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칼럼] 익숙함의 방향, 통행의 철학 -청암 배성근-

이원희 기자

등록 2025-10-13 10:18

청암 배성근 


우리 사회는 ‘방향’을 세 번이나 바꾸었다.

일본이 한 번, 미국이 한 번, 그리고 우리가 한 번. 강응천은 그의 저서 《밀레니엄을 위한 역사 오디세이》에서 이를 두고 “대한제국 시절의 우측통행으로의 복귀”라고 표현했다. 그 말처럼 우리는 근대의 혼란을 거치며, 한 나라의 ‘통행방식’ 속에 역사와 주권, 그리고 생활문화의 층위를 함께 새겨왔다.


2010년 7월 1일, 한국은 공식적으로 차도와 보행 모두 우측통행을 시작했다. 도로뿐 아니라 도시철도 역시 원칙적으로 우측을 따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울지하철 1호선은 여전히 좌측으로 달린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1호선이 옛 국철 노선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분당선, 인천공항철도 역시 일본식 좌측통행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이미 신호체계와 구조가 깊숙이 자리 잡은 탓에, 쉽게 방향을 바꾸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한 나라의 통행 방향은 단순한 ‘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질서와 습관, 나아가 정신의 방향성을 드러내는 문화의 표현이다. 자동차가 드물던 시절, 우리는 본디 우측보행의 민족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본의 좌측통행을 받아들였고, 해방 후에는 미군정의 영향으로 다시 우측통행으로 되돌아왔다. ‘길의 주도권’을 놓고 벌어진 이 변화는, 단순한 물리적 이동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길의 질서를 주도하는가에 대한 상징적 싸움이었다.


습관이란 얼마나 무서운가. 수십 년 동안 몸에 밴 길의 방향 하나를 바꾸는 데에도 사회 전체가 적응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길을 걷는 발의 방향이 바뀌면 시선의 높이도, 마음의 속도도 달라진다.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겨 걷는 일’은, 어쩌면 인생이 방향을 전환하는 일과 닮아 있다.


우리는 여전히 수많은 길 위에서 방향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오른쪽이냐, 왼쪽이냐의 문제를 넘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 더 본질적이다. 통행의 변화는 우리에게 말한다.역사는 방향을 잃을 수 있지만, 인간은 언제든 길을 다시 찾아갈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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