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가, 친가

‘외가집’이란 말에는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먼지를 풀풀내면서 종일 달려가는 곳, 방금 거둔 풋풋한 먹거리, 하늘을 유영하는 잠자리떼…. 그리고 마당에 들어서면 외손자·손녀를 덥썩 안아올리며 “어이구, 내 강아지”를 연발하는 외할머니. 그의 주머니 속에는 으레 알사탕이 준비돼 있고.
이제 웬만한 곳은 반나절 거리가 됐고, 외할머니의 외손 사랑도 알사탕이 아니라 피자나 통닭으로 바뀌었지만, 외가집에서 묻어나는 정겨움이나 그리움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수년전 7살짜리 손자와 77세 외할머니의 기막힌 동거를 그린 영화 ‘집으로…’에 인파가 몰린 것도 그동안 잊고 지내온 외가에 대한 향수가 작용한 결과는 아니었을까.
친가(親家)중심의 가부장제가 우리나라 가족제도의 주류를 이루지만,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친·외가는 거의 동등하게 여겨졌다. 불교의 영향으로 고려 이후 혼인의 형태는 남편의 처가살이가 보통이었다. 이 때문에 아내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았고, 제사를 자녀가 번갈아 지내거나 외손이 맡기도 했다.
율곡 이이가 강릉의 외가집 오죽헌에서 태어나 외할머니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란 것은 유명한 얘기다. 율곡의 외할머니 사랑도 극진해 병석에 누운 조모를 돌보기 위해 관직을 내놓기도 했다. 외할머니는 딸만 다섯이었는데 율곡의 어머니 사임당이 둘째다.
지난주 서울지법은 부모를 여읜 어린 자매의 양육권을 놓고 벌인 친·외가의 소송에서 친가쪽 손을 들어 주었다. ‘법적으로 나이가 많은 친조부에게 양육책임을 지우고 있다’는 게 이유의 하나로, 친가여서 승소한 것만은 아닌 듯 하다.
양육권보다 중요한 것은 어린 손녀들이 친·외가를 자주 오가면서 마음의 상처를 씻고 건강하게 자라는 일 일 것이다. 손녀 사랑은 친조부모나 외조부모 다를 게 없을 터니까. 더욱이 요즘은 저출산, 핵가족화로 손자·손녀가 귀해진 시대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