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전투, 끔찍한 아비규환의 현장

(사진) 최경순 作
“조선을 정벌할 것이니 단단히 준비하라.”
1592년 1월, 일본 전역을 장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 출병을 위한 총동원령을 내린다. 왜병의 총병력은 30만명이었다.
마침내 4월13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를 총사령으로 한 선봉군 2만 여 명은 700척의 전함에 분승, 부산 앞바다에 도착했다. 강토를 피로 물들인 치욕의 임진왜란이 발발한 것이다.
“죽어도 길은 비킬 수 없다”
부산 첨사(僉使) 정발(鄭潑)은 마침 절영도에서 사냥을 하던 중이었다가 급보를 받고 돌아와 성을 지켰다. 14일 새벽부터 벌어진 난전 끝에 정발은 전사하고, 부산진은 함락 당한다. 왜군의 다음 목표는 동래성이었다.
당시 동래부사는 송상현(宋象賢·1551~1592년). 임란 1년 전 동래부사로 부임한 송상현은 성곽을 수리하고 성 외곽에 커다란 나무들을 빽빽하게 심어 성책을 삼는 등 왜의 위협에 대처했다.
왜군의 침략 소식이 전해지자 제승방략(制勝方略)에 따라 경상감사 김수와 경상좌병사 이각 등이 동래성으로 모여들었다. 고을사람들도 속속 동원되었다. 제승방략은 적의 침입이 있을 때 수령이 각각의 병력을 동원, 자신의 진을 떠나 배정된 지역으로 가서 적군의 침략에 대처하는 체제. 하지만 이 체제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병력이 집중된 방어지역이 무너지면 속절없이 후방까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14일 오전 10시쯤, 부산진을 함락시킨 왜군이 동래성에 이르렀다. 왜군은 선발대 100명을 보내 “싸우려면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면 즉시 길을 비켜라”라고 항복을 종용한다. 송상현 부사는 일축한다.
“(네 놈들과) 싸워 죽기는 쉽지만,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戰死易假道難)”
이 와중에 비겁자가 있었으니 경상좌병사 이각이었다. 부산 함락 소식을 듣고는 겁을 먹고 성을 빠져나간다. 그러면서 군색한 핑계.
“(송)부사는 이 성을 지키시오. 나는 외부에서 협공하고 지원할 것입니다.”
송상현이 “함께 싸우자”고 간청했으나, 이각은 성문을 빠져 나갔다. 부산 해안 방어를 맡고 있던 경상좌수사 박홍(朴泓) 역시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동래성은 그야말로 고립무원의 상황으로 빠져든 것이다. 송상현 역시 “일단 물러나는 것이 어떠냐”는 권유를 받지만 단칼에 일축한다.
“성주가 자기 성을 지키지 않고 어디를 간단 말인가?”
15일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의 전면 공세가 시작된다. 궁시(弓矢) 위주의 방어로는 왜군의 신무기인 조총(鳥銃)의 화력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2005년부터 동래읍성 해자 발굴을 지휘했던 정의도 당시 경남문화재연구원 학예실장(현 한국문물연구원장)의 해석.
“출토 무기를 보면 화살촉이 절대다수(116점)에 달합니다. 물론 총통에서 발사된 것으로 보이는 장군전(將軍箭)도 5점 이상은 되지만 조선군의 기본 병기는 활과 화살이었던 겁니다.”
송상현 부사는 부산성이 왜군의 맹렬한 조총 공격에 녹아난 것을 알고는, 통나무 방패로 방어책을 세웠지만 별무신통이었다.
동래읍성에서 확인한 조선군의 투구와 무기류
‘무기요람(武器要覽)’에 나오는 “숲에서 나는 새도 모두 떨어뜨릴 수 있으니 그래서 이름을 조총(鳥銃)이라 했다(卽飛鳥之在林 階可射落 因是得名)”는 구절을 보라. 조선인이 느꼈던 조총의 위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다. 총신이 1m가량인 조총은 유효사거리 100~200m, 명중거리 50m였고, 분당 사격 4발에 이르렀다.
“오죽했으면 선조가 ‘조총은 천하의 신기(鳥銃者 天下之神器也)”라고 감탄했을까. 조선에도 총통 같은 무기가 있었지만 조총병이 3열을 이루며 차례로 돌며 사격하는, 그래서 비를 뿌리듯 사격할 수 있는 조총공격을 당해낼 수 없었던 게지.”(조유전 토지박물관장)
동래성을 겹겹이 에워싼 왜군의 총공세가 이어지고, 동래성은 뚫리기 시작한다.
“총성이 울리고 그 검광은 백일을 무색하게 했으며, 적군이 성중에 들어와 사람으로 메우다시피했다. 성은 협소하고 사람은 많은 데다 적병 수만이 일시에 성으로 들어오니 성중은 메워져 움직일 수 없었다.”(‘임진동래유사’)
송상현 부사도 위기에 처했다. 왜적 가운데는 통신사로 조선을 드나들던 평조익(平調益)이라는 이가 있었다. 통신사 시절 송상현의 후대(厚待)를 받은 경험이 있는 평조익이 급히 나서 송상현에게 “빨리 피하라”고 눈짓을 보냈다. 송상현이 꿈쩍도 하지 않자 평조익은 부사의 옷을 잡아당겨 성벽의 빈터를 가리켰다.
하지만 송상현 부사는 갑옷 위에 조복(朝服)을 입고, 임금이 있는 북쪽으로 4번 절하며 담담하게 죽을 준비를 했다. 그런 뒤 태연히 붓을 들어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외로운 성에는 달무리가 지고 다른 군진에는 기척도 없군요. 군신의 의리는 중하고 부자의 정은 가볍습니다.(孤城月暈 列鎭高枕 君臣義重 父子恩輕)”
양산군수 조영규도 송상현 부사와 함께 죽었고, 송부사의 겸인(겸人·집사) 신여로, 비장(裨將) 송봉수·김희수, 향리(鄕吏) 송백 등 송부사의 핵심 측근들도 모두 살해됐다. 동래향교 노개방과 유생 문덕겸·양조한 등도 함께 순절했다. 왜장도 송상현 부사의 순절에 감동해서 장례를 돕고 제사를 지냈으며, 심지어는 송상현을 죽인 자를 끌어다 죽였다고 한다.
“갑오년(1594년)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송상현의) 집안사람으로 하여금 시체를 거두어 고향으로 반장(返葬)할 수 있도록 허락했고, 경내에서 벗어날 때까지 호위해주었다. 적진에 남겨진 유민들이 울며 송상현의 시신을 전송했다.”(‘선조수정실록’)
왜병의 무기
-소름끼치는 살육
그러나 잊어서는 안될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죄 없는 백성들의 넋이다. 이들은 조국을 위해 칼과 낫, 곡괭이, 심지어는 맨손으로 적과 싸웠고, 그 과정에서 힘 없는 여성과 어린아이까지 속절없이 적병의 창칼에 스러졌다. 기록에 나오는 사례만 보자.
‘임진유문(壬辰遺聞)’에 따르면 동래부민 김상(金祥)은 동네 아낙 두 사람이 깨 준 기와로 적병을 내리쳤다. 적이 떠난 뒤 김상의 어머니가 보니 김상과 두 아낙이, 적병 세 사람과 함께 죽어 있었다.
또 한 사람 비극의 주인공은 송상현 부사의 애첩인 김섬(金蟾)이다.
“송상현의 애첩 김섬은 함흥의 기녀였다. 송상현이 순절할 즈음에 적에게 붙잡혔다. 그녀는 사흘 동안이나 적을 꾸짖고 욕하다가 죽음을 당했다.적도 이를 의롭게 여겨 관구를 갖추어 송상현의 곁에 장사를 지냈다.”(‘임진유문’)
노출된 현장. 끔찍한 동래전투의 상황이 담겨있었다.
이밖에 필설로 다할 수 없는 민간인들이 희생됐다. 왜군 자료에 따르면 동래성 전투로 왜군은 참수 3000여명, 포로 500여명의 전과를 올렸다는 기록도 있다.(‘서정일기·西征日記)’)
또 당시 일본에서 예수회 선교사로 활동했던 루이스 프로이스(Lois Frois)는 조선군 전사자가 약 5000명이라고 했다. 이는 물론 민간인 희생자를 포함한 수치일 것이다.
“반나절 만에 끝난 전투인데, 이런 참담한 수의 조선인이 몰살당했다는 얘기잖아요. 정말 소름끼치는 살육현장이었을 겁니다.”(조관장)
좁은 성 내에서 아비규환의 백병전이 벌어졌다.
“양산군수 조영규의 아들 조정로가 아버지의 유해를 찾으러 동래성에 갔는데, 성 안이 온통 시체로 덮여있어 유골을 수습하지 못했다.”(‘충렬사지·조공유사기(趙公遺事記)에서’)
임진왜란 후 17년 뒤 동래부사로 부임한 이안눌(李安訥)의 글.
“4월15일 청명에 집집마다 곡소리가 일어나 ~ 늙은 아전에게 물으니 이날이 (동래)성이 함락된 날이라 했다. 송상현 부사를 좇아 모인 성안 백성들은 피바다로 변하고 쌓인 시체 밑에 투신하여 천 명 중 한 두 명이 생명을 보전할 정도였고, 조손·부모·부부·자매 중에 살아남은 자는 죽은 친족을 제사지내며 통곡한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내(이안눌)가 눈물을 흘리자 늙은 아전은 ‘곡해줄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적의 칼날에 온 가족이 죽어 곡해 줄 사람조차 남지 못한 집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라고 말했다.”(이안눌의 ‘맹하유감사(孟夏有感祠)에서’)
이 동래성 전투 소식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졌다. 유교사상으로 무장한 이들은 동래성의 비극에 자극받아 의병을 일으켰다. 의병은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갔다. 1760년 변박(卞璞)이 개모(改模)한 ‘동래부사순절도(보물 392호)’는 1592년 4월15일의 끔찍한 전투 장면을 묘사해놓고 있다. 하지만 그림은 송상현 부사를 중심으로 일어난 일부분의 일이다. 왜군이 자행한 수많은 백성들의 무자비한 죽음은 제대로 묘사되지 않았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고고학 자료이다. 동래부사 정언섭은 1731년 동래성을 수축하다가 1592년 4월15일 살해된 이들의 인골을 확인했는데, 그 숫자는 최소 12명이었다. 당시 정언섭이 건립한 ‘임진망전유해지총(壬辰亡戰遺骸之塚)’ 비문을 보자.
“전후에 발굴된 유골 수는 대개 열둘이지만 이는 특별히 그 형체와 해골이 완연한 것이고, 그 잔해의 조각조각이 떨어져 부스러진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20대 여인의 두개골. 에리한 칼로 난도질 당했다.
-남겨진 왜병의 국지창
다시 그로부터 280년 가까이 흐른 2005~2008년 사이 이번에는 지하철 건설을 위한 공사장에서 다시금 410여 년 전의 참극의 기억이 되살아 난 것이다.
“얼마나 억울했기에,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동래사람들의 넋이 자꾸 되살아나는 걸까요?”(조관장)
그렇다. 이번에는 무자비한 칼놀림 두 방에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한 채 죽었을, 그래서 눈도 감지 못했을 20대 여성과, 그리고 왜병의 총탄에 뒷머리를 명중해 하염없는 피를 흘리며 죽어갔을 5세 미만 유아가 1592년 동래성의 참상을 증언해주고 있다.
또 하나, 그렇다면 가해자인 왜군의 흔적은 정녕 없는 것일까.
왜군은 동래성 전투의 승자. 그렇기에 전투 중에 당한 왜군 사상자와 무기를 여유롭게 수습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전투 중에 죽였든, 참수 혹은 처형을 했든 조선인의 시신과 무기들은 해자에 투기했을 것이다. 그런 다음 해자를 메웠을 것이다.
왜군의 시신과 무기가 발견되기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단 하나. 당시 발굴자였던 정의도는 해자에서 발견된 전체 길이 54㎝ 정도 되는 철제 무기가 바로 일본계 무기인 국지창(菊池槍)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무기가 정식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것은 이 국지창이 처음입니다.”
발굴을 통해 고고학 자료로 출토된 왜군의 유물이 처음이라?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단다.
이번 발굴은 ‘동래부사순절도’가 묘사한 동래성 전투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켜준 동시에, 그림이 빠뜨린, 그래서 뭇 백성들의 넋이 잇달아 증거하는 역사적 진실을 웅변하고 있다. 그리고 왜군의 침략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왜군의 유물까지. 이것이 바로 이재 한국국방문화재연구원장 같은 이가 누누이 강조해온 바로 ‘전쟁고고학의 성과’이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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