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정치》 명품의 오랏줄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등록 2026-08-18 23:59


명품의 오랏줄





오래전, 자유당 정권의 제2인자였던 이기붕 당시 국회의장 집으로 들어온 선물 목록이 공개되었다. 이 기록에 따르면 47년 전인 1959년 한해 동안 자유당 정권의 실세였던 이기붕 의장 집에는 하루 평균 20~30명의 방문객이 드나들었고 이들이 갖고온 선물만 해도 150여종 1,525건이나 되었다고 한다. 호랑이 뼈가 있었는가 하면 유럽산 과일 10가지를 갈아서 만들었다는 고급음료는 14회에 걸쳐 30상자가 배달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자동차나 선박은 말할 것도 없고 국산기술로는 가전제품 하나 만들어내지 못하던 시절이긴 하지만 선물 목록을 들여다보면 당시의 곤궁했던 그 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그 목록에는 세계적인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가 보낸 ‘씨 없는 수박’도 들어 있었고 옥수수와 청어 같은 농수산물들도 있었다. 그러나 구공탄이나 장작, 전기담요 등 당시의 정권 실세 집에 들어온 선물치고는 낯부끄러운 선물들도 많았다.



서로가 따뜻한 정을 담아 주고받던 선물이 점차 뇌물로 성격이 바뀌면서 그 품목들도 옛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지고 고급화되었다. 1980년대 초, 국회의원들에게 돗자리를 돌렸대서 말썽이 된 것은 그야말로 석기시대의 얘기다. 나라의 경제규모가 커지고 소비수준이 높아지면서 오가는 뇌물의 품목도 고급화된 것이다. 1999년의 정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옷로비 사건 때의 품목은 유명상표의 호피무늬 밍크 코트였다.


그러나 요즘은 외국의 유명상표가 붙었다 하더라도 단일품목으로는 약발이 잘 먹히지 않는 모양이다. 고급 모피코트에다 핸드백과 머플러, 거기에다 한 병에 6백만원이나 한다는 고급 코냑까지 넣은 명품세트 뇌물이 시중의 화제다.  공천을 부탁하며 어느 여성국회의원 에게 돈을 전했다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얘기다. 그러나 공천을 바랐던 사람도 영어의 몸이 되었고 뇌물을 받은 사람도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다. 고가의 명품세트가 약효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옭아매는 오랏줄이 된 셈이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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