에 없는 동안에도 홈캠으로 아내를 감시했다. 그가 홈캠으로 "청소하라"고 말하면 아내는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지시를 따랐다.
주거지에서는 장모 살해 도구로 쓰인 청소기 철제봉 파편 일부도 발견됐다.
대구 신천서 '캐리어 속 여성 시신' 발견 (대구=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31일 대구 북구 칠성동 잠수교 아래 신천에서 여성의 시신이 담긴 캐리어가 발견된 가운데 캐리어가 발견된 지점에서 취재진이 취재하고 있다. 2026.3.31 mtkht@yna.co.kr
김 검사는 압수수색을 위해 오피스텔 문을 열었을 때 당시 장면이 생생하다.
무거운 공기 속에서 악취가 풍겼고, 세 사람과 반려견까지 함께 살았다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세평 남짓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이게 죽음의 냄새구나 싶었다"며 "20일의 수사 기간에 최선을 다해 진실을 규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무겁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김 검사는 '내가 이 사람(조재복)이 됐다'는 생각으로 구청과 행정복지센터 공무원, 공인중개사무소, 휴대전화를 개통한 가게 사장까지 이들 세 사람을 알만한 사람은 모두 만났다.
주변인들은 "항상 셋이 함께 다녔고 조재복을 제외한 모녀만 다니는 건 본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혼인신고를 할 때도 아내 표정이 어두웠고, 조씨가 장모에게 명령조로 서명을 요구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김 검사는 "경찰 수사가 객관적 사실관계를 주로 파악했다면, 검찰은 살해 고의성을 입증하기 위해 '사건이 벌어진 이유'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영장실질심사 받는 '캐리어 시신' 피해자 딸 (대구=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50대 모친의 시신을 캐리어에 담아 유기한 혐의로 긴급 체포된 20대 딸이 2일 대구지법에 도착해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려 이동하고 있다. 2026.4.2 mtkht@yna.co.kr
이 과정에서 조재복이 아내와 장모 명의로 대출을 받아 돈을 챙기고, 장모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해 소액결제 및 보험을 해지해 돈을 챙기려 한 정황도 파악했다.
김 검사는 "내가 쓴 글의 오타는 잘 안 보이듯 관점을 바꿔서 보면 보이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며 "검·경이 크로스체크하는 게 효율적이고 실체에 더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건이 검찰로 넘어올 당시 조씨의 아내 최모씨는 시체 유기 공범이자 가정폭력 피해자 신분이었다. 동시에 살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기도 했다.
가정폭력과 발달장애인 사건을 담당해 온 여성아동범죄조사부 정연우 검사가 최씨 대면조사를 맡았다.
정 검사는 "가정폭력 피해자는 추가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건을 축소해서 진술하는 경향이 있다"며 "최씨가 부담감을 내려놓고 상황을 자세히 진술할 수 있도록 수사기관이 피해자를 보호하는 기관이라는 점을 반복해서 알려주면서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조사 초반엔 폭행으로 생긴 멍을 실수로 부딪혀서 생겼다고 진술하는 등 다소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정 검사는 최씨에게 조재복을 처음 만난 때부터 부부가 된 과정, 부부 생활, 어머니가 사망하기까지 지금까지 겪은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최대한 개방형 질문을 던지고 반응을 살폈다.
최씨는 조사 말미에는 조재복이 동물을 학대하고 자신을 데려가 대출받게 했다며 묻지도 않은 내용을 먼저 털어놓으며 마음을 열었다.
"다 이야기를 하고 나니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검찰은 최씨 진술 등을 바탕으로 조재복에게 특수중감금치상 등 혐의를 추가로 적용해 기소했다.
조재복이 손을 내밀면 최씨가 빗을 건네고, 그가 머리를 빗질한 뒤 다시 빗을 돌려주면 아내가 두 손으로 빗을 돌려받는 모습이 담긴 영상도 있다.
대검찰청 통합심리분석 및 정신과 전문의 자문 결과 홈캠 영상 등을 바탕으로 '아내가 남편의 강압적 통제하에서 학습된 무기력 상태에 이르렀다'고 평가가 나왔다.
부장검사 회의에서도 과연 아내가 남편의 시체 유기에 저항할 수 있었는지 아내의 피해자성에 대해 치열한 법리 검토가 이뤄졌다.
영장실질심사 받는 '캐리어 시신' 사건 피의자 사위 (대구=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장모를 폭행 살해한 뒤 캐리어에 시신을 담아 유기한 혐의로 긴급 체포된 20대 사위가 2일 대구지법에 도착해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려 이동하고 있다. 2026.4.2 mtkht@yna.co.kr
결국 검찰은 최씨가 공범이 아니라 피해자라고 결론 내린 뒤 집중적인 지원에 나섰다.
강력범죄전담부 하경준 검사가 피해자 지원을 함께 담당했다.
하 검사는 "자문을 맡은 정신과 전문의가 '아내는 생존자로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며 "수사 과정에서 최씨를 온전하게 피해자로 보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불기소 결정 후 최씨를 석방했을 때 (심리 상태상) 안전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며 "가족의 도움도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 석방 후에도 관심을 가지고 지원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최씨 석방 후 입원 치료를 받게 하고, 그동안 남편 통장으로 입금되던 기초생활수급비도 직접 받게 하는 한편 압류 방지 계좌도 개설해줬다.
또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의뢰해 최씨가 모친을 살해한 남편과 이혼하도록 절차를 지원하고 있다.
검찰은 피해자 지원 사건 관리 회의에서 유관기관과 협의를 거쳐 아내의 퇴원 후 주거 문제부터 자립 계획, 재산 관리 등 전반적인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하 검사는 "아내가 자립할 수 없고 불안정한 상태인데 석방한 뒤에 모른척할 수 없었다"며 "검찰이 내린 결정에 대한 책임"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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