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악 후임 놓고 7개월 대치 끝 막다른 길…"일방적 통보" vs "마지막까지 협의"
노경필 법원행정처장 '후보 재추천 시도'도 논란…이대통령·조희대 이틀째 침묵
취재진 바라보는 조희대 대법원장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조희대 대법원장이 2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19일 전체회의에서 조희대 대법원장 출석 요구 안건을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의결했다. 2026.8.20 see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미령 기자 = 이재명 정부 첫 대법관 후보를 둘러싸고 조율을 이어오던 청와대와 사법부가 결국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사실상 대법원장의 '서면 통보'에 이르게 된 막판 과정에 관심이 쏠린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관 인선은 법원 내·외부 위원들로 구성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대법관 후보자로 천거돼 심사에 동의한 이들 가운데 3배수 이상을 대법원장에게 추천하면서 본격화된다.
대법원장이 추천 후보자 가운데 적임자를 선정한 뒤 법원행정처장이 청와대 민정수석과 협의를 거쳐 최종 조율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왔다.
통상 이런 합의 과정이 끝나면 비로소 대법원장이 대통령을 만나 특정 후보를 제청하겠다고 알린 뒤 인사혁신처에 서면을 제출하는 방식이다.
이번에는 법원행정처와 청와대 간 물밑 조율 단계에서 난항을 겪었다.
후보추천위원회가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김민기·박순영 서울고법 고법판사, 윤성식 서울고법 부장판사,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 등 4명을 추천한 건 지난 1월 21일이었다.
당시 법원행정처장이던 박영재 대법관은 '사법 3법' 대응에 시달리다 한달여 뒤 물러났고, 이후 기우종 법원행정처 차장이 넉 달여간 처장 직무를 대행하다 노경필 대법관이 지난달 14일 처장직에 취임했다.
노 처장은 취임 이후 한 달여간 4∼5차례 청와대와 협의 시도를 했다고 한다.
노 처장은 전날 국회 법사위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협의했지만, 합의에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이재명 정부 첫 대법관이라는 상징성을 고려해 김민기 고법판사를 1순위로 고려했지만, 대법원에서는 그의 배우자가 현 정부에서 임명된 오영준 헌법재판관이란 이유로 난감해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법원에선 또 다른 여성 후보인 박순영 고법판사도 제안했지만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권을 중심으로 제청 지연을 이유로 대법원장 탄핵까지 거론했다.
질의에 답하는 노경필 법원행정처장 (서울=연합뉴스) 이동해 기자 =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이 27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6.7.27 eastsea@yna.co.kr
계속해서 평행선을 달리자 노 처장은 지난주 초 노 전 대법관 후임 후보 4명에게 전화를 걸어 기존 추천을 사실상 물리고 후보 추천 절차를 새로 진행하는 것은 어떻겠냐는 의견도 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 후보가 반대하면서 이런 구상은 실현되지 않았고 일주일여 뒤 조희대 대법원장의 갑작스러운 '서면 제청'이 이뤄졌다. 이재명 대통령과 면담을 건너뛰고 서면만으로 후보자를 제청한 것이다.
노 처장은 서면 제청이 이뤄진 배경을 두고 "마지막까지 협의를 했다"면서도 "두 분(대통령과 대법원장)이 만날, 합의할 기회를 (청와대에서)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마지막 남은 방법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통상 물밑 조율을 마무리한 뒤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만나는 것이 관례였는데, 이런 발언은 조 대법원장이 이 대통령을 직접 만나 합의에 나서려는 의지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하다.
다만 민주당 의원들은 "서면 방식으로 제청한 것을 두고 '협의를 했다'는 말은 옳지 않다"며 "일방적 통보로 봐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청와대에서도 합의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법원장과 만날 필요성을 못 느낀 것으로 보인다.
노 처장은 국회 법사위에서 '대법원이 대면 제청을 요청했는데 청와대가 반대한 것이냐, 청와대에서 들어오라고 했는데 대법원이 거부한 것이냐'는 질문에 "저희가 거부한 적은 없다"고 대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행정처는 제청 당일인 18일 아침이 돼서야 "손봉기 부장판사로 제청하겠다"는 입장을 민정수석실에 전달했고, 그날 오후 3시께 실제 서면 제청을 하고 약 한 시간 뒤 언론에도 이를 공표했다.
다만 노 처장의 전날 법사위 발언에 따르면 그간 청와대와 협의 과정에선 4명의 후보를 모두 놓고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손 부장판사를 최종 제청 후보로 정하겠다는 사실은 당일 아침에야 전달된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 내에선 제청 과정을 두고 불편한 기류가 있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이틀째 공식 입장은 밝히지 않고 있다.
조 대법원장도 마찬가지로 출퇴근길 관련 사안에 대한 언급을 삼간 채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양보 없는 대치의 기저에는 지난해 5월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 판결 이후 양측의 깊은 갈등의 골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권은 이후 사법 불신 여론을 강조하며 '사법개혁'을 추진해왔고, 이 과정에서 사법부가 강한 우려를 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정부·여당과 긴장이 누적돼왔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이번 조율 과정에서도 양측의 입장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