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_ 시대와 인간을 묻다 p.43
최용대의 실용인문학 
🌱 갈대숲이 들려주는 말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엔 숱한 이야기가 쌓여 있다. 어떤 사람은 현무암처럼 숭숭 뚫린 이야기를, 어떤 사람은 몽돌을 훑는 물소리 같은 이야기를 걸어왔다. 이야기의 심지는 사람이다. 호롱불의 심지를 들어 올리며 가릉가릉 불꽃을 밝히듯 사람의 이야기는 또 다른 사람에게 건너가 그의 심지가 된다.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아무도 모르는 오솔길과 아직도 모르는 오솔길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내일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런데도 삶이 신비로운 것은, 귀 기울이고 공감하며 거울처럼 비춰주는 어깨가 도처에 있기 때문이다. 설령 절절한 고통에 직면하더라도 선암사 해우소 등지의 굽은 소나무처럼 내 이야기를 그냥 들어줄 단 한 사람이 있기에,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 한 시간을 지나 저마다의 빛깔로 물드는 시절이다. 방방곡곡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담은 사진이 다채로운 사연을 품어 수북하게 쌓여 간다. 저마다의 사연처럼 모든 경험에는 이유가 있다.
아픔은 아픔대로 이유가 있고 즐거움은 또 그만큼의 까닭이 있다.
그 까닭을 들어주는 마음이 배려다. 때로는 가만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외로운 영혼이 치유받기도 한다.
배려의 시작은 공경이다.
사람이 아름다운 것도 그런 공경의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공경은 공감으로 이어지고 상호 신뢰로 단단하게 엮이며 마침내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 그것은 화려한 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에 있다.
상대를 헤아려 건네는 말 한마디, 말없이 토닥여 주는 온기, 때로 그냥 한 번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너와 나는 우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우리나라를 넘어 서구 철학자들에게도 존경받는 이유는 실천하는 지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그의 이야기는 회자해 널리 전해지고 있다.
퇴계 이황은 정치적 격동기를 살다 간 대유학자로, 일정한 스승 없이 가학(家學) 속에서 학문의 일가를 이루었다. 그는 세(勢)·명(名)·리(利)를 획득하기 위해 온갖 협잡과 술수가 난무하던 세태와, 인심이 바로잡히지 못한 현실을 심각하게 우려했다. 한편, 타인을 예로 대함으로써 인간을 존중했고, 일상의 삶 속에서 ‘경(敬)’을 실천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아가는 세계를 중시했던 오백 년 전의 실천적 지성인은 무엇보다 자신에게 엄격했다.
아, 그를 생각하며 ‘지금’을 본다. 지금 우리는 어떤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내가 본 것만을 말하며 그것만이 진리인 양 여긴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만 정의로운 세상이다. 사람에 대한 공경은 커녕 같은 방향이 아니면 적이 되는 사회, 귀는 있으되 경청하는 기능은 상실됐으며, 부드러운 입술에서 나온 말은 날카로운 흉기가 된다.
전인 교육으로 학생들의 미래를 열어 가는 교권은 추락했고, 노년은 존경받지 못하고 청년은 미래가 불안하다. 시대정신은 사라지고 칼춤이 난무하는
사회, 법치도 염치도 협치도 없는 광기의 정치판엔 미래 언어가 없다.
기후 위기와 생태·환경의 위기는 생존권에 경고를 보내고 있지만, 이 불편한 진실 앞에서 국회 입법자들의 목소리는 없다. 그뿐이랴, 문화의 원형은 고사 위기에 직면해 있고 오로지 패권주의만 있을 뿐이다.
한국가의 브랜드 파워는 경제뿐 아니라 문화의 역할도 크다.
문화란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양식과 세계관, 시대정신이 반영되어 나타나는 양상이다. 삶의 보편성을 바탕으로 시대의 특수성에 의해 형성된 문화는, 경작되는 농작물처럼 다양한 현상으로 성장한다.
문화 양상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는 이야기가 된다. 곁방 문을 돌아 실개천으로 흐르는 이야기는 위대한 예술이 되고, 그것은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된다. 예술의 향유 속에 형성된 상상력은 미래 세대가 열어 갈 세계의 초석이 아닌가.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공감하고 공유하는 작은 도서관에서 만나는 사람의 이야기는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러나 문화 관련 예산이 삭감되었다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강물처럼 유장하게 흘러갈 이야기 하나를 잃어버린 아찔함이 일어나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강한 것은 부러진다. 강한 것은 부드러움을 이기지 못한다. 태풍에 뿌리째 뽑히는 굵은 나무와 달리, 을숙도의 갈대가 제자리에 꿋꿋하게 서 있는 것은 강해서가 아니다.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주며 끌어주기 때문이다. 어떤 위기 앞에서도 분열하지 않고 이마를 맞대기 때문이다.
제멋대로 자라난 갈대숲이 무질서한 듯해도 들여다보면 나름의 질서가 있다. 키 큰 것은 낮은 데까지 햇빛이 들도록 가지를 좁히고, 때로 여린 넝쿨에 등을 내어준다. 천적을 피해 숨어든 생명은 어미처럼 보듬어 주며, 시간의 이행이 그려낸 숱한 이야기를 품는다. 숱한 사연을 담아낸 을숙도 갈숲이 전한다. 이야기가 끊어진 사회는 죽은 사회와 같다고…
붉은 포도주를 짜기에 아직 가을이 많이 남았다고…
한국매일뉴스 최용대 발행인
➡ 저자소개
최용대는 서울 출신으로, 오랫동안 언론인으로 활동해 왔다. 인하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이후 국회 논설 실장과 파리 특파원으로 재직하며 언론 현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현재는 계간 《문학평론》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국매일뉴스》 발행인으로 언론과 문학 평론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저서로는 《최용대의 실용 인문학》(2025)이 있다.
[뜻결숲 人文學叢書 001]
ISBN 979-11-994890-0-4 (03120)
한국매일뉴스 출판부
문의: 032-746-9811 | yong727472@naver.com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헤드라인 뉴스
-
.《인문》 김지하
김지하 이 세상에서 순금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근저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것은 세월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사람도, 정치도, 시(詩)도 그러할 터. 한 세대전 이런 시를 쓴 시인이 앞으론 동화작가의 길을 갈 것이라고 했다는 보도다. 공화당 정권 18년 동안, 특히 유신독재 시절 시인 김지하는 저항, 민족, 민주화, 도피, 유랑, 고문, 사형수,
-
《인문사회》원로의 분열
원로의 분열 고대 로마 시절,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1인 체제가 굳어지자 키케로는 친구 아티쿠스에게 권력에서 밀려난 원로의 비애를 담은 편지를 보냈다. “과거에는 정치가 노련하고 원숙한 사람들의 일로 되어 있었네. 그러나 이젠 누군가와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뛰어다니는 젊은이들의 일이 되어 버렸네. 이렇게 되면 노쇠한 정열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정원
-
《인문사회》바람, 바람
바람, 바람 얼룩말은 독특한 체질로 피부를 관리한다. 몸 표면의 검은 무늬줄은 햇빛을 많이 받아들이기 때문에 흰바탕보다 온도가 높다. 검은 줄과 흰바탕 사이에는 온도 차이가 생기고 자연히 기압의 차이도 생긴다. 기압의 차이는 곧 바람을 일으키고 이것으로 평소 피부를 잘 가꾸는 것이다. 이렇듯 바람이라면 지구상에서 생기는 모든 공기의 움직임을 뜻한다.
-
《인문사회》노블레스 오블리주
노블레스 오블리주 옛 북미 인디언 부족사회에는 ‘포트라치(potlatch)’라는 의식이 있었다. 특정한 날을 정해 모든 부족원들이 모피 등 잉여재산을 내놓고 파괴하거나 이웃에게 나눠주는 의식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저서 ‘소비의 사회’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고 존재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그들은 재화를 스스로 불태웠다”고 해석했다. 영국
-
《인문사회》비워서 채운 마음
비워서 채운 마음 1960년대만 해도 “서서히 망하려면 운수업을 하고 단번에 폭삭 망하려거던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라”는 말이 유행했다. 고무신, 막걸리에다 돈봉투돌리기 등 금권선거가 판을 치던 그때 승산없는 출마는 패가망신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웬만한 재력가가 아니면 한차례 출마에도 제집 살림을 바닥내기 십상이고 두번 떨어지면 처갓집 기둥뿌리까지 뽑힐
-
《인문사회》일류 국가로 가는 길
일류 국가로 가는 길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 모두 이뤄낸 모범 국가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내 자식들이 더 나은 내일을 살 수 있을까?" 걱정한다. 젊은 세대는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을 가졌는데 취업도, 집 마련도, 결혼도 어려워 절망적"이라며 울분을 토한다. 기회가 부족하니 공정에 대한 갈증이 커진다. 그래서 '공정의 덫'에 걸리면 뼈도 못 추리는
-
계간문학평론 제5집 겨울호 출판 기념 송년심포지엄 대성황리에 성료
종합학술지 『계간문학평론』(발행인 최용대 대표) 제5집 겨울호 출판 기념식 및 송년 심포지엄이 오는 12월 6일(토) 오후 2시 대전 유성 경하온천호텔 무궁화홀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이번 행사는 한 해 동안 문학·비평 활동을 이어온 필진과 독자, 문학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창작과 평론의 성과를 진지하게 공유하는 자리로 마련되었으며 배준영
-
《인문사회》우산 없이 만난 비
우산 없이 만난 비 살다 보면 누구나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길을 잃었을 때, 전기세나 가스요금을 어디로 내야 할지 모를 때, 집 계약 시 누군가 함께 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종량제 봉투를 파는 곳을 모를 때, 외롭고 힘들어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을 때' 등.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걱정이나 불편일 수 있는 이런 순간들을
-
《인문정치》사회 어떤 의리를 지킬 것인가
사회 어떤 의리를 지킬 것인가 '국화와 칼'. 미국의 인류학자인 루스 베니딕트가 1946년 지은 불후의 명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맞닥뜨린 일본인의 행태는 서양인의 눈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았다.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자살 공격을 감행하고 패배의 책임을 할복으로 갚았다. 미국 정부는 일본군의 정신문화를 파헤쳐줄 것을 베니딕트에게 의뢰했다.
-
[PRNewswire] 구딕스, 삼성전자에 첨단 기술 협력
[PRNewswire] 구딕스, 삼성전자에 첨단 기술 협력 -- 삼성전자 갤럭시 Z 트라이폴드에 첨단 폴더블 터치 및 지문 솔루션 공급 선전, 중국 2025년 12월 9일 /PRNewswire=연합뉴스/ -- 구딕스 테크놀로지(Goodix Technology)가 12월 8일 자사의 업계 선도적인 메인 및 서브 터치스크린 컨트롤러와 초슬림 측면 키 정전식
-
《인문》새벽시장 언 손 녹여주는 고마운 화톳불
새벽시장 언 손 녹여주는 고마운 화톳불 어영부영하다 보니 어느새 12월. 덩그러니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니 뭔가에 쫓기듯 조바심이 납니다. 대책 없이 놀기만 하다가 겨울을 맞이한 베짱이의 심정입니다. 마음이 스산하니 몸이 더 추운 걸까요. 이른 출근길에 지나게 된 새벽시장에는 칼바람이 매섭습니다. 좌판의 생선도 꽁꽁 얼 만큼 춥네요. 가뜩이나 손님도 뜸한
-
《사설》여당 의원의 보좌진 성추행 의혹, 철저한 진상규명을
여당 의원의 보좌진 성추행 의혹, 철저한 진상규명을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여성 보좌진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정청래 대표는 당 윤리감찰단에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장 의원은 결백을 강조하며 강력 대응하겠다고 맞섰다. 양측 주장이 엇갈리는 만큼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조속한 사실관계 규명이 우선이다.
-
해남배추 캐나다 시장 뚫었다…1천톤 수출
해남배추 캐나다 시장 뚫었다…1천톤 수출 전라남도는 26일 해남 산이면에서 해남배추 1천 톤 캐나다 수출 선적식을 개최하고, 북미시장을 겨냥한 본격적인 수출에 나섰다고 밝혔다. 이번 선적은 전남도·해남군·수출기업이 협력해 추진한 성과로, 해남배추가 캐나다 H마트에 대규모로 공급되는 첫 공식 일정이다. 행사에는 명현관 해남군수, 전남도 신현곤 국제협력관,
-
[연재]사하라에 지다 파리 -디카르 경주의 추억/지옥의 랠리 여덟째 날
별이 반짝이는 소리. 천지는 태고적 나를 보고 있다. 가스버너에 커피 물을 올려놓은 채 그 자리에서 우린 기절한 듯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눈을 뜨니 3시간이 지나 있다. 개운한 몸은 놀란 토끼 모양새다. 560.30km 400m 앞까지 비추는 우리 차의 헤드라이트 하이빔 불빛 앞에 241번 주자의 차가 비참한 형태로 전복되어 있다. 단단한 모래
-
서초구, 빈틈없는 한파 종합대책으로 '한파 피해 제로' 추진
서초구, 빈틈없는 한파 종합대책으로 '한파 피해 제로' 추진 서울 서초구(구청장 전성수)가 다가오는 겨울철을 맞아 오는 2026년 3월 15일까지 4개월간 '25/'26년도 겨울철 한파 종합대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구는 주민들의 건강하고 안전한 겨울나기를 위해 ▲한파 상황관리 체계 구축 ▲주민친화형 한파저감 시설 운영 ▲한파쉼터 운영 ▲한파 취약계층
-
《정치》트럼프 보란듯…첫날 ‘다자주의’ 선언한 G20 정상들
트럼프 보란듯…첫날 ‘다자주의’ 선언한 G20 정상들 이재명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스렉 엑스포센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G20 정상 및 국제기구 수장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이
-
인문칼럼]구름 아래 잠든 나라 -고성 송학동 고분군의 말 없는 역사-
경남 고성의 들녘을 따라 걷다 보면 낮은 구릉 위에 점점이 박힌 봉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 사이로 드러나는 봉긋한 언덕들은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그 속에 천오백 년을 품고 있는 세계가 숨어 있다. 이곳, 송학동 고분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가야 고분군’의 중요한 한 갈래로, 소가야가 남긴 마지막 숨결이 서린 자리다. 5세기
-
《사설》‘내란 색출’ 소동과 헝가리 반면교사
‘내란 색출’ 소동과 헝가리 반면교사 정부가 최근 ‘헌법존중 정부혁신 태스크포스(TF)’로 내란 동조 공직자를 가려내 책임을 묻겠다고 나섰다. 헌정 파괴 행위에 대한 책임 추궁은 국가의 기본 책무이다. 그러나 “과도한 내란몰이” “공직자 솎아내기”라는 우려와 ‘적폐청산’의 정치적 논란이 재소환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 과정이 정치 보복의 악순환으로
-
《사설》‘내란 색출’ 소동과 헝가리 반면교사
‘내란 색출’ 소동과 헝가리 반면교사 정부가 최근 ‘헌법존중 정부혁신 태스크포스(TF)’로 내란 동조 공직자를 가려내 책임을 묻겠다고 나섰다. 헌정 파괴 행위에 대한 책임 추궁은 국가의 기본 책무이다. 그러나 “과도한 내란몰이” “공직자 솎아내기”라는 우려와 ‘적폐청산’의 정치적 논란이 재소환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 과정이 정치 보복의 악순환으로
한국매일뉴스 © 한국매일뉴스 All rights reserved.
한국매일뉴스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