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작품 소개] 김지연 작가의 단상(斷想) 6070년대 가난의 풍경을 감각적으로 복원하다.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3-04 19:36

1960–70년대 절대 빈곤의 풍경을 여섯 살 아이의 시선으로 복원한 김지연의 「단상(斷想)」이 깊은 울림을 전한다. 작품은 언니의 입양과 어머니의 암묵적 합의라는 장면을 통해, 가난이 한 가족의 삶에 남긴 상처를 감각적으로 회고로 증언한다.

김지연 작가


계간 <문학평론> 2025년 겨울호에서 김지연 씨의 수필 단상(斷想)이 수필 부문 신인문학상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당선작 <단상>은 1960~70년대 한국 사회의 절대빈곤을 여섯 살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낸 회고 수필이다. 작품은 '털신 한 켤레', '빨간 고무대야', '풀빵 냄새'와 같은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가난을 추상적 개념이 아닌 생생한 감각적 체험으로 재현해냈다는 평을 받았다.


특히 가난 때문에 언니를 중절모 신사에게 입양 보내야 했던 이별의 순간을 아이의 시선에서 서술한 대목은, 한국 사회가 강요했던 조숙함의 비극을 정직하게 증언하고 있다.


심사위원 측은 김지연의 「단상(斷想)」은 가난을 설명하지 않고 감각으로 증언한 수작이다.  1960–70년대의 절대 빈곤을 아동의 시선으로 정밀하게 복원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그때의 한국 사회의 가난은 시대 구조가 만들어낸 절대 빈곤의 양상이었다. 한국 전쟁 이후 국토는 폐허에 가까웠고 산업 기반은 붕괴된 상태였으며, 많은 가정이 식량과 주거를 걱정해야 했다. 보릿고개는 일상이었고 쌀 대신 잡곡과 구황식물로 끼니를 잇는 일이 흔했다. 박정희 정부 시기 경제개발계획이 추진되며 고도성장이 시작되었지만, 성장의 온기는 모든 계층에 고르게 닿지 못했다. 농촌 인구는 생계를 위해 도시로 이동했고 판자촌과 달동네가 형성되었으며, 저임금 노동과 장시간 노동은 삶의 기본 조건처럼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빈곤은 가족 해체와 조기 노동, 입양과 같은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특히 여성과 아동에게 더 큰 희생을 요구했다. 결국 60~70년대의 가난은  산업화의 이면에서 한 세대가 감내해야 했던 집단적 생존의 기억이었다.

 

특히 언니의 입양 장면은 생존 앞에서 조숙해질 수밖에 없었던 유년의 비극을 절제된 문장으로 드러내 깊은 울림을 남긴다. 기억을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견디게 하는 태도에서 문학적 진정성과 서사적 밀도가 확인된다.

 "작가의 수필은 박완서의 온도와 신경숙의 침묵을 닮아 있다"며, "거대 담론으로 포착할 수 없는 개인의 체험을 통해 시대의 진실을 복원한 소중한 기록물"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작가는 당선 소감을 통해 “가슴 속에서 타닥타닥 피어오르던 그 시절의 불꽃을 문장으로 옮길 수 있어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기억의 파편들을 모아 시대의 아픔을 위로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전했다.


❛작품 속으로❜


단상(斷想) 


대청마루에서 뛰어놀던 노을이 먼 산 넘어 어둠을 가리키고 있었다.

기약 없는 가난을 등에 지고 콧물을 훔치시며 토방으로 들어서시는 어머니.
"엄마, 어디 갔었어? 나 버리고 도망간 줄 알았어."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조용히 누우셨다. 방에서 나온 나는 댓돌에 얹어진 털신 한 켤레를 멍하니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눈발 치는데 차가운 발로 얼마나 뛰어 다니신 걸까.' 아픔은 어린 가슴에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랫목에 어머니의 무릎이 고요히 접혀 있었다. 양말 끝에서 피어오르는 온기가 안개처럼 방 안을 감싸 안으며, 얇은 신음 소리가 문고리를 흔들었다. 파르르 솜이불이 떨리는 걸 보니 몸살을 앓으시는 모양이다.
나는 고사리 같은 손을 어머니 이마에 올리고 한참을 바라보다 울먹였다.
"아프지 마, 엄마. 엄마."
칭얼거리다 나는 볏단처럼 널브러져 잠이 들었다.

신작로 느티나무 아래에서 철없이 뛰놀던 우리 자매.
먼 발치에서 중절모에 바바리코트를 입은 중년의 신사가 서서히 다가왔다.
그는 언니를 향해 "아가, 우리 집에 가서 살지 않으렴."
신사가 언니의 손을 잡는 순간, 언니는 그 손을 뿌리치며 엄마의 치마자락을 붙들고 울며 매달렸다.
"엄마! 나.이제 말 잘 들을 게. 보내지 마, 엄마."

너무 우는 언니가 안쓰러웠던지, 신사가 말했다.
"그럼 작은 딸을 제가 데려 다 키우면 어떨까요."

"작은애는 아직 너무 어리고, 큰애만 데려 가시죠."

나는 따라가지 않기 위해 언니를 달래며.
"언니, 언니는 좋겠다. 저 아저씨 집에 가면 흰쌀밥도 먹고 학교도 가고. 언니가 가.

나는 엄마랑 있다가 언니 보러 갈게. 먼저 가 있어."
한참이 지나고, 언니는 울며 그 신사의 손에 이끌려 가고 있었다.

남겨진 내 눈과, 주저앉아 우는 엄마의 등 뒤로 겨울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울지 마, 엄마.'
어린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멀어져 가는 중절모 신사 품에 안긴 언니를 멍하니 바라 보고만 있었다.

내 유년의 나이 여섯 살, 그때 언니와 이별을 했다.


 새벽부터 달그락달그락 부엌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함께 풀빵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어머니가 장에 가실 모양이다.

"엄마, 오늘 장사 나가?"


 하얗게 피어 오르는 입김 

 빨간 고무대야를 머리에 이고 

 재 넘어 가시는 어머니. 

 등에 업은 포대기 밑으로 빠져나온 어린 동생발이 바람 속에 달랑거렸다.


 언덕 위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내가 있었고 

 가슴에선 타닥타닥 불꽃이 피는 것 같았다.


수상패를 어머니 영정에 받치다.


김지연 (아호: 해윤 海潤)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자연의 숨결과 인간의 고독을 시적 문장으로 빚어내고 있다.
《문학愛》 시 부문 등단을 시작으로 《계간 한국문학작가협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펼쳤다. 환경에 대한 깊은 사유로 ‘환경창작문학상’을, 국경을 넘는 문학적 교류로 한국·싱가포르 수교 50주년 기념 수교문학상 수상‘ 수상하는 등 폭넓은 문학의 영역을 발전시켜 나갔다.
특히 2025년 《계간 문학평론》 수필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적 서정과 비평적 통찰을 아우르는 문학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현재 시와늪문인협회 호남 본부장으로 활동하며 계간문학평론의 대내외 홍보 국장으로  전반적인 발전에도 헌신하고 있다.


저서로는 《너라서 아프다》, 《밤에 건너온 편지》, 《떠나자 바람 부는 언덕으로》, 《너의 시를 창가에 켜두고》가 있으며, 작가 특유의 따스한 시선으로 독자들의 메마른 감성을 적시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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