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포커스] ‘그 겨울날의 노래’ 재중동포 유미화 작가의 기적 같은 귀환 / 인터뷰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2-18 14:18

재중동포 유미화 작가의 ‘그 겨울날의 노래’ 기적 같은 귀환

전직 일본어 교사, 간 이식 후 의료사고로 실청(失聽)과 기억상실증 시련 조력자 남편 강덕수 회장과 함께 빚어낸 예술혼… "제3차 축제 한국 개최 목표"

재중동포 유미화 작가


재중동포 유미화씨는 한때 교단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며 아이들의 명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던 스승이었다. 퇴근 후에는 열정적으로 글을 써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던 작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15년 전, 생사를 넘나드는 간 이식 수술 직후 찾아온 예기치 못한 의료 사고는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졌고, 소중했던 기억들마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긴 암흑의 터널을 지나, 작품집 《그 겨울날의 노래》를 세상에 내놓으며 소설가이자 무용가로 화려하게 부활한 유미화 작가를 만났다. 들리지 않는 고요 속에서 누구보다 뜨거운 인생의 교향곡을 써 내려가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조선족 연합회, 기념 행사

 

 Q. 최근 문학과 무용계에서 잇따라 큰 상을 받으셨습니다. 교단에 계실 때와는 전혀 다른 삶의 무대 위에 서 계신데,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유미화: 맞습니다. 예전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속에 살며 제가 세상을 가르친다고 믿었죠. 하지만 모든 소리가 멈춘 ‘적막강산’에 홀로 던져진 것 같았습니다.


 Q. 수술 후 소리뿐 아니라 기억까지 잃어가는 과정을 ‘수렁’이라 표현하셨더군요. 그 두려움을 어떻게 견디셨나요?


유미화: 진짜 나를 찾아가는 길은 모든 걸 잃어버린 듯한 그 지점에서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첫걸음, 모범 교사로 선정되던 날의 환희… 그런 소중한 기억들이 실타래처럼 엉키다 어느 순간 증발해 버리더군요. 책 한 페이지를 읽어도 돌아서면 ‘내가 뭘 읽었지?’ 자문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교단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지식보다 앞서는 ‘포기하지 않는 의지’였습니다. ‘기억을 잃었다고 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다시 쌓아 올리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죠.

 

Q. 아이가 말을 배우듯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유미화: 손은 떨리고 글씨는 제 모양을 잃었지만, 오늘 먹은 밥과 창밖의 푸르름을 적어 내려가는 행위 자체가 제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일이 되었습니다. 무너진 성의 벽돌을 하나씩 다시 쌓는 기분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머릿속에서 이야기들이 조용히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그 마음의 목소리를 글로 풀어낸 것이 소설이 되었고, 감사하게도 세계 조선족 문학인 축제와 KBS 등에서 우수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듣지 못하는 내가 오히려 더 큰 목소리를 갖게 된 셈이니, 참 기적 같은 일이죠.


세계 조선족 민간문화 예술 성전(盛典)

 

Q. 무용가로서의 활약도 놀랍습니다. 음악이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어떻게 리듬을 타시고, ‘특등상’이라는 최고의 영예를 안으셨나요?


유미화: 몸이 리듬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심장의 박동, 호흡의 깊이, 관절의 감각이 저만의 교향곡이 되었죠. 제가 창작한 ‘황궁춤’을 완성하기 위해 음악 한 곡을 쉰 번 넘게 반복해서 틀어놓고 그 미세한 진동과 잔상을 몸에 새겼습니다. 그렇게 붙잡은 리듬으로 춤을 추며 저 스스로도 치유를 경험했고, 그 진심이 닿아 한국 국회의원 표창까지 받게 된 것 같습니다.


저자 유미화 

 

Q. 앞전에 출간하신 작품집《그 겨울날의 노래》는 작가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유미화: 이 책은 제가 기억의 수렁에서 헤매던 세월, 그리고 다시 찾은 기억들을 붙잡아 꾹꾹 눌러 쓴 생존의 기록입니다. 언제 다시 병이 재발해 이 소중한 것들을 앗아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늘 곁에 있어요. 그래서 매일 공부하고, 쓰고, 치료에 전념하며 이 순간을 마지막 기회처럼 소중히 여겼습니다. 작년 9월에는 유명 여성 잡지에 제 글이 실리고 방송에서 낭독되는 기쁨도 누렸죠.


유미화 작가와 강덕수 총회장 

Q. 작가님의 곁에는 든든한 지원군이 조선족 민간문화예술단을 이끌고 계신 강덕수 총회장님이 남편으로 알고있습니다. 남편의 도움이 작가님의 예술 활동에도 큰 힘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유미화: 맞습니다. 남편은 제가 소리를 잃었을 때 제 귀가 되어주었고, 기억을 잃었을 때 제 과거를 지켜준 사람입니다. 제가 창작한 ‘황궁춤’이 세계 조선족 민간문화예술 축제에서 특등상을 받고 국회의원 표창까지 받을 수 있었던 건, 남편이 닦아놓은 민간 문화의 토양 덕분이었습니다.



 Q. 강덕수 회장님께서는 이 축제를 청도에서 두 차례 성공적으로 개최하셨죠.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유미화: 남편은 현재 청도에서의 성공적인 개최 경험을 바탕으로, 제3차 세계 조선족 민간문화예술 축제를 이곳 한국에서 개최하려는 큰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 조선족 민간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고 교류의 장을 넓히려는 남편의 열정을 저 역시 글과 춤으로 힘껏 도울 생각입니다.

 

 Q. 작가님의 삶은 시련 앞에 놓인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유미화: 저는 여전히 듣지 못합니다. 하지만 소란스러운 세상의 소음 대신 내면에서 피어나는 선명한 메아리를 듣습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빈자리에는 반드시 별처럼 반짝이는 것들이 채워집니다. 그것은 흔들리지 않는 용기와 절망을 딛고 일어선 의지의 결실입니다. 제 글과 춤이 누군가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의 등불이 되길 소망합니다.

 


기억의 실타래가 엉키고 단어조차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던 절망의 순간, 그녀를 붙잡아준 것은 ‘기록하는 행위’ 그 자체였다. 쉰 번 넘게 음악의 진동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빚어낸 ‘황궁춤’의 몸짓은, 들리지 않는 귀가 아닌 깨어 있는 영혼이 추는 춤이었다.

삶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린 빈자리는 결코 허무의 공간이 아님을. 그 고요한 빈터야말로 가장 순수한 용기와 의지가 뿌리 내릴 수 있는 비옥한 토양임을 말이다. 15년의 겨울을 이겨낸 유미화의 '그 겨울의 노래'와 한국 개최를 앞둔 '세계 민간문화예술 축제'가 우리 사회에 어떤 따뜻한 바람을 몰고 올지 기대된다.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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