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칼럼]봄은 오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이다 _청계 이상석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2-10 13:24


구례 화엄사 자장매 개화


퇴역을 앞둔 동장군이 마지막 심술을 부리듯 혹한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봄마중을 훼방 놓는 듯한 날씨지만, 자연의 변화는 이미 표면 아래에서 시작됐다. 두터운 얼음장 밑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은 하루가 다르게 몸집을 줄이고 있다. 눈에 띄지 않을 뿐, 봄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하동 쌍계사 관음전 약수터 물길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사람의 의지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바람이 만들어낸 훈풍은 계절의 파수꾼인 매화를 깨운다. 올해도 어김없이 양산 통도사와 구례 화엄사에서는 자장매가 꽃망울을 터뜨렸고, 하동 쌍계사 관음전 약수터에서는 얼어 있던 물길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봄은 선언처럼 오지 않는다. 언제나 징후로 먼저 온다.


사찰에서 맞는 봄은 유난히 조용하다. 꽃이 피기 전에 물이 먼저 움직이고, 색이 바뀌기 전에 빛의 결이 달라진다. 이는 불교적 시간관과도 닮아 있다. 변화는 갑작스럽게 일어나지 않는다. 오래 누적된 흐름이 어느 순간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얼음이 깨지기 전부터 물은 이미 흐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봄’은 흔히 계절을 가리키는 명사로 쓰이지만, 그 어원을 들여다보면 동사에 가깝다. 봄은 ‘보다’에서 비롯된 말이다. 즉, 봄은 오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다. 햇살이 따뜻해지고 꽃이 피어도, 바라보지 않으면 봄은 존재하지 않는다. 봄은 자연의 사건이기 이전에 인간 인식의 사건이다. 그래서 봄마실은 발걸음보다 시선이 먼저 가벼워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꽃의 화려함만을 보는가, 아니면 그 꽃이 피기까지 견뎌온 시간을 함께 보는가. 흐르는 물의 청량함만을 보는가, 아니면 얼음을 밀어내고 나아온 보이지 않는 힘을 읽어내는가.


봄은 매년 찾아오지만, 매년 같은 봄은 아니다. 보는 만큼 다르게 온다. 결국 봄은 계절이 아니라 태도다. 다시 보고, 천천히 보고,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의 자세가 있을 때 비로소 봄은 우리 곁에 선다.


청계 이상석 시인 수필가(창원 마산)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헤드라인 뉴스

한국매일뉴스
등록번호인천 아 01909
발행인최용대
편집인이원희
연락처010)8834-9811
FAX031)781-4315
이메일hangukmaeilnews@naver.com
사무실031-781-9811
사업자 번호583-06-03523
주소 인천 서구 원당대로 628 714호 보미 골드 리즌빌
한국매일뉴스

한국매일뉴스 © 한국매일뉴스 All rights reserved.

한국매일뉴스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