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마치 카니발처럼…81세 룰라의 마지막 대선 유세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10-25 09:47

'정치 1번지' 상파울루 대로변 가득 메워…지지자들 "역전할 것"


여론조사는 보우소나루가 오차범위 내 앞서…룰라 한번도 이기진 못해


보우소나루는 정치적 고향 리우데자네이루서 마무리


룰라 대통령의 마지막 유세 룰라 대통령의 마지막 유세 [AFP=연합뉴스]


(상파울루=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휴대전화는 이미 먹통 상태였다. 왓츠앱도, 인스타그램 메시지도 친구들에게 전할 수 없었다. 일행들은 이 때문에 손에 손을 잡고, 이동해야만 했다.


"역전하자."(Vamos virar)


이들이 외치는 구호였다.


24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시 파울리스타 거리는 붉은 물결이 넘실댔다. 80대 노인부터 4살 아이까지, 백인부터 흑인까지, 면면은 다양했다.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법한 이들에게 한 가지 뚜렷한 공통점이 있었다. 엄지와 검지를 활용해 'L'자를 만들어 힘껏 치켜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룰라(Lula)를 상징하는 손짓이었다.


상파울루 룰라 지지 유세 상파울루 룰라 지지 유세 (상파울루=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24일(현지시간) 대선을 하루 앞둔 상파울루 파울리스타 거리. 룰라 지지자들이 모였다. 2026.10.24. buff27@yna.co.kr


대선 결선투표를 하루 앞둔 이날,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의 마지막 유세가 예정된 파울리스타 거리는 룰라 지지자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파라이수역부터 치아노 마스트리아누역까지 지하철 3개 역 이상에 걸쳐 군중이 길게 늘어섰다. 우리로 치면 광화문부터 서울역까지 족히 되는 거리였다.


브라질 민주화가 이뤄진 1989년부터 일곱 번째 대선에 도전한 룰라(81) 대통령. 그중 3번은 당선됐고 3번은 미끄러진 그가 대통령으로서, 아니 어쩌면 정치인으로서 마지막 유세에 나섰다. 브라질 '정치 1번지'라고 할 수 있는 상파울루시의 파울리스타 거리였다.


1989년 대선부터 약 40년째 룰라를 지지한 여성 1989년 대선부터 약 40년째 룰라를 지지한 여성 (상파울루=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24일 상파울루 파울리스타 거리에서 한 여성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2026.10.24. buff27@yna.co.kr


예정된 시간보다 2시간쯤 늦은 오후 4시께 룰라가 현장에 등장하자, 거리는 순식간에 축제의 장으로 돌변했다. 카니발을 연상케 하는 축제 분위기는 룰라의 등장과 함께 삽시간에 비등점을 넘어 끓어올랐다.


거리에선 폭죽이 터졌고, '오레 오레 오레 오레 레, 룰라, 룰라!'라는 가사가 담긴 '룰라 송'이 거리를 수놓았다. 거대한 군중이 내뿜는 에너지는 강렬했다. 이어 행진이 시작됐다. 마치 브라질의 유명한 카니발에 온 듯, 군중은 계속해서 행진하며 구호를 외쳤다.


"역전하자", "직장인들이여, 나는 당신 아이의 교육을 위해 이 자리에 섰다", "보우소나루 XXX" 등 여러 구호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어떤 이는 트럼펫을 불었고, 또 다른 이는 가로수에 올라가 깃발을 흔들었다.


아빠 무등 탄 다섯 살 룰라 지지 소년아빠 무등 탄 다섯 살 룰라 지지 소년 (상파울루=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24일 브라질 상파울루 파울리스타 거리에서 룰라 지지 집회에 나선 5살 꼬마 어린이. 2026.10.24. buff27@yna.co.kr


손을 잡고 유세에 동참한 부부인 아그리피노 산타나(63)씨와 타시아나 노바이스(52)는 "많은 국민, 특히 대학생들이 룰라를 지지하고 있다"며 "우리는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외친 뒤 서둘러 행렬의 앞으로 걸어 나갔다.


12살 딸과 함께 온 실비오 파부랄(70) 씨는 딸을 바라보며 "우리 브라질도 한국처럼 교육에 투자했으면 좋겠다"며 "지금은 결정적 순간이다. 발전을 택하느냐, 파시즘의 노예가 되느냐는 내일 판가름 난다. 우리는 멈춰선 안 된다.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할머니, 딸, 손녀까지 '3대'가 시위에 참여한 가족도 있었다. 히타 타마쇼(59)씨는 룰라가 처음 대선에 나선 1989년부터 룰라를 지지했다고 했다.


"룰라의 당선은 브라질의 독립성을 상징합니다. 룰라는 '극우'로부터 우리를 지킬 남미의 마지막 희망이에요."


룰라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룰라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 [로이터=연합뉴스]


룰라는 유세 트럭에 올라타 절박한 눈빛으로 손을 내미는 지지자들의 손을 일일이 잡으며 길고 긴 정치 역정의 마지막 유세를 펼쳤다.


현장 분위기만 보면 룰라의 당선은 당연해 보였다. 그러나 이토록 거대한 에너지에도 불구하고 그의 당선 가도가 순탄치만은 않을 터였다.


이날 오후 발표된 여론조사기관 다타폴랴의 마지막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효 득표 기준 룰라 대통령은 49%의 지지율로 보수 우파인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후보(51%)에게 2%포인트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23∼24일 전국 124개 지자체 유권자 4천50명을 상대로 한 대규모 조사였다.


오차범위(±2.0%p) 내의 접전이기는 하나, 1차 투표 패배 후 단 한 차례도 룰라가 지지율 역전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룰라 측에는 불리한 지표였다. 이날 "역전하자"는 구호를 외치는 시민들의 얼굴에 어떤 절박함이 묻어 있었던 이유였다. 1989년 대통령 직선제 부활 이후 1차 투표 1위 후보가 결선 투표에서 패배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이번에 룰라가 판을 뒤집는다면 브라질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 된다.


리우데자네이루 해변에 모인 보우소나루 지지자들 리우데자네이루 해변에 모인 보우소나루 지지자들 [AP=연합뉴스]


한편, 막판까지 앞서나간 보우소나루는 이날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선거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에는 핵심 경합 주(州)인 미나스제라이스의 주도 벨루오리존치에서 오토바이를 탄 지지자 수백 명과 함께 유세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한국매일뉴스
등록번호인천 아 01909
등록일자2025-07-05
오픈일자2025-07-05
발행일자2026-10-25
발행인최용대
편집인이원희
연락처010)8834-9811
FAX031)781-4315
이메일hangukmaeilnews@naver.com
주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274-3.일심빌딩 302호 031-781-9811.
한국매일뉴스

한국매일뉴스 © 한국매일뉴스 All rights reserved.

한국매일뉴스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