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에 생각하는 추일서정, 가을날의 생각

황혼이라는 낱말이 주는 느낌은 '아름다움'과 '쓸쓸함'입니다. 그런데 요즘 심심찮게 불리는 '황혼이혼'을 만나면 '아름다움'은 간 곳 없고 '쓸쓸함'만 남습니다. 황혼이혼은 이웃나라 일본에서 남편이 나이 들어 은퇴할 무렵 아내가 평생을 남편 뒷바라지하며 힘들게 살아왔으니 이젠 자기 나름대로 보람 있는 새 생활을 구가하고 싶다고 하여 이혼을 청구하는 일이 자주 생기며 붙여진 이름입니다.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황혼이혼이 늘어나고 있고, 이제는 아내만이 아니라 남편이 청구하는 경우도 많아진다고 하니 안타깝습니다. 수많은 고뇌 끝에 내린 결정일 터이고 이혼으로 진정한 행복을 되찾을 수 있다면 막을 이유도 없겠지만, 수십 년을 함께 살아 온 부부가 어느 날 짐을 챙겨 다른 곳으로 향하는 순간의 모습을 상상하면 쓸쓸해집니다.
인간적 안타까움에 더해 1인 가족, 독거노인이 늘어남에 따른 국가·사회적 부담이라는 세속적 생각도 지울 수 없습니다.
수년 전 92세의 할아버지가 평생을 함께 살아 온 동갑내기 할머니가 치매를 앓고 고생하자 할머니를 목 졸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자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폐지 등을 팔아 마련한 250만원을 장례비로 남기면서, 살 만치 살고 세상을 떠나니 너무 슬퍼하지 말고 화장하여 달라는 당부의 유언을 남겼습니다. 밖으로 일하러 나가서도 치매를 앓는 아내가 잊히지 않아 수시로 집을 드나들면서 아내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간병하다가 마침내 "78년이나 함께 산 아내를 죽이는 독한 남편"이라고 자책하며 함께 이승을 떠난 할아버지의 안타까운 심정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 자식에 대한 배려 등이 세상 법으로는 범죄임을 피할 수 없으니 인생은 아이러니입니다.
작고한 올리버 색스는 의학계의 계관시인으로 불리며 환자들을 질병에 맞서 싸우며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는 특별한 사람들이라며 따뜻하게 품어 안았던 신경의학자였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두려움이 없는 척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은 고마움입니다. 저는 사랑했고 사랑받았습니다. 많은 걸 받았고 일부는 돌려주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지구에서 저는 지각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아왔으며 이는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수세기 동안 의학계에서 방치해 두었던 죽음에 대한 연구와 불치병 환자에 대한 처우 개선을 주창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는 죽음을 앞두고 "나는 은하수로 춤추러 간다. 죽음은 휴가를 떠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조병화 시인은 '꿈의 귀향'에서 "어머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가 이제 어머님 심부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왔습니다"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천상병 시인은 '귀천'에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죽음까지도 담대히 맞아들이는 그들은 진정으로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언제나 유쾌하고 활기가 넘치는 친구가 자기는 악착같이 아내보다 더 오래 살 작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거기까지는 평소 익살이 넘치는 친구의 우스개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뒤이은 그의 설명에 숙연해졌습니다. 자기가 먼저 죽어 아내에게 남편 장사를 치르는 황망하고 난처한 상황을 만들어 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선 아내의 유분함과 더불어 살다가 반년쯤 지나 아내를 뒤따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과 아내가 오케이 하실까' 하는 저의 짓궂은 질문에 그는 그냥 씩 웃었습니다. 따뜻함과 애잔함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가을날에 생각하는 김광균 시인의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로 시작하는 시 '추일서정'이 생각나지만, 이 가을에 떠오른 또 다른 생각들을 적어보았습니다. 저의 추일서정(秋日抒情)입니다.
최용대 발행인/ 논설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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