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가 필요 없는 정치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악마를 키우며 산다. 약자를 경멸하고 동료를 시기하며 스스로의 이해관계를 다른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의 대립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종교와 도덕이 이런 인간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어두운 면을 조련하고 억압하는 과정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근대적’ 정치라는 것은 이러한 마음속 악을 지배하는 과정을 포기한 시스템으로 정의해도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근대적 정치라는 것은 첫째, 개인들의 생각이 어떠하건 간에 이들을 행위로만 처벌할 수 있으며, 둘째, 이러한 이기심과 미움이 정치공동체의 발전과 번영을 위한 동력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깨달음에 기반을 둬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적 정치제도라는 것은 개인들 마음속의 잠재적인 ‘광기(passion)’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틀을 만든 것이었다. 이기적인 개인들이 득시글거리고 대중의 광기가 팽배한 최악의 사회에서도 최소한의 작동이 보장되는 시스템이라면, 굳이 사람들에게 천사가 되기를 강요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혹여 우연히 몇몇의 천사들이 주변에 기거한다면 감사해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정치는 천사가 필요 없는 싸움터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나긴 민주주의적 전통이 광범위한 표현의 자유를 핵심 원칙으로 올려놓고 이에 대한 국가 규제를 매우 특별하고 제한적인 영역에서만 정의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생각이 매우 다른 사람들이 굳이 동의에 이르지 않고도 같이 살 수 있는 집터이며, 진리와 올바름과 아름다움에 대한 어떤 규정도 없고, 열정과 열정이, 이기심과 이기심이 격돌하면서 한걸음씩 공존의 빈틈을 찾아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 열정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일일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면, 이곳에서 다음과 같은 난제들을 피할 수가 없다. 예컨대 미국 시민들의 가장 어두운 이기심과 공포를 먹고 사는 도널드 트럼프는 어떻게 해서 미국 대통령 까지 올라설 수 있었으며 이는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은 아닌가? 브렉시트는? 혹은, 한국의 뿌리 깊은 국가주의와 가부장적 남성우월주의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집단적 이기심으로 뭉쳐진 특정 사이트의 사조는 우리 청년들을 병들게 하고 있지 않은가? 혹은 이를 ‘미러링’하는 또 다른 남혐주의 운동을 우리는 어떻게 볼 것인가? 특히나, 예전에는 골방에서 상상하고 혼자서 주저하면서 키워가던 미움이, 그리고 마음속의 악마들이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라는 날개를 달고서 동지를 만나고 세력을 넓혀갈 수 있는 시대를 우리가 살게 된 것이 아닌가? 가장 주요하게, 인간이 고안한 민주주의는 이러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수준의 갈등들을 관용할 만큼 견고한가?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물론 일도양단식의 해답은 아니다. 다만 공유하고 싶은 몇 가지 원칙적인 관점들이 있다. 우선 첫째, 적어도 우리가 혐오발언(hate speech)과 관련된 논의를 제대로 할 만큼 한국에서 근대적 의미의 표현의 자유나 민주주의 원칙으로서 관용이 한 번도 구현된 적이 없었다. 여전히 언론이 정부의 ‘전화’를 받고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이웃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수 있는 사회에서 혐오발언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렇지 않아도 시급하고 위중한 민주제적 의제들과 충돌할 따름이다.
둘째,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매우 좁고 한정된 의미에서만 가능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예외가 있어서는 안된다. 오늘 트럼프와 시민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만큼 메갈리아의 표현의 자유도 인정해야 할 것이며, 그래야 궁극적으로 이들을 비판하는 내 표현의 자유를 내일 주장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민주주의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장 강건한 체제이다. 트럼프가 미국의 대외정책이나 국내정치가 어느 한순간에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다. 미국 ‘건국 아버지’들이 고안했던 것처럼 삼권분립하에서 의회와 대법원의 지지를 받지 않는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천사들이 없어도 미국 민주주의는 굴러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는 이러한 갈등과 토론을 먹고 사는 체제인지도 모른다. 천사들이 아닌 사람들이 사는 도시, 각자의 고민과 삐뚤어진 해결책들이 왁자지껄하게 평균으로 수렴하는 곳. 그곳이 천당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최소한 어제보다 한 뼘 더 전진하였던가? 건강한 민주주의라면 메갈리아를 통해서 여성문제를 새롭게 고민해볼 기회를 가지는 것으로 만족할 일이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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