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DA 현장]① 몸바사 자립 이끈 '냉동공조'…희망 찾는 케냐 청년·여성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10-12 09:06

코이카-GIZ 협력 기반 '듀얼 직업훈련'으로 취업 도전…女 비율 64% 급증


친환경 냉매·데이터센터 냉각 등 실무교육 고도화…인접국서 기술 배우러


[※ 편집자 주 = 정부는 실용외교 기조에 맞춰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와의 연대를 강화하며 전략적 공적개발원조(ODA)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최근 ODA 중점협력국으로 신규 편입된 케냐를 비롯해 르완다, 베트남, 캄보디아 등 핵심 파트너 4개국의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사업 현장을 찾아, 원조를 넘어 상생으로 진화하는 'K-ODA'의 모습을 10편에 걸쳐 소개합니다.]


케냐 몸바사 항구 전경케냐 몸바사 항구 전경 [신화=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몸바사[케냐]=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인도양과 맞닿은 케냐 제2 도시이자 최대 항구도시인 몸바사. 연일 섭씨 30도를 웃도는 덥고 습한 날씨와 관광객, 무역선이 끊이지 않는 도시에서 가장 수요가 높은 기술 중 하나는 '냉동공조'(RAC)다.


이곳 사람들에게 에어컨을 비롯한 냉동공조 기기는 사치품이 아니다. 막대한 물동량을 자랑하는 항구의 대형 창고, 수산업을 위한 냉동 시설, 밀집한 상업 지구를 버티게 하는 생존 필수품이자 멈춰서는 안 될 핵심 인프라다.


자연스럽게 몸바사 현지 노동 시장에서 에어컨 설치와 수리를 다루는 냉동공조 기술은 청년들의 생계를 담보하는 확실한 무기로 통한다.


취재진은 지난 9월 1∼2일(현지시간) 몸바사 본섬을 지나 낡은 페리를 타고 '리코니' 지역으로 향했다. 몸바사 내에서 빈곤율이 높고, 과거 각종 소요 사태와 범죄가 빈발해 현지인들조차 출입을 꺼리던 대표적인 우범지대이자 소외된 지역이다.


취업 장벽 허무는 케냐 몸바사 실전형 직업 훈련취업 장벽 허무는 케냐 몸바사 실전형 직업 훈련 (몸바사=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지난 9월 1일(현지시간)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과 독일 국제협력공사(GIZ)의 협력으로 리코니 직업훈련원에 마련된 냉동공조 실습장의 모습. 2026.10.12 raphael@yna.co.kr


◇ "에어컨이 청년 삶 바꾼다"…취업 장벽 허문 '듀얼 훈련'


리코니 직업훈련원(TVC) 실습장 문을 열자, 에어컨 배선을 뜯어내고 고장 원인을 찾느라 여념이 없는 청년들의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들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과 독일 국제협력공사(GIZ)의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수혜자들이다.


코이카와 GIZ는 2025∼2027년 총 850만 달러(약 115억원)를 투입해 나이로비와 몸바사 등 28개 지역에서 '여성 고용 증진 및 친환경 제조업 활성화를 위한 직업기술교육 훈련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능숙하게 에어컨 호스를 수리하던 여성 훈련생 아미나 라마(19) 씨는 "과거에는 오존층을 파괴하는 가스를 썼다"며 "지금은 환경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 친환경 R290 냉매를 적용한 에어컨 기술을 집중적으로 배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곳 교육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장 취업에 방점을 둔 '듀얼 직업기술교육훈련'(Dual TVET) 모델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3개월을 공부하고 산업 현장에서 3개월간 실습하는 실무 밀착형 커리큘럼이다.


케냐 정부가 듀얼 직업훈련을 국가 표준 제도로 본격 추진하기 전부터 ODA 사업을 통해 선제적으로 적용된 덕분에, 학생들은 졸업 후 적응 공백 없이 현장에 즉시 투입되고 있다.


단순한 원조를 넘어선 자립형 운영 시스템도 안착했다. 사미라 압달라 리코니 훈련원 교장은 "교내 전기 배선, 수도 배관, 페인트 도색, 용접 등 유지보수가 필요한 일들을 교사와 훈련생들이 정규 수업의 하나로 직접 해결한다"고 밝혔다.


지역 사회와의 연계도 긴밀하다. 리코니 지역구 국회의원은 매년 100명의 취약계층 청년에게 직업훈련 장학금을 지원하고, 훈련원과 협력해 우수 기술자 DB를 구축해 케냐 항만청(KPA) 등 지역 우량 기업에 취업을 연결한다.


여풍 부는 케냐 몸바사 리코니 직업훈련원 냉동공조 실습장여풍 부는 케냐 몸바사 리코니 직업훈련원 냉동공조 실습장 (몸바사=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지난 9월 1일(현지시간) 케냐 몸바사 리코니 직업훈련원(TVC)에서 우수 졸업생 출신 정식 강사인 라티파 모하메드(가운데) 씨가 여성 훈련생(오른쪽)에게 냉동공조(RAC) 기기 작동 원리를 가르치고 있다. 2026.10.12 raphael@yna.co.kr


◇ "남성 전유물 옛말"…편견 딛고 현장서 롤모델 떠오른 여성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에 부는 거센 '여풍'(女風)이다. 체력 소모가 심하고 작업 환경이 열악해 남성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냉동공조와 용접 분야에 여성이 대거 진출하고 있다.


초기엔 무슬림 인구가 많은 해안 도시 특성상 여학생 모집이 쉽지 않았다. 압달라 교장은 "통 넓은 전통 이슬람 복장을 하고 사다리에 올라가 지역 병원의 고장 난 에어컨을 수리한 라티파 모하메드 학생의 활약이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고 회상했다.


우수 졸업생을 넘어 현재 훈련원의 정식 강사가 된 모하메드 씨의 존재는 '여자는 기계를 만질 수 없다'는 지역사회의 편견을 단숨에 허물었다. 현재 리코니 훈련원의 정규 등록생 99명 가운데 64%에 달하는 63명이 여성이다.


리코니 훈련원이 취약계층의 기초 직무와 생존을 이끈다면, 고등교육 기관인 '몸바사 기술대학교'(TUM)는 고도화된 STEM 교육과 여성 리더십 배양을 이끄는 전초기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여성 진출이 빈곤의 고리 끊습니다" (몸바사=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지난 9월 1일(현지시간) 라일라 아부바카르 몸바사 기술대학교(TUM) 부총장이 케냐 몸바사 TUM 부총장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며 여성의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 진출의 의미 등을 설명하고 있다. 2026.10.12 raphael@yna.co.kr


라일라 아부바카르 TUM 부총장은 "STEM 분야에 여성들이 진출하는 것은 지역사회의 빈곤 고리를 끊는 큰 변화"라며 "원치 않는 임신 등으로 학업을 중단한 여성들이 기술을 통해 세상을 향한 회복 탄력성을 갖게 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비전에 맞춰 실무를 이끄는 마이클 오디암보 TVET 원장은 "전체 훈련생의 70%를 여성으로 선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학 측은 여성 훈련생이 육아 부담을 덜고 공부할 수 있도록 교내에 보육시설 설치를 추진 중이다.


이처럼 TUM의 듀얼 직업훈련 과정은 성별을 넘어 청년들의 구체적인 취업 성과로도 결실을 보고 있다.


TUM 실습장에서 만난 용접 단기 코스 수료생 막스웰 킵타루스(21) 씨는 자동차 부품 회사 '앱손 모터스'에서 3개월간 인턴십을 마친 뒤 곧바로 정직원으로 채용됐다. 그는 "내 기술로 돈을 벌어 가족의 생계를 부양할 수 있게 됐다"며 웃었다.


여기에 평범한 용접 훈련생이었던 비비안 씨가 기술의 끈을 놓지 않고 석사 학위까지 취득한 뒤, 케냐 공학기술자협회장으로 선출돼 국가적 어젠다를 이끄는 리더로 성장한 모습은 후배들에게 롤모델이 되고 있다.


'듀얼 직업훈련'으로 자립 꿈꾸는 케냐 청년들'듀얼 직업훈련'으로 자립 꿈꾸는 케냐 청년들 (몸바사=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지난 9월 1일(현지시간) 케냐 몸바사 기술대학교(TUM) 실습장에서 한 훈련생이 안전 장구를 착용하고 용접 작업을 하고 있다. 이곳 훈련생들은 학교와 산업 현장을 오가는 실무 밀착형 커리큘럼을 통해 구체적인 취업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26.10.12 raphael@yna.co.kr


◇ 첨단 데이터센터 냉각부터 친환경까지…'소프트웨어 ODA'


기초 직업 훈련과 대학의 구조적 혁신을 넘어, 케냐 산업 기술의 최정점에 있는 '국가산업훈련청'(NITA) 몸바사 센터에서는 세계적 흐름에 발맞춘 정밀하고 고도화된 산업 재교육이 한창이었다.


이곳 실습장에는 케냐 전역의 5개 대형 데이터센터(iColo)에서 파견된 엔지니어 23명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프리카 데이터센터의 서버 열기를 효율적으로 식히는 고난도 정밀 냉동공조 기술과 친환경 R410 냉매 취급법을 연마하는 현장이다.


전기공학을 전공한 모린 안주키(29) 씨는 "데이터센터 운영의 핵심은 서버 냉각이다. 2개월간 친환경 냉매 관리 기법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고, 엔지니어 이반 상(35) 씨는 "냉매 교체 타이밍과 작동 원리를 명확히 이해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처럼 현지 기업들이 직원 위탁 교육을 맡길 만큼 NITA 몸바사 센터는 동아프리카 최고 수준의 냉동공조 교육 기관으로 떠올랐다. 페스터스 무쇼키 NITA 몸바사 센터 매니저는 "케냐를 넘어 이집트, 나미비아 등에서 기술을 배우러 온다"고 소개했다.


첨단 데이터센터 냉각 기술 연마하는 케냐 엔지니어들첨단 데이터센터 냉각 기술 연마하는 케냐 엔지니어들 (몸바사=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지난 9월 2일(현지시간) 케냐 국가산업훈련청(NITA) 몸바사 센터에서 대형 데이터센터(iColo) 파견 엔지니어들이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이 지원한 실습 장비를 활용해 고난도 정밀 냉동공조 기술을 배우고 있다. 2026.10.12 raphael@yna.co.kr


코이카는 1차(2014∼2021년·400만 달러)에 이어 2차(2024∼2030년·700만 달러) NITA 역량강화사업을 통해 케냐 청년의 생산적 고용과 소득 증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쇼키 매니저는 "코이카 지원 이후 훈련생 수가 66% 증가했다"고 전했다.


NITA 몸바사 센터가 내세우는 핵심 철학은 '그린 ODA다. 자동차 정비 실습에서 발생하는 폐유를 체계적으로 저감하고, 정밀 절단기를 이용해 고철 자재 폐기물을 최소화하는 등 친환경 요소를 정규 교육 과정에 접목했다.


기술력에 친환경 마인드로 무장한 케냐 청년들은 이제 아프리카 대륙의 든든한 산업 생태계를 이끌 핵심 인력으로 성장하고 있다. NITA 몸바사 센터는 한국형 소프트웨어 ODA가 그려갈 미래 아프리카의 청사진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한국매일뉴스
등록번호인천 아 01909
등록일자2025-07-05
오픈일자2025-07-05
발행일자2026-10-12
발행인최용대
편집인이원희
연락처010)8834-9811
FAX031)781-4315
이메일hangukmaeilnews@naver.com
주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274-3.일심빌딩 302호 031-781-9811.
한국매일뉴스

한국매일뉴스 © 한국매일뉴스 All rights reserved.

한국매일뉴스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