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 이어 8년 가까이 농삿길 막막…상태 살피며 연일 노심초사
발병 농가 낙인 찍힐까 걱정도…전국 6개 시도 106개 농가 피해
과수화상병 발생으로 사라져버린 배밭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국종합=연합뉴스) "6년이나 키운 사과·배나무들을 모두 땅에 묻어버리는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에서 300㎡ 규모의 사과·배·복숭아 과수원을 운영하는 A씨는 터져 나오는 깊은 한숨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지난달 27일 사과나무 가지가 새까맣게 타들어 간 것을 발견하고 농업기술센터에 신고했다.
검사 결과는 과수화상병에 걸렸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회신이었다.
과수화상병은 주로 사과, 배 등 장미과 식물에서 발생하는 세균성 전염병으로 감염 시 식물의 잎, 꽃, 가지, 줄기, 과일 등이 붉은 갈색이나 검은색으로 말라 버린다.
2015년 경기 안성시에서 처음 발병한 이후 꾸준히 발생하지만 백신과 치료제가 없고, 확산까지 빨라 대부분 매몰 처리에 의존해 '과수 괴질'로도 불린다.
고양시의 경우 그동안 과수화상병이 발생하지 않았던 곳이라 A씨의 충격은 더욱 컸다.
A씨는 방제 절차에 따라 애지중지 키워온 나무 40여그루가 모두 뽑혀 땅에 묻히는 모습을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며 당시의 안타까움을 전했다.
A씨의 마음이 더욱 괴로운 것은 과수화상병 피해가 당장의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수화상병 감염 농장 매몰 [연합뉴스 자료사진]
과수화상병으로 폐원한 과수원은 18개월이 지나야 과수를 심을 수 있다. 여기에 묘목을 심고 수확까지 6년 정도 걸리는 것을 고려하면 8년 가까이 농삿길이 막히는 셈이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에서 16년째 사과 농사를 짓는 B씨 역시 올해 처음 과수화상병 피해를 겪었다.
그가 운영하는 과수원 13곳 중 1곳(2.640㎡)을 모두 매몰 처리했다.
B씨는 "인접한 괴산군에서 매년 과수화상병이 나와 우리 쪽으로 넘어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으나, 실제 겪게 되니 막막하다"며 "주변 과수원에도 세균이 벌써 퍼진 건 아닌지 매일 불안감에 노심초사"라고 토로했다.
이어 "세균이 잠복해 있는 나무가 있다면 내년은 물론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과수화상병이 동네의 분위기도 바꿔놓았다는 농민들의 푸념도 나온다.
지난 16일 찾은 충남 예산군의 한 사과 과수원 주변은 방제 작업 뒤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
확진 뒤 굴착기가 들어와 감염 나무를 뽑아내고, 방제복을 입은 작업자들이 과원 곳곳을 오가던 자리는 흙바닥만 드러난 채 휑한 모습이었다.
주변 농가들은 혹시 모를 확산을 우려해 가지와 잎 상태를 수시로 살피면서 주변과의 대화를 아꼈다.
과수화상병 감염 농장 매몰 [연합뉴스 자료사진]
과수화상병이 발생하면 단순 과수 피해를 넘어 발생 농가라는 낙인이 가져올 2차 피해에 대한 우려도 상당하다는 게 농민들의 전언이다.
발생 농가로 알려지면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이 집중되고, 다른 농산물 거래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산군 관계자는 "예산은 사과 주산지라 과수화상병 문제가 농가 생계와 직결된다"며 "농가들이 굉장히 예민해 통화도 조심스러워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17일 농정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14일 충주시 소재 사과 농가에서 올해 첫 과수화상병 발생이 확인된 이후 이달 15일까지 전국 106개 농가에서 44.62㏊의 누적 피해가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충북 46곳(18.57㏊), 경기 24곳(11.04㏊), 충남 19곳(9.6㏊), 전북 8곳(2.76㏊), 강원 6곳(2.21㏊), 세종 3곳(0.44㏊) 순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달 5일 과수화상병 위기 단계를 '경계'(기존 발생 지역 다발생, 신규 시도 발생)로 격상한 뒤 대응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농촌진흥청과 시·군 농업기술센터에 상황실을 설치하고 예찰·방제 강화와 더불어 사과와 배 수급 동향을 살피고 있다.
과수화상병으로 사라져버린 사과밭 [연합뉴스 자료사진]
또 의심 증상 발견 시 신속한 신고와 정밀 진단, 긴급 방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관계기관 간 협조체계를 구축·운영 중이다.
농정당국 관계자는 "과수화상병 확산을 막으려면 의심 증상이 나타날 경우 농가의 적극적인 신고가 중요하다"며 "아울러 농작업 때에도 도구 소독을 철저히 하고, 다른 과수원 출입은 가급적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과수화상병 관련 신고는 대표전화(☎ 1833-8572)와 시·군 농업기술센터 등 관계기관으로 하면 된다.
(김광호 김준범 노승혁 양영석 양지웅 전창해 최영수 기자)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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