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 서열화가 지배하는 사회
‘상대적 서열화’의 문화가 우리 사회 곳곳에 팽배해 있다. 상대적 서열화란 서로 비교된 차이를 수직적 우열관계로 재배치함으로써 사회적 질서의 기준으로 삼는 방식을 말한다. 학교에서 상대평가로 매겨지는 성적과 등급, 상대적으로 서열화된 대학들, 연봉에 의해 서열화된 일자리들, 수도권으로부터의 거리로 서열화된 전국 시·도, 은행 신용등급 등등. 우리는 서열화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학교는 이런 서열화를 어릴 때부터 조장하고 익숙하게 하는 핵심 장치이다. 자신이 몇 등급에 해당되는지를 어릴 때부터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다. 그렇게 습득된 서열화의 체험은 나이를 먹어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증폭될 뿐이다. 사회는 서열화 프레임을 모두에게 강요하며, 우리 스스로도 그런 서열 안에 자신을 가둔다. 상대적 서열이 부여되지 않는 평등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낯설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열이 명명백백하게 매겨지는 그런 사회를 우리는 ‘공정사회’라고 부른다. 서열화가 사라진 사회를 상상하는 건 마치 몸이 사라진 영혼처럼 기이하고 어색한 일이다.
이런 상대적 서열화가 능력주의 속에 숨으면서 기묘하게 우리 사회를 차별사회로 만들어낸다. 성이나 인종과 달리 능력 차이가 만들어내는 차별성은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의 우월성을 정당화한다. 공정성과 과학적 척도라는 이름의 정교하고 치밀한 방법을 동원하여 서열화의 부정적 측면을 무력화한다. 또한 그런 생각들이 재생산되는 곳이 학교나 교육이라는 점에서 능력 차이를 인간 차별로 확대하는 논리 위에 도덕성이라는 옷이 덧입힌다.
적어도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이 사회적 범죄라는 걸 우리는 잘 안다. 반면 능력에 따른 ‘차이’는 ‘차등’을 넘어 ‘차별’로 이어져도 좋다는 생각이 여전히 지배적이다. 서열화를 가르는 공정성만 보장된다면 능력에 따른 차별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다. 상대적 서열화는 카피캣에게 유리한 사회질서를 만들어준다. 단지 높은 서열에 있는 자들과 비슷해지는 것이 자신의 서열을 높이는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모방사회를 부추기지만 창조사회를 만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사회모형이다.
상대적 서열만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모든 상대적 차이는 수직적 우열로 재위치된다. 모든 차이는 완성품과 불량품의 스펙트럼으로 환원된다. 서열이 낮다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는 불량품이라는 뜻이다. 다양성이 설 땅이 없다. 상대적 서열만 존재한다면 오케스트라는 소리를 맞출 수 없다. 색깔끼리 경쟁한다면 색채예술은 나올 수 없다.
상대적 서열화는 능력주의가 민주주의라는 외피를 입고 만들어낸 기이한 사회병리현상일 뿐이다. 능력주의란 능력자가 사회를 지배할 권력을 갖는다는 사회이념이며, 명백히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 민주주의와 평등을 모범적으로 지향하는 스웨덴은 민주주의를 위해 엘리트주의 혹은 영재교육을 희생하는 전형적인 국가이다(하지만 영재가 차고 넘친다). 예전에 스톡홀름에서 교육청 국장으로 일하던 한국인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 같은 경우에 의사가 된다든가 권력을 가진다든가 돈을 많이 번다든가 하면 성공했다고 하고 자랑하는데, 이 사람들은 그렇게 얘기 안 해요. 그렇게 얘기하면 큰일 나요. 저 사람 성공한 거 같다. 이런 얘기 잘 안 해요. 그런 표현을 못하게 되어 있어요. 그런 표현을 하면 저 친구 머리가 돌았나…엘리트주의적인데라고 생각해요. 애가 얼마나 행복한가가 더 중요해요. 성공은 큰 의미가 없어요.”
상대적 서열화 사회를 재생산하는 핵심 기제가 바로 학교라는 사실은 진정 부끄러운 일이다. 학교는 차이를 차등화하고 서열화하기 위해 교육의 정상성을 비튼다. 학생들의 등급을 나누려고 오답을 유도하는 ‘변별력’이라는 것은 바로 서열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탄생한 괴물일 뿐이다. 교실 안에서의 등급화된 결과가 대학을 거쳐 일터까지 이어지는 삶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삶의 목적은 결국 끊임없이 서열을 높이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교육의 목적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 삶에 필요한 제법 괜찮은 도구를 손에 쥐여주는 것이다. 서열화는 교육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민주주의에서의 평등은 법적·제도적 차원을 넘어 개개인의 신념과 감수성 안에 자리 잡아야 한다. 상대적 서열화를 부추기는 일은 성차별이나 인종차별만큼이나 큰 범죄적 행위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상대적 서열에 기초한 차별사회이며, 반칙으로 서열을 뛰어넘어도 양심의 가책은커녕 오히려 자랑거리가 되는 그런 사회가 되어버렸다. 공존과 신뢰는 이미 존재감을 잃었다
최용대 발행인/ 논설위원
기자
헤드라인 뉴스
-
《인문정치》상인과 서생
상인과 서생 “선비는 열 손가락이 유약하여 힘든 작업을 감당 못하니 밭을 갈겠는가, 김을 매겠는가, 거름을 주겠는가. …어찌하여 선비는 손발을 놀리지도 않고 땅에서 생산된 것을 빼앗으며 남이 노동한 것을 삼켜 먹는가. 대저 선비가 놀고 먹기에 땅에서 나는 이(利)가 다 개척되지 않고 있다.” 조선후기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은 ‘전론(田論)’에서 선비가
-
《인문사회》치마길이와 경기
치마길이와 경기 아프리카의 스와질란드 정부는 2000년 여름, 여학생들은 짧은 치마를 입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따라 10살이 넘는 여학생들은 무릎을 덮는 치마를 입어야 하고 이를 어기면 국외로 추방되는 처벌을 받아야 했다. 여학생들의 짧은 치마를 금지한 이유는 교사와 학생들간의 성관계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전 국민의 4분의 1이 에이즈에
-
제10회 작가정신문학상에 황명자 시인 『남천일기』로 수상
대구경북작가회의(회장 신기훈)는 오는 12월 20일 오후 4시 대구문학관에서 2025년 정기총회를 열고, 제10회 작가정신문학상 시상식을 개최한다. 이번 문학상 수상자는 황명자 시인으로, 수상작은 포토에세이집 『남천일기』이다. 작가정신문학상은 대구경북작가회의가 지난 1년간 출간된 작품집 가운데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을 선정해 매년 수여하는 상으로, 올해로
-
《인문》학파(學派
학파(學派) 한국 역사상 최고의 학문적 논쟁은 조선중기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그의 제자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간에 벌어진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이다. 퇴계와 고봉은 무려 8년여에 걸쳐 편지를 주고 받으며 논쟁을 벌였다. 이(理)와 기(氣)를 둘러싼 두 사람의 ‘존재론 논쟁’은 인간 본성에 대한 근원적 문제제기로 조선 성리학의 독창적 학풍을
-
.《인문》 김지하
김지하 이 세상에서 순금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근저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것은 세월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사람도, 정치도, 시(詩)도 그러할 터. 한 세대전 이런 시를 쓴 시인이 앞으론 동화작가의 길을 갈 것이라고 했다는 보도다. 공화당 정권 18년 동안, 특히 유신독재 시절 시인 김지하는 저항, 민족, 민주화, 도피, 유랑, 고문, 사형수,
-
《인문사회》원로의 분열
원로의 분열 고대 로마 시절,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1인 체제가 굳어지자 키케로는 친구 아티쿠스에게 권력에서 밀려난 원로의 비애를 담은 편지를 보냈다. “과거에는 정치가 노련하고 원숙한 사람들의 일로 되어 있었네. 그러나 이젠 누군가와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뛰어다니는 젊은이들의 일이 되어 버렸네. 이렇게 되면 노쇠한 정열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정원
-
《인문사회》바람, 바람
바람, 바람 얼룩말은 독특한 체질로 피부를 관리한다. 몸 표면의 검은 무늬줄은 햇빛을 많이 받아들이기 때문에 흰바탕보다 온도가 높다. 검은 줄과 흰바탕 사이에는 온도 차이가 생기고 자연히 기압의 차이도 생긴다. 기압의 차이는 곧 바람을 일으키고 이것으로 평소 피부를 잘 가꾸는 것이다. 이렇듯 바람이라면 지구상에서 생기는 모든 공기의 움직임을 뜻한다.
-
《인문사회》노블레스 오블리주
노블레스 오블리주 옛 북미 인디언 부족사회에는 ‘포트라치(potlatch)’라는 의식이 있었다. 특정한 날을 정해 모든 부족원들이 모피 등 잉여재산을 내놓고 파괴하거나 이웃에게 나눠주는 의식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저서 ‘소비의 사회’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고 존재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그들은 재화를 스스로 불태웠다”고 해석했다. 영국
-
《인문사회》비워서 채운 마음
비워서 채운 마음 1960년대만 해도 “서서히 망하려면 운수업을 하고 단번에 폭삭 망하려거던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라”는 말이 유행했다. 고무신, 막걸리에다 돈봉투돌리기 등 금권선거가 판을 치던 그때 승산없는 출마는 패가망신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웬만한 재력가가 아니면 한차례 출마에도 제집 살림을 바닥내기 십상이고 두번 떨어지면 처갓집 기둥뿌리까지 뽑힐
-
[PRNewswire] 구딕스, 삼성전자에 첨단 기술 협력
[PRNewswire] 구딕스, 삼성전자에 첨단 기술 협력 -- 삼성전자 갤럭시 Z 트라이폴드에 첨단 폴더블 터치 및 지문 솔루션 공급 선전, 중국 2025년 12월 9일 /PRNewswire=연합뉴스/ -- 구딕스 테크놀로지(Goodix Technology)가 12월 8일 자사의 업계 선도적인 메인 및 서브 터치스크린 컨트롤러와 초슬림 측면 키 정전식
-
《인문》새벽시장 언 손 녹여주는 고마운 화톳불
새벽시장 언 손 녹여주는 고마운 화톳불 어영부영하다 보니 어느새 12월. 덩그러니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니 뭔가에 쫓기듯 조바심이 납니다. 대책 없이 놀기만 하다가 겨울을 맞이한 베짱이의 심정입니다. 마음이 스산하니 몸이 더 추운 걸까요. 이른 출근길에 지나게 된 새벽시장에는 칼바람이 매섭습니다. 좌판의 생선도 꽁꽁 얼 만큼 춥네요. 가뜩이나 손님도 뜸한
-
《사설》여당 의원의 보좌진 성추행 의혹, 철저한 진상규명을
여당 의원의 보좌진 성추행 의혹, 철저한 진상규명을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여성 보좌진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정청래 대표는 당 윤리감찰단에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장 의원은 결백을 강조하며 강력 대응하겠다고 맞섰다. 양측 주장이 엇갈리는 만큼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조속한 사실관계 규명이 우선이다.
-
해남배추 캐나다 시장 뚫었다…1천톤 수출
해남배추 캐나다 시장 뚫었다…1천톤 수출 전라남도는 26일 해남 산이면에서 해남배추 1천 톤 캐나다 수출 선적식을 개최하고, 북미시장을 겨냥한 본격적인 수출에 나섰다고 밝혔다. 이번 선적은 전남도·해남군·수출기업이 협력해 추진한 성과로, 해남배추가 캐나다 H마트에 대규모로 공급되는 첫 공식 일정이다. 행사에는 명현관 해남군수, 전남도 신현곤 국제협력관,
-
[연재]사하라에 지다 파리 -디카르 경주의 추억/지옥의 랠리 여덟째 날
별이 반짝이는 소리. 천지는 태고적 나를 보고 있다. 가스버너에 커피 물을 올려놓은 채 그 자리에서 우린 기절한 듯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눈을 뜨니 3시간이 지나 있다. 개운한 몸은 놀란 토끼 모양새다. 560.30km 400m 앞까지 비추는 우리 차의 헤드라이트 하이빔 불빛 앞에 241번 주자의 차가 비참한 형태로 전복되어 있다. 단단한 모래
-
서초구, 빈틈없는 한파 종합대책으로 '한파 피해 제로' 추진
서초구, 빈틈없는 한파 종합대책으로 '한파 피해 제로' 추진 서울 서초구(구청장 전성수)가 다가오는 겨울철을 맞아 오는 2026년 3월 15일까지 4개월간 '25/'26년도 겨울철 한파 종합대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구는 주민들의 건강하고 안전한 겨울나기를 위해 ▲한파 상황관리 체계 구축 ▲주민친화형 한파저감 시설 운영 ▲한파쉼터 운영 ▲한파 취약계층
-
《정치》트럼프 보란듯…첫날 ‘다자주의’ 선언한 G20 정상들
트럼프 보란듯…첫날 ‘다자주의’ 선언한 G20 정상들 이재명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스렉 엑스포센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G20 정상 및 국제기구 수장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이
-
인문칼럼]구름 아래 잠든 나라 -고성 송학동 고분군의 말 없는 역사-
경남 고성의 들녘을 따라 걷다 보면 낮은 구릉 위에 점점이 박힌 봉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 사이로 드러나는 봉긋한 언덕들은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그 속에 천오백 년을 품고 있는 세계가 숨어 있다. 이곳, 송학동 고분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가야 고분군’의 중요한 한 갈래로, 소가야가 남긴 마지막 숨결이 서린 자리다. 5세기
-
《사설》‘내란 색출’ 소동과 헝가리 반면교사
‘내란 색출’ 소동과 헝가리 반면교사 정부가 최근 ‘헌법존중 정부혁신 태스크포스(TF)’로 내란 동조 공직자를 가려내 책임을 묻겠다고 나섰다. 헌정 파괴 행위에 대한 책임 추궁은 국가의 기본 책무이다. 그러나 “과도한 내란몰이” “공직자 솎아내기”라는 우려와 ‘적폐청산’의 정치적 논란이 재소환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 과정이 정치 보복의 악순환으로
-
《사설》‘내란 색출’ 소동과 헝가리 반면교사
‘내란 색출’ 소동과 헝가리 반면교사 정부가 최근 ‘헌법존중 정부혁신 태스크포스(TF)’로 내란 동조 공직자를 가려내 책임을 묻겠다고 나섰다. 헌정 파괴 행위에 대한 책임 추궁은 국가의 기본 책무이다. 그러나 “과도한 내란몰이” “공직자 솎아내기”라는 우려와 ‘적폐청산’의 정치적 논란이 재소환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 과정이 정치 보복의 악순환으로
한국매일뉴스 © 한국매일뉴스 All rights reserved.
한국매일뉴스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