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인문학의 사회

대학마다 대학에서 철학과를 폐지했다. 분노하는 재학생들과 철학과 동문들이 내건 현수막을 볼 때면 마음이 씁쓸하다. “철학이 밥 먹여주나?”라는 말이 오간 지 오래되었지만 이것은 왜곡된 것이다. 수많은 현철(賢哲)들이 없었다면 무명(無明)에 헤매는 인류의 앞길을 어떻게 밝혀왔겠는가. 종교의 광기가 극에 달했을 때, 철학이 없었다면 어떻게 인간이 중도의 길을 걸어왔겠는가. 철학의 사망은 윤석열 대통령이 “교육부의 첫 번째 의무는 산업인재 공급”이라고 말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인문의 요람인 대학이 기업의 하청기지임을 재승인했다.
동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그 기반은 인문사회라는 전통이다. 인문이 무엇인가. 언어, 역사, 문학, 철학, 종교 등의 세계를 말한다. 세끼 먹는 것을 뛰어넘어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부단한 노력이다. 동물과 하등 차이가 없는 인류가 시간과 공간을 확장하고 하나가 되어 문명을 구축한 것은 상상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종교의 천재들 또한 철학자들이다. 석가나 예수가 인간의 한계상황을 돌파하여 고단한 우리의 삶에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생각하는 힘’에 의해서다.
자본은 자율적인 인간의 의지를 노예화하고 있다. 대학은 인간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공간이다. 비판의 힘으로 이 사회는 혁명을 꿈꾸고 실현했다. 그 엔진은 세상을 직시한 눈들을 광장으로 이끈 철학의 시대정신이다. 철학이 없는 대학은 ‘팥소 없는 찐빵’과도 같다. 전국의 대학에서 점점 철학과가 폐쇄되고 있다. 자본의 폭주를 견제하고 현대문명을 성찰하는 공동체가 없는 대학은 존립할 이유가 없다. 인간이 기업의 전쟁터에서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현실에 저항할 주력부대가 소멸 위기에 처한 것이다.
<대학>에 대해 유학의 거봉인 주자와 왕양명은 “대인의 학”이라고 한다. 따라서 대학은 인간 최고의 덕성을 구비한 성인(聖人)을 기르는 곳이다. 거기까지는 못 미치더라도 스스로 삶을 기획하고 운명을 개척할 준비를 하는 곳이 아닌가. 인간과 인간이 연대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곳이 대학이 아닌가.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묻고 대답하며, 자신을 집어삼키는 업력의 거센 파도를 타고 넘는 지혜와 용기를 기르는 곳이 아닌가. 지식의 수도자들이 인류의 기원과 역사를 탐구하며,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고 전망하는 곳이 대학이 아닌가.
대학은 오직 펜 하나를 들고 참여하는 마을장터다. 사회적 위치나 나이를 떠나 삶의 탐구자로서 의문을 던지고 토론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회사원도 농부도 교사도, 삶의 절벽을 마주한 자도 누구든 자신의 문제를 꺼내 이웃에게 조언을 요청할 수 있다. 사립이든 공립이든 국립이든 대학은 공기(公器)다. 굳이 헌법이나 교육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국가는 대학까지도 무상으로 모든 백성이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책무가 있다. 인류의 지혜를 보존하고 나누며 활용하는 플랫폼으로써 무한 지원을 해야 한다
철학 없는 한국 교육의 위기
인문학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전쟁은 국가와 자본이 공모한 것이다. 학문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이켜 살펴보는 마음의 힘이 욕망에 제어당했기 때문이다. 세계가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는 이유는 인문정신의 쇠퇴와도 관련이 있다. 이웃의 고통을 내면화하지 못하는 불치의 병이 전염되고 있다. 경쟁의 파고 속으로 밀어 넣는데 어떻게 이웃과 내가 하나가 될 수 있겠는가. 벌거벗은 몸을 거울에 비추어보라. 볼록한 배, 가는 다리, 퀭한 눈동자. 생물학적인 존재로서는 어느 것 하나도 볼품이 없다. 그러나 소멸해가는 존재일지라도 자신만의 왕국임을 자부하며 자기완성의 길을 멈추지 않는다. 먼지에 불과한 존재일지언정 천지와 우주와의 합일을 바란다. 희망의 학인 인문학은 무한과 영원을 향한 영혼의 등대다.
인문학은 죄가 없다. 진리와 정의가 새겨진 간판을 달고 설립되지 않은 대학이 어디 있으랴. 그 죄는 일차적으로 대학을 시장경제의 논리와 취업의 도구로 초토화시킨 정부에 있다.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이 피폐해진다면 인간은 언젠가 기계의 노예가 될 것이다. 인문학의 죽음은 인류의 파멸로 이어지리라. 관계의 망을 따뜻하게 보살피며, 과학과 기술의 한계를 직시하고, 부조리와 야만을 재판하며, 자본의 자기파멸적 행위를 멈추게 하는 인문학의 학살을 온몸으로 막아야 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최용대 발행인/ 논설위원
기자
헤드라인 뉴스
-
제10회 작가정신문학상에 황명자 시인 『남천일기』로 수상
대구경북작가회의(회장 신기훈)는 오는 12월 20일 오후 4시 대구문학관에서 2025년 정기총회를 열고, 제10회 작가정신문학상 시상식을 개최한다. 이번 문학상 수상자는 황명자 시인으로, 수상작은 포토에세이집 『남천일기』이다. 작가정신문학상은 대구경북작가회의가 지난 1년간 출간된 작품집 가운데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을 선정해 매년 수여하는 상으로, 올해로
-
《인문》학파(學派
학파(學派) 한국 역사상 최고의 학문적 논쟁은 조선중기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그의 제자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간에 벌어진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이다. 퇴계와 고봉은 무려 8년여에 걸쳐 편지를 주고 받으며 논쟁을 벌였다. 이(理)와 기(氣)를 둘러싼 두 사람의 ‘존재론 논쟁’은 인간 본성에 대한 근원적 문제제기로 조선 성리학의 독창적 학풍을
-
.《인문》 김지하
김지하 이 세상에서 순금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근저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것은 세월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사람도, 정치도, 시(詩)도 그러할 터. 한 세대전 이런 시를 쓴 시인이 앞으론 동화작가의 길을 갈 것이라고 했다는 보도다. 공화당 정권 18년 동안, 특히 유신독재 시절 시인 김지하는 저항, 민족, 민주화, 도피, 유랑, 고문, 사형수,
-
《인문사회》원로의 분열
원로의 분열 고대 로마 시절,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1인 체제가 굳어지자 키케로는 친구 아티쿠스에게 권력에서 밀려난 원로의 비애를 담은 편지를 보냈다. “과거에는 정치가 노련하고 원숙한 사람들의 일로 되어 있었네. 그러나 이젠 누군가와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뛰어다니는 젊은이들의 일이 되어 버렸네. 이렇게 되면 노쇠한 정열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정원
-
《인문사회》바람, 바람
바람, 바람 얼룩말은 독특한 체질로 피부를 관리한다. 몸 표면의 검은 무늬줄은 햇빛을 많이 받아들이기 때문에 흰바탕보다 온도가 높다. 검은 줄과 흰바탕 사이에는 온도 차이가 생기고 자연히 기압의 차이도 생긴다. 기압의 차이는 곧 바람을 일으키고 이것으로 평소 피부를 잘 가꾸는 것이다. 이렇듯 바람이라면 지구상에서 생기는 모든 공기의 움직임을 뜻한다.
-
《인문사회》노블레스 오블리주
노블레스 오블리주 옛 북미 인디언 부족사회에는 ‘포트라치(potlatch)’라는 의식이 있었다. 특정한 날을 정해 모든 부족원들이 모피 등 잉여재산을 내놓고 파괴하거나 이웃에게 나눠주는 의식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저서 ‘소비의 사회’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고 존재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그들은 재화를 스스로 불태웠다”고 해석했다. 영국
-
《인문사회》비워서 채운 마음
비워서 채운 마음 1960년대만 해도 “서서히 망하려면 운수업을 하고 단번에 폭삭 망하려거던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라”는 말이 유행했다. 고무신, 막걸리에다 돈봉투돌리기 등 금권선거가 판을 치던 그때 승산없는 출마는 패가망신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웬만한 재력가가 아니면 한차례 출마에도 제집 살림을 바닥내기 십상이고 두번 떨어지면 처갓집 기둥뿌리까지 뽑힐
-
《인문사회》일류 국가로 가는 길
일류 국가로 가는 길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 모두 이뤄낸 모범 국가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내 자식들이 더 나은 내일을 살 수 있을까?" 걱정한다. 젊은 세대는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을 가졌는데 취업도, 집 마련도, 결혼도 어려워 절망적"이라며 울분을 토한다. 기회가 부족하니 공정에 대한 갈증이 커진다. 그래서 '공정의 덫'에 걸리면 뼈도 못 추리는
-
계간문학평론 제5집 겨울호 출판 기념 송년심포지엄 대성황리에 성료
종합학술지 『계간문학평론』(발행인 최용대 대표) 제5집 겨울호 출판 기념식 및 송년 심포지엄이 오는 12월 6일(토) 오후 2시 대전 유성 경하온천호텔 무궁화홀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이번 행사는 한 해 동안 문학·비평 활동을 이어온 필진과 독자, 문학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창작과 평론의 성과를 진지하게 공유하는 자리로 마련되었으며 배준영
-
[PRNewswire] 구딕스, 삼성전자에 첨단 기술 협력
[PRNewswire] 구딕스, 삼성전자에 첨단 기술 협력 -- 삼성전자 갤럭시 Z 트라이폴드에 첨단 폴더블 터치 및 지문 솔루션 공급 선전, 중국 2025년 12월 9일 /PRNewswire=연합뉴스/ -- 구딕스 테크놀로지(Goodix Technology)가 12월 8일 자사의 업계 선도적인 메인 및 서브 터치스크린 컨트롤러와 초슬림 측면 키 정전식
-
《인문》새벽시장 언 손 녹여주는 고마운 화톳불
새벽시장 언 손 녹여주는 고마운 화톳불 어영부영하다 보니 어느새 12월. 덩그러니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니 뭔가에 쫓기듯 조바심이 납니다. 대책 없이 놀기만 하다가 겨울을 맞이한 베짱이의 심정입니다. 마음이 스산하니 몸이 더 추운 걸까요. 이른 출근길에 지나게 된 새벽시장에는 칼바람이 매섭습니다. 좌판의 생선도 꽁꽁 얼 만큼 춥네요. 가뜩이나 손님도 뜸한
-
《사설》여당 의원의 보좌진 성추행 의혹, 철저한 진상규명을
여당 의원의 보좌진 성추행 의혹, 철저한 진상규명을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여성 보좌진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정청래 대표는 당 윤리감찰단에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장 의원은 결백을 강조하며 강력 대응하겠다고 맞섰다. 양측 주장이 엇갈리는 만큼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조속한 사실관계 규명이 우선이다.
-
해남배추 캐나다 시장 뚫었다…1천톤 수출
해남배추 캐나다 시장 뚫었다…1천톤 수출 전라남도는 26일 해남 산이면에서 해남배추 1천 톤 캐나다 수출 선적식을 개최하고, 북미시장을 겨냥한 본격적인 수출에 나섰다고 밝혔다. 이번 선적은 전남도·해남군·수출기업이 협력해 추진한 성과로, 해남배추가 캐나다 H마트에 대규모로 공급되는 첫 공식 일정이다. 행사에는 명현관 해남군수, 전남도 신현곤 국제협력관,
-
[연재]사하라에 지다 파리 -디카르 경주의 추억/지옥의 랠리 여덟째 날
별이 반짝이는 소리. 천지는 태고적 나를 보고 있다. 가스버너에 커피 물을 올려놓은 채 그 자리에서 우린 기절한 듯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눈을 뜨니 3시간이 지나 있다. 개운한 몸은 놀란 토끼 모양새다. 560.30km 400m 앞까지 비추는 우리 차의 헤드라이트 하이빔 불빛 앞에 241번 주자의 차가 비참한 형태로 전복되어 있다. 단단한 모래
-
서초구, 빈틈없는 한파 종합대책으로 '한파 피해 제로' 추진
서초구, 빈틈없는 한파 종합대책으로 '한파 피해 제로' 추진 서울 서초구(구청장 전성수)가 다가오는 겨울철을 맞아 오는 2026년 3월 15일까지 4개월간 '25/'26년도 겨울철 한파 종합대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구는 주민들의 건강하고 안전한 겨울나기를 위해 ▲한파 상황관리 체계 구축 ▲주민친화형 한파저감 시설 운영 ▲한파쉼터 운영 ▲한파 취약계층
-
《정치》트럼프 보란듯…첫날 ‘다자주의’ 선언한 G20 정상들
트럼프 보란듯…첫날 ‘다자주의’ 선언한 G20 정상들 이재명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스렉 엑스포센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G20 정상 및 국제기구 수장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이
-
인문칼럼]구름 아래 잠든 나라 -고성 송학동 고분군의 말 없는 역사-
경남 고성의 들녘을 따라 걷다 보면 낮은 구릉 위에 점점이 박힌 봉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 사이로 드러나는 봉긋한 언덕들은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그 속에 천오백 년을 품고 있는 세계가 숨어 있다. 이곳, 송학동 고분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가야 고분군’의 중요한 한 갈래로, 소가야가 남긴 마지막 숨결이 서린 자리다. 5세기
-
《사설》‘내란 색출’ 소동과 헝가리 반면교사
‘내란 색출’ 소동과 헝가리 반면교사 정부가 최근 ‘헌법존중 정부혁신 태스크포스(TF)’로 내란 동조 공직자를 가려내 책임을 묻겠다고 나섰다. 헌정 파괴 행위에 대한 책임 추궁은 국가의 기본 책무이다. 그러나 “과도한 내란몰이” “공직자 솎아내기”라는 우려와 ‘적폐청산’의 정치적 논란이 재소환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 과정이 정치 보복의 악순환으로
-
《사설》‘내란 색출’ 소동과 헝가리 반면교사
‘내란 색출’ 소동과 헝가리 반면교사 정부가 최근 ‘헌법존중 정부혁신 태스크포스(TF)’로 내란 동조 공직자를 가려내 책임을 묻겠다고 나섰다. 헌정 파괴 행위에 대한 책임 추궁은 국가의 기본 책무이다. 그러나 “과도한 내란몰이” “공직자 솎아내기”라는 우려와 ‘적폐청산’의 정치적 논란이 재소환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 과정이 정치 보복의 악순환으로
한국매일뉴스 © 한국매일뉴스 All rights reserved.
한국매일뉴스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