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죽음은 '나다운' 모습으로 생을 마무리하는 것"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10-22 08:30

호스피스 영적 돌봄가 능인스님, 책 '단정한 죽음' 출간


"죽음 준비는 오늘 하루를 정성껏 살아가는 데서 시작"


책 '단정한 죽음' 출간한 능인스님책 '단정한 죽음' 출간한 능인스님 [불광출판사 제공]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후두암 말기로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57세 지인 씨(가명) 목에는 차마 눈 뜨고 바라보기 어려울 만큼 크고 붉은 암 덩어리가 불거져 있었다.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워하던 그에게 호스피스 영적 돌봄가인 능인스님이 '무엇을 해 드리면 좋을까요?' 조심스레 묻자 지인 씨는 숨을 고르고 스님을 가만히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얼굴에 번진 그 미소에는 감사함이 가득했고, 어떤 말보다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지인 씨는 힘든 과정에서도 한결같았습니다. 고통 앞에서 원망하거나 괴로워하기보다 고통마저 끌어안고 감싸는 듯했죠."


매우 반듯한 모습으로, 마치 모든 고통에서 해방된 듯 떠난 지인 씨의 마지막 순간은 호스피스 현장에서 10여 년을 보낸 능인스님이 기억하는 가장 '단정한 죽음'이다.


신간 '단정한 죽음'(불광출판사 펴냄) 출간에 맞춰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인근에서 만난 능인스님은 지인 씨의 이야기 등을 들려주며 "단정한 죽음이라는 게 겉모습이 온전한 죽음을 말하는 건 아니다"라며 "두려우면 두려운 마음을, 아프면 아픈 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1997년 수환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후 불교 호스피스의 선구자인 사형(師兄) 능행스님의 권유로 2014년 호스피스 현장에 발을 들인 능인스님은 현재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영적 돌봄가로, 울산 정토마을 자재병원과 암 요양병원에서 환자들의 마음을 돌본다. 전국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기관의 필수인력을 대상으로 표준교육 강의도 하고 있다.


스님의 첫 책인 '단정한 죽음'에는 많은 이들의 마지막을 함께 하며 스님이 차곡차곡 정리한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이 담겼다.


집 나갔다 돌아온 엄마를 다시 잃을까 두려워 잠든 엄마의 코밑에 손을 대고 숨결을 확인하던 어린 날의 기억, 출가 후 왜인지 화와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던 '꼴통 스님' 시절, 그리고 깊은 무기력감 속에 스스로 몸을 던지려 낭떠러지에 섰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따라 나온 사제(師弟) 스님에 붙잡혀 발길을 돌렸던 경험 등 내밀한 이야기도 책에 털어놓았다.


"환자들의 이야기를 풀어가려면 제 것도 꺼내놔야 합니다. 상처받은 사람들을 대하기 위해선 저의 상처도 들여다봐야 하고요. 환자들을 돌보면서, 그리고 이번 책을 쓰면서 저도 과거의 모습을 다르게 바라보게 됐죠."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섰던 스님의 여러 개인적인 경험들은 스님이 현장에서 환자와 보호자를 이해하고 따뜻하게 위로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책 '단정한 죽음' 출간한 능인스님책 '단정한 죽음' 출간한 능인스님 [불광출판사 제공]


다양한 환자와 보호자들을 만나면서 스님도 많이 배웠다.


죽음을 앞두고도 휴대전화를 놓지 못한 채 주식 창을 확인하던 병성 씨의 행동이 끝까지 놓지 못한 욕심이 아닌, 남겨질 아내의 생계를 위한 책임감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된 후 눈에 보이는 모습만으로 한 사람의 삶을 다 알 수 없음을 절감했다.


위암 말기 엄마의 마지막을 지키며 '우리 엄마는 점점 나아질 거예요'라고 씩씩하게 말하던 6살 소연이가 엄마를 잃고 슬픔에 잠겼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밟힌다.


"천진함 대신 깊은 슬픔이 고여있던 얼굴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다가오는 이별을 이미 자기만의 방식으로 느끼고 있던 거죠. 어른들은 흔히 아이에게 죽음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배려라고 생각하는데, 소연이는 도망치지 않고 슬픔을 온몸으로 맞이했습니다. 앞으로도 씩씩하게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많은 이들이 고민하는 '좋은 죽음', '존엄한 마무리'에 대한 성찰도 깊어졌다. 흔히 '고통 없는 죽음'을 좋은 죽음으로 여기지만, 지인 씨를 통해 느꼈듯이 고통에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어도 삶의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나다운' 모습으로 '단정한 죽음'을 맞을 수 있다고 스님은 말한다.


"나다운 모습으로 마무리한다는 것은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을 스스로 바르게 정리하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말을 남길지, 남은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지, 무엇을 놓아주고 무엇을 끝까지 지킬지를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선택하며 마지막까지 내 삶의 주인으로 떠나는 것이죠."


죽음을 통해 삶을 배우게 됐다는 능인스님은 "단정한 죽음은 오늘 하루를 정성껏 살아가는 데서 시작된다. 그런 하루가 모여 단정한 삶이 되고, 결국 단정한 죽음이 된다"며 '하루하루 정성껏 살아가기'를 당부했다.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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