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말의 힘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자 생각을 공유하고 행동을 이끄는 좌표와 같다. 강제보다 설득에 의존하는 민주정치에서 말의 힘은 특히나 중요하다. 정치에서 적절한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크다. 따라서 좋은 말, 공정한 말을 쓰는 것이 정치인에게는 거의 의무에 가까운 행위 규범이 되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 규범성에 소홀한 정치인의 말은 시민의 생각을 가두는 감옥의 역할을 한다. 오늘날 우리가 ‘정치 양극화’라고 부르는 현상은 부적절한 정치 언어에서 비롯된 바 크다. 여야 사이에서 혹은 같은 당의 계파 사이에서 그저 편을 나눠 ‘하게 되어 있는 말’을 반복하는 것, 마치 자신들만 옳음을 독점하고 있는 듯 내세우는 것, 상대를 마주 보고 차이를 좁히기 위해 대화하고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등을 돌려 자신의 지지자를 향해 상대의 잘못을 일러바치고 모욕하는 것, 이런 식으로는 일이 잘될 리 없다. 그렇게 해서는 정치가 사회를 통합하는 기능을 할 수가 없다.
민주적 정당정치란 누가 더 공익에 기여할 수 있는가를 두고 진보와 보수가 경쟁하는 것을 말한다. 진보든 보수든 누가 더 공익적으로 유능한가를 두고 다투어야지, 진보는 반(反)보수, 보수는 반(反)진보를 표방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정치는 ‘유사 전쟁’으로 퇴락하게 된다. 그렇기에 상대에게 거부감을 갖게 하는 언어를 앞세워 정치를 하는 것은, 그것이 얼마나 진보적이고 얼마나 보수적이냐의 문제 이전에, ‘정치적 범죄’에 가까운 일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보수와 진보가 추구하는 가치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들 사이의 불완전한 상호이해는 인간의 정치가 감수해야 하는 고질적인 요소다. 그러나 그러한 불일치와 불완전함은 그것에 맞추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 조건이지 좋은 사회로의 길을 방해하는, 단지 극복돼야 할 장애물이 아니다.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의 논의 기반을 늘려갈 수 있다. 아무리 논의해도 오해로 볼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면 그때는 적극적으로 타협해야 한다. 타협과 조정, 합의는 차이와 이견을 전제한 개념으로 민주주의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의 하나다.
최근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좋은 연설을 했다. 첫째, 그는 과거처럼 진보에 반대하는 것이 보수의 노선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진보를 좌파나 종북으로 몰아붙이지도 않았다. 진보 역시 공익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수 역시 공동체를 지키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정치 노선이 되어야 함을 천명했다. 신선했다. 둘째로 그는 진영을 넘어 합의의 정치를 개척하자고 말했다. 분열과 상처 대신 통합의 정치를 하자고 역설했다. 보수는 성장, 진보는 복지로 나뉘어 대립하는 것이 아닌 진보와 보수 모두 ‘성장과 함께하는 복지를 하겠다’는 합의가 이미 존재함을 확인해주었다. 양극화와 불평등, 재벌의 문제에 대해서도 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보수와 진보 누가 더 공동체를 위해 더 잘 기여할 수 있는지를 두고 경쟁하자는 의미로 이해되었다. 이 점 역시 좋았다. 셋째로 그는 세금과 복지, 보육 개혁, 성장의 방법 등에서 보수와 진보가 대화와 타협을 이끌어갈 수 있는 정책적 합의의 공간이 넓게 열려 있음을 이야기했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에게 공정하기만 하면 또 경제주체들 사이에 공정한 고통 분담의 원칙만 확고하다면, 합의의 공간을 얼마든지 더 넓혀갈 수 있음도 말했다. ‘공정성의 원리’를 제시한 이 부분도 좋았다.
유 전 원내대표의 연설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진보적인 이야기를 해서가 아니다. 보수와 진보가 다르지 않다고 해서도 아니다. 내가 볼 때 그는 보수 정치인이 분명하다. 다만 보수적이되 민주적이고 또 ‘정치적 이성’을 갖춘 말을 했기에 좋았다. 실제 정책적 논의에 들어가게 되면 진보와 보수는 필연적으로 이견을 표출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 전 원내대표처럼 정치를 이해하게 되면 말로 끝이 아닌 ‘실체적인 변화’를 진보와 보수가 함께 이끌어갈 수 있는 민주적 가능성은 커진다. 이 점이 중요하다. 정치란 차이를 없애고 같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가피한 차이가 있고 같아질 수 없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게 정치고 그렇기에 정치다. 아마 좋은 말을 했다고 좋은 정치가 곧바로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말은 그에 합당한 행동을 이끌 수 있을 때 그 가치가 실현된다. 좋은 말에 부응하는 보수의 좋은 실천을 기대한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자 생각을 공유하고 행동을 이끄는 좌표와 같다. 강제보다 설득에 의존하는 민주정치에서 말의 힘은 특히나 중요하다. 정치에서 적절한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크다. 따라서 좋은 말, 공정한 말을 쓰는 것이 정치인에게는 거의 의무에 가까운 행위 규범이 되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 규범성에 소홀한 정치인의 말은 시민의 생각을 가두는 감옥의 역할을 한다. 오늘날 우리가 ‘정치 양극화’라고 부르는 현상은 부적절한 정치 언어에서 비롯된 바 크다. 여야 사이에서 혹은 같은 당의 계파 사이에서 그저 편을 나눠 ‘하게 되어 있는 말’을 반복하는 것, 마치 자신들만 옳음을 독점하고 있는 듯 내세우는 것, 상대를 마주 보고 차이를 좁히기 위해 대화하고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등을 돌려 자신의 지지자를 향해 상대의 잘못을 일러바치고 모욕하는 것, 이런 식으로는 일이 잘될 리 없다. 그렇게 해서는 정치가 사회를 통합하는 기능을 할 수가 없다.
민주적 정당정치란 누가 더 공익에 기여할 수 있는가를 두고 진보와 보수가 경쟁하는 것을 말한다. 진보든 보수든 누가 더 공익적으로 유능한가를 두고 다투어야지, 진보는 반(反)보수, 보수는 반(反)진보를 표방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정치는 ‘유사 전쟁’으로 퇴락하게 된다. 그렇기에 상대에게 거부감을 갖게 하는 언어를 앞세워 정치를 하는 것은, 그것이 얼마나 진보적이고 얼마나 보수적이냐의 문제 이전에, ‘정치적 범죄’에 가까운 일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보수와 진보가 추구하는 가치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들 사이의 불완전한 상호이해는 인간의 정치가 감수해야 하는 고질적인 요소다. 그러나 그러한 불일치와 불완전함은 그것에 맞추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 조건이지 좋은 사회로의 길을 방해하는, 단지 극복돼야 할 장애물이 아니다.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의 논의 기반을 늘려갈 수 있다. 아무리 논의해도 오해로 볼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면 그때는 적극적으로 타협해야 한다. 타협과 조정, 합의는 차이와 이견을 전제한 개념으로 민주주의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의 하나다.
최근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좋은 연설을 했다. 첫째, 그는 과거처럼 진보에 반대하는 것이 보수의 노선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진보를 좌파나 종북으로 몰아붙이지도 않았다. 진보 역시 공익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수 역시 공동체를 지키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정치 노선이 되어야 함을 천명했다. 신선했다. 둘째로 그는 진영을 넘어 합의의 정치를 개척하자고 말했다. 분열과 상처 대신 통합의 정치를 하자고 역설했다. 보수는 성장, 진보는 복지로 나뉘어 대립하는 것이 아닌 진보와 보수 모두 ‘성장과 함께하는 복지를 하겠다’는 합의가 이미 존재함을 확인해주었다. 양극화와 불평등, 재벌의 문제에 대해서도 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보수와 진보 누가 더 공동체를 위해 더 잘 기여할 수 있는지를 두고 경쟁하자는 의미로 이해되었다. 이 점 역시 좋았다. 셋째로 그는 세금과 복지, 보육 개혁, 성장의 방법 등에서 보수와 진보가 대화와 타협을 이끌어갈 수 있는 정책적 합의의 공간이 넓게 열려 있음을 이야기했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에게 공정하기만 하면 또 경제주체들 사이에 공정한 고통 분담의 원칙만 확고하다면, 합의의 공간을 얼마든지 더 넓혀갈 수 있음도 말했다. ‘공정성의 원리’를 제시한 이 부분도 좋았다.
유 전 원내대표의 연설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진보적인 이야기를 해서가 아니다. 보수와 진보가 다르지 않다고 해서도 아니다. 내가 볼 때 그는 보수 정치인이 분명하다. 다만 보수적이되 민주적이고 또 ‘정치적 이성’을 갖춘 말을 했기에 좋았다. 실제 정책적 논의에 들어가게 되면 진보와 보수는 필연적으로 이견을 표출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 전 원내대표처럼 정치를 이해하게 되면 말로 끝이 아닌 ‘실체적인 변화’를 진보와 보수가 함께 이끌어갈 수 있는 민주적 가능성은 커진다. 이 점이 중요하다. 정치란 차이를 없애고 같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가피한 차이가 있고 같아질 수 없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게 정치고 그렇기에 정치다. 아마 좋은 말을 했다고 좋은 정치가 곧바로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말은 그에 합당한 행동을 이끌 수 있을 때 그 가치가 실현된다. 좋은 말에 부응하는 보수의 좋은 실천을 기대한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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