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장소 ⑯] 그가 사랑한 여자는 모감주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4-18 16:33

사랑은 다 그런 것일까 오래 가야 일년 삼개월

눅눅한 땀만 손에 쥐어놓고 도망간 여자를 찾아

산을 헤매며 길을 잃게 만드는 것일까

전남 화순 천불천탑 운주사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이성복 시인의 「남해금산」 전문 


비 많이 오는 날은 아니었지만 어느 해 여름 혼자 남해금산에 간 적이 있다. 남해금산 어디쯤 돌속에 묻혀 있을 이성복 시의 한 여자를 찾아간 것이 아니라 내 곁에서 도망간 내가 사랑한 한 여자를 찾으러 간 것이었다. 


첫사랑에 실패하고 나서 30대 중반에 또 다른 사랑이 나를 찾아왔다. 그 여자와 나는 나이가 열한 살 차이가 났다. 나를 ‘아저씨’ 라고 부르며 잘 따랐는데, 나이 어린 여자를 사귀는 것이 정당한 일인지 항상 갈등에 휩싸였다.


그 여자는 나를 만날 때마다 “아저씨 나랑 결혼해요?” 하며 졸라댔다. 그때 나는 직장도 변변치 않았고 아이도 하나 딸려있는 홀아비인데 이런 보잘 것 없는 사내를 좋아라 해주는 어린 여자가 눈물겹도록 고마웠지만 늘 죄 짓는 기분으로 그녀를 만났다. 


어느날 “나랑 결혼해서 후회하지 않겠냐”고 조심스레 물어보니,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했다. 나는 일년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앞으로 일년 동안 깊이 생각해보고 그동안 다른 남자도 사귀어보고 잠도 자봐라 그래도 일년 뒤에 내가 좋다면 그때 결혼하자” 이렇게 말하고 일년간 만남을 갖지 않기로 약속했다. 


나는 일년 안에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해 집도 마련해놓고 결혼 자금도 준비하려고 구미공단에 일자리를 구했다. 아마도 그 여자는 내 말을 간접적인 절교 선언으로 받아들인 듯 약속한 일년에 일주일도 남지 않은 그해 겨울, 눈 많이 쌓인 날, 편지 한장 딸랑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혹여라도 어디서라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함께 한 번이라도 가본 적 있는 장소는 모조리 뒤지며 찾아다녔다.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의 산이란 산, 절이란 절은 안가본 곳이 없을 정도다. 


충청남도 예산군에 위치한 천년고찰 수덕사의 범종각 

어떤 날은 남해금산 구석구석 쌍문홍을 지나 보리암 좌선대 상사바위를 훑으며, 종일 지치도록 헤매다가 해 저물녘에 산을 내려와서는 상주해수욕장까지 맨발로 뜨거운 아스팔트 길 위를 걷고 또 걸어갔다. 


어쩌면 내가 찾던 여자도 이성복의 「남해금산」그 여자처럼 돌 속으로 숨어버렸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시를 쓰다 보면 술술 잘 풀릴 때가 있고 어떤 때는 머리고 가슴이고 꽉 막혀서 단 한줄의 시도 쓰여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나의 경우는 어느 해에는 한 편도 쓰지 못하고 지나갈 정도로 기복이 좀 심한 편이긴 하지만 요즘 같아서는 하루에 서너편씩 쏟아져나오는 날이 사나흘 이상 지속될 정도로 가로늦게 시작의 호황기를 맞고 있다.  


돌이켜보면 시를 가장 왕성하게 썼고 청탁도 이어지고 발표도 많이 했던 시기는 박기영 안도현 장정일 등과 동인 활동을 하면서 가깝게 어울렀던 1990년대 초중반부다. 


그 때는 거의 하루종일 죽자고 시만 썼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콸콸 쏟아져나오던 시의 수도꼭지가 꽉 막혀버렸다. 문학사상의 청탁을 받고 나서부터인데.


그가 사랑한 여자는 

직업과 가족을 버리고 산으로 도망가...


이렇게 딱 두줄도 끝맺지 못하고 더 이상 시가 써지지 않았다. 당시에 나는 사랑하는 여자를 찾아 주말마다 온 산을 헤매고 다닐 때였다. 


그러는 사이에 시를 완성하지 못해 문학사상에 원고를 보내지 못했다. 미리 써둔 다른 시도 여러 편 있었지만 꼭 그 여자를 소재로 쓰던 시를 완성해서 보내고 싶었다. 그 시가 완성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쓸 수 없을 것이고 다른 어떤 것을 쓰더라도 다 소용없는 쓰레기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문학사상 편집자는 의외로 “다음달 마감일까지 시를 써 보내달라”고 차분하게 말했다. 나는 또 한달간 산을 헤매고 다녔는데, 그 여자도 못찾았고 시도 못썼다. 


한달이 지나고 어김없이 문학사상 편집자는 또 전화를 해왔다. “시를 아직도 못썼다”고 말하니 “그럼 다음달에는 꼭 보내달라 ”고 정중히 말하고 끊는 것이었다.


울산 울주군에 위치한 석남사

그렇게 온산을 뒤지고 주말마다 여러 절을 찾아 헤매던 중 어느날이었다. 석남사에 들렀다가 내려온 날 밤 꿈에 그 여자가 나타나서 “나 여기 있는데 왜 못찾아요...” 하면서 모감주나무 가지로 나를 두들겨 깨우는 것이었다. 


그 길로 회사도 안가고 다시 석남사로 바로 달려갔다. 그 며칠 전에도 석남사에 찾아갔을 때 분명히 내 느낌이 여기 있다고 생각되어 내 여자 내어놓으라고 행패 부리다가 덩치 큰 여승들한테 바짝 들려서 문밖으로 패댕가리쳐진 적이 있었다. 


밤은 깊어 사방이 칠흑처럼 캄캄한데...절문 닫기는 소리가 대포 소리보다 더 컸다. 그 순간 귀가 찢어지고 머리가 막막해지면서 가슴이 그렇게 갈갈이 아프게 찢어지는 순간이 지나간 다음에도 내 목숨이 살아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온산을 뒤지며 찾아다닌 끝에 다시 찾아간 석남사에서 드디어 그녀를 만났다. 석남사에 가서 몰래 숨어있다가 지나가는 것을 발견하고 달려나가 붙들어 세웠다. 옥신각신 하는 동안 덩치 큰 여승들이 우루루 달려나왔다. 


또 한번 큰 난동이 일어날려는 찰나에 주지스님인지 모르겠지만 근엄한 분위기를 풍기는 나이 든 여승 한 분이 젊잖게 다가와 나더러  “방에 들어가 조금 기다리면 두 사람이 만날 시간을 주겠노라”며 중재에 나섰다.

 

다른 여승의 안내를 받고 작은 방에 들어가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당장 산을 내려가서 결혼하자”고 말했다. 그녀는 “너무 늦었다”면서 나더러  “다시는 오면 안된다”고 신신 당부했다.


옥신각신 하다가 와락 껴안으려고 드니 그녀는 내 손길을 뿌리치고 재빠르게 샛문으로 도망치듯 나가버렸다. 나는 사랑하는 여자를 부처한테 빼앗긴 절망감에 휩싸여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눈물을 쏟으며 산을 내려올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 후로 내 인생에 마지막 사랑이라고 여겼던 여자를 잃고 많이 방황했다. 그때 천근이 넘는 슬픔을 가지산에 내려놓고 와서 그런지, 이제는 세월도 많이 흘러 그러한지, 더 이상 슬퍼하지 않고 잘 살고 있다. 


그 당시에 두줄도 못 쓰고 글문이 닫혀 멀찍이 밀쳐두었던 초안은 아주 한참 뒤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나서 「모감주나무」라는 시로 완성이 되었다. 시를 완성하고 나자 이제는 그 여자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모감주나무 


박 상 봉 


그가 사랑한 여자는 

직업과 가족을 버리고 산으로 도망가 

모감주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사랑을 잃은 사내는 주말마다 산을 오른다 

산은 다가 갈수록 멀어지고 

나무는 숲 속에서 자주 길을 잃는다 

사랑은 다 그런 것일까 오래 가야 일년 삼개월 

눅눅한 땀만 손에 쥐어놓고 도망간 여자를 찾아 

산을 헤매며 길을 잃게 만드는 것일까 

비오는 날 사내는 산을 오른다 

깊은 골짝 바위틈에서 나는 물냄새 

쑥댓잎 흔드는 바람소리 휘젓고 다니다가 

비겁한 지식에 기대어 삶을 망쳤다고 

여자마저 놓쳐버렸다고 투덜대며 

젖은 발걸음 돌려세우는데 

절 집 마당가에 웅크린 모감주나무 

긴 회초리가 뒷등을 후려친다


—천태산은행나무를사랑하는사람들 『노랑말로 말한다』(詩와에세이, 2011)


문학사상에 청탁받은지 무려 7년이 지났지만, 사연과 함께 이 원고를 보냈는데 실리지는 않았다. 바뀐 편집자는 무슨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나 싶어 내 원고를 팽개쳐 버렸겠지...


이 세상에 지금 내가 한 말을 믿어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문인수나 이하석이나 장엄송도 아니고 지방에 보잘 것 없는 시인에게 시를 청탁하고 나서 석달동안이나 줄기차게 전화하며 기다려줄 문예지가 대한민국 어디에 있을까?


앙문규 시인이 해마다 여는 천태산 은행나무 시제(詩祭)

어쨋건 나는 속이 다 후련했다. 「모감주나무」를 완성한 그날부터 시가 봇물 터진듯 쏟아져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모감주나무」는 나중에 양문규 시인이 주관하는 ‘천태산 은행나무 시제(詩祭)’에 발표했다. 


얼마나 멋진 반전인가? 잃어버린 여자를 찾아 산을 헤매면서 쓴 시를 산에 걸어놓고 첫 발표를 하였으니.


나는 시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들어 시에는 반전이 있어야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된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데 시의 반전은 책상머리에 앉아서 찾을 것이 아니라 산을 헤매면서 찾아야한다. 대학 강단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시장이나 공장에 가서 찾아야한다.


나는 이른바 귀족시인(?) 패당에 속하지도 못하고 이제는 메이저급 문예지에는 청탁을 받지 못하는 지방시인으로 전락했다. 그래도 가끔 청탁이 오는 곳이 있어 경중을 따지지 않고 따끈따끈한 신작시를 새로 써서 보낸다. 구작도 가능하다고 해도 나는 신작이 없으면 작품을 보내지 않는다. 


주위에서는 시를 아무데나 발표하지말라고 한다. 값 떨어진다고... 또 우리나라 4대 문예지에 발표해야 주목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천날 가봐야 청탁 한번 없는데도...


청탁만 기다릴 게 아니라 투고를 하는 적극적인 방법도 있다는 주변의 권유를 듣고 한 두번 그렇게 해본 적도 있으나 구차해보이기 싫어 앞으로는 그리하지 않을 작정이다.


어줍잖은 시인이 꼴갑 디기 떤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무릇 시인이란  ‘삐끼’가 되어서도 안되고 시인이 ‘딴따라’ 하곤 달라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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