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장소 ㊴] 남해 바다 보며 멋진 시상(詩想) 낚았어요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8-12 08:53

참나무 말뚝을 박은 죽방렴 아래 멸치를 퍼담고 있다

남해의 앵강다숲에 만개한 꽃무릇도 대단한 절경이다

이 몸은 남해의 물을 다 기울여도 씻지 못할 누명이거늘

지족해협에서


—유배일기 1


 공광규


갯가 푸조나무 아래서 가을단풍을 등불 삼아

향교에서 빌려온 『주자어류』를 읽다가 내려놓고

통무를 넣고 끓인 물메기국 한 그릇을 비웠습니다

해안을 한참 걸어가 만난 곳이 지족해협이라던가

연을 날리는 아이들과

굴과 게와 조개와 멍게를 건지고

갈치와 전어와 쭈꾸미를 잡는 노인들을 만나

이곳 풍물을 묻고 즐거워하였습니다

갈대를 엮어 올린 낮은 지붕에는

삶은 멸치들이 은하수처럼 반짝거렸는데

하늘로 올라가는 용의 모습을 닮았더군요

아하, 이곳에서는 멸치를 미르치라 부른다는데

용을 미르라고 부르니 미르치는 용의 새끼가 아닐는지요

미르라고 부르는 은하수 또한

이곳 바다에서 올라간 멸치 떼가 아닐는지요

참나무 말뚝을 박은 죽방렴 아래에서는

남정네들이 흙탕물에 고인 멸치를 퍼 담고 있었습니다

흙탕물 바가지에 담긴 멸치들을 보면서

인간의 영욕이라는 것이 밀물 썰물과 다르지 않고

정쟁(政爭)에서 화를 당하는 것은 빠른 물살을 만나

죽방렴에 갇히는 재앙과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삶기고 말라가는 지붕 위의 멸치와 다름이 없는 이 몸은

남해의 물을 다 기울여도 씻지 못할 누명이거늘*

오늘 밤, 밝은 스승과 어진 벗이 그리울 뿐입니다.


* 『사씨남정기』 구절에서 인용.

ㅡ제1회 김만중 문학상 금상 수상 작품


경남 남해 죽방렴

경남 남해는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이다. 정확히는 남해도(南海島)라고 한다. 남해군은 남해도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해도·창선도 등 여러 섬으로 이루어진 군이다. 육지와는 남해대교와 노량대교로 연결되어 있어 자동차로 바로 들어갈 수 있다. 실제로 가보면 다리로 드나들기 때문에 섬이라는 느낌이 다소 약할 수 있다. 남해 앞바다에 노도(櫓島)라는 작은 섬이 보인다. 옛날에 섬에서 노를 만들어 노도가 됐다고 한다.


노도는 서포 김만중(1637~1692)의 유배처였다. 서포는 1689년 3월 노도로 유배 내려와 1692년 4월 섬에서 죽었다(음력 기준). 섬 곳곳에 아직도 서포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남해군이 150여 억원을 들여 노도 문학의 섬을 조성했다. 서포가 머물렀다는 터에 초옥을 재현했고, 문학관과 문학공원을 조성했다. 김만중 문학관은 완공되었으나 코로나 사태로 개장을 미뤘다. 서포의 마지막 거처에서 그의 기구했던 삶을 돌아봤다. 


서포 김만중 초상화.초옥草屋 가는 길-노도에서 띄우는 편지 · 1


  임동윤


    뗏목돛배는 떠나고

   노을과 물보라가 섬을 지우면서

   칼에 찔린 것처럼 통증이 인다

   선천에서 돌아온 날이 바로 엊그제인데

   내 오늘 머리 허연 죄수가 되어

   또 피눈물의 앵강을 건너왔구나

   노모老母와 오래 살기를 원했는데

   이젠 어느 시절 돌아가 함께 할거나

   입은 있으나 입이 없는 것처럼

   대숲 흔들리는 길을 휘청휘청 올라간다

   쑥부쟁이 구절초 환삼덩굴이

   줄지어 서서 남루한 행색을 받아주지만

   이젠 숨을 곳조차 없는 낭떠러지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벼랑 끝이다

   견뎌야 한다,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눈 감지 마라, 사방이 탱자나무가시다

   침묵의 하루하루가 입 벌리고 기다리는

   초옥草屋 가는 길, 자벌레 같이

   꿈틀꿈틀 기어가는 이 목마름

   비린 바람만 사방에서 불어온다

   뱃멀미에 납작해진 나는

   벌써 탱자나무가시에 몸이 찔려서

   울컥, 마른 통증을 다시 앓는다


*앵강 :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 남해 앞바다 이름

ㅡ제1회 김만중 문학상-유배문학 특별상 수상 작품


남해의 앵강다숲에 만개한 꽃무릇이 절경이다.

남해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소를 손꼽으라면 단연 앵강만이다. 남해의 앵강다숲에 만개한 꽃무릇도 대단한 절경이지만 바닷가에서 죽방렴은 매우 인상 깊다. 


특히 물이 빠지고 나서 드러난 석방렴을 볼 수 있다. 돌로 담을 쌓기 때문에 한자어로 석방렴(石防簾)이라고도 부른다는데 ‘독살’, ‘독장’, ‘쑤기담’ ‘원담’이라는 별칭도 있다. 살짝 만(灣)을 이룬 바닷가에 돌담을 쌓아 밀물이 되면 고기가 같이 들어왔다가 썰물이 되면 물이 빠지면서 돌담에 남는 고기를 잡는 전통적인 고기잡이 방법이라고 한다. 근래에는 물고기가 많이 잡히지 않고 보수 관리에 많은 어려움 때문에 점점 훼손되어 거의 남아있지 않은데 희귀한 석방렴을 본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남해 바다의 절경은 죽방렴과 석방렴이다.

또 하나 남해 내륙으로 깊이 파고드는 앵강만은 바다와 숲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곳이다. 이름은 꾀꼬리(또는 앵무새)를 뜻하는 ‘앵(鶯)’과 물을 뜻하는 ‘강(江)’을 써서, 꾀꼬리 소리가 들리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앵강다숲은 약 400년 전 신전 마을 주민들이 조성한 방풍림으로, 오랜 세월 동안 수목과 야생화가 잘 보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포는 남해 노도에서 약 3년 2개월을 살았다고 한다. 서포가 유배 시절 기록을 많이 남기진 않았으나, 주요 저작 대부분이 남해에서 생산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구운몽』은 의견이 엇갈린다. 국문학계는 『구운몽』을 선천 유배 시절 작품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인데, 남해에선 남해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서포가 머물렀다는 자리에 재현한 초옥 아래에 보이는 건물이 김만중문학관이다.


서포초옥

남해유배문학관에 전시 중인 서포의 대표작품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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