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편 산문 한 편(1)
시 | 내 것이 아닌 세상
박 상 봉
내게 일어나는 일을 내가 이해할 수 없네
세상이 내게 뭘 원하는지 모르고 살았어
조금 빠르기도 하고 늦기도 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내 집이 없는 사람들의 마을을 서성거렸네
직업과 아내와 자식조차도 온전히
내 것으로 가져 본 적 없네
태어나 자라면 누구나 일을 갖고
누구든지 뭔가 하면서
제각기 꿈틀거리고 살아가는데
나는 한적한 길가 느릅나무 밑동에 등 기대고 앉아
물끄러미 먼 산만 바라보았네
벌레들, 일벌레들 저주 퍼부으며
자꾸만 세상 밖으로 밀려났네
이제는 몸도 마음도
한 장의 얇은 치즈처럼 여위어 가고
지식마저 썩어 냄새를 풍기고
사랑으로 믿었던 달콤한 말들도
내 것이 아니라는 느낌
세월을 뒤집어 주머니 속을 들춰보면
쓸쓸하게 몸 흔드는 동전 몇 개
손안에 만져질 뿐이네
산문 | 내 것이 아닌 세상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는 어떤 행복도 오래 향유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듯 하다. 곰곰 생각해보니 지금껏 내가 좋아하고 내게 필요한 것들은 모두 남에게 주거나 빼앗기면서 살았다.
성장기 시절에는 무엇이든 새 것을 가져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언제나 형이 입던 옷을 물려받아 입고, 형이 쓰던 학용품을 얻어 쓰고, 심지어는 문예현상공모 같은데 시를 응모하여 받은 당선 상금도 형의 용돈으로 상납 당했다.
교내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하고 상품으로 받아온 빠이롯뜨 만년필은 제대로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형의 차지가 됐다. 어머니가 앙고라 501 장미표 털실로 정성껏 짜주신 겨울스웨터와 생일날 아침밥상에 올라온 계란후라이 마저도 은근히 형의 차지가 되기 일쑤였다. 그러면서도 빼앗긴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집안의 장손인 형은 당연히 그 모든 것을 가질 권한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하다가 보니 내 것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습관이 몸에 배여 집밖에 나가서도 누가 ‘그거, 나줘!’ 하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망설임 없이 건네주는 버릇이 생겨버린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미국으로 이민 간 숙부가 명절을 맞으러 잠시 귀국하면서 사온 제법 비싼 시계를 문예반 선배가 저당 잡혀 술값 한다고 빌려 달라고 해서 벗어주었는데 영영 돌려받지 못해 아버지에게 엄청 혼난 적도 있다.
별로 자랑거리도 못되는 부끄러운 과거사 한 가지 더 밝히자면 나와 인연이 된 여자를 그런 식으로 잃어버리고 떠나보내기를 몇차례나 경험한 사실이다. 청년시절에 사랑하던 한 여자를 아주 절친한 내 친구가 가로채 사귀고 있다는 다른 친구의 제보를 받고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지켜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깊이 고민을 해보았지만 친구를 잃을 수도 없고 여자를 잃을 수도 없다는 판단이 섰고 그리해서 모르는 척 지내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편안치 않았고 때로는 죽을만치 괴롭기도 했지만 다른 도리가 없었기에 멍든 가슴 쓸어내리며 참을 수 밖에 없었다.
곁에서 나를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별걸 다 양보한다 싶겠지만 젊을 때는 다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던 세상이 나이 들어가면서 가질 수 없는 것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살아가면 갈수록 세상은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분명해졌다.
가슴 속 빈 의자에 가을이 되어 낙엽이 떨어져 쌓이고 겨울이 와서 눈이 쌓이고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은 다음 나는 빈 마음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만년필에 눈물 몇방울 찍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박상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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