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韓 벙커버스터 현무-5, 비핵 미사일 중 세계최대 위력 갖춰"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8-04 06:54

"순항미사일, 한밤중 1천㎞ 밖 작은 목표물 타격 가능"


"北 '아웅산 테러'로 한국 미사일 개발 다시 시작했다"


"국방과학기술 토대로 군사력 키워야 평화 가능"…안동만 前 ADD 소장


[※ 편집자 주= 안동만 전(前) 국방과학연구소(ADD) 소장 인터뷰는 내용이 많아 다섯 차례로 나눠 송고합니다. 이번이 세 번째로 현무 미사일 성능 등을 다뤘습니다. 지난 6월 13일 송고한 첫 번째 기사는 안 전 소장의 성장 스토리와 천궁 미사일을 담았고, 같은 달 20일 나간 두 번째 기사는 한국이 처음으로 무기를 만든 '번개 사업'을 소개했습니다. 4∼5번째 기사는 전투기를 비롯한 공군 무기 능력, 해군과 육상 무기의 위력 등을 다룰 예정입니다. [삶]은 자서전적 인터뷰여서 개인의 성장 스토리와 사진 등이 많이 들어갑니다.]


2017년 7월 29일 현무-2 발사 장면2017년 7월 29일 현무-2 발사 장면 [합동참모본부 제공 사진]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한국의 순항미사일은 1천㎞ 떨어진 건물의 작은 목표물도 정확히 명중시킬 수 있습니다. 심야에도 가능합니다. 관성항법장치, 위성항법장치, 적외선·레이더 탐색기 등에서 뛰어난 기술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현무-5는 지하 수십m를 뚫고 들어갈 수 있는 벙커 버스터입니다. 정확한 위치 정보를 갖고 있으면 북한의 대부분 지하 벙커를 파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핵(非核) 미사일 중에서는 세계 최대의 위력을 갖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안동만(77) 전(前) 국방과학연구소(ADD) 소장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다. 인터뷰는 지난 6월 8일을 시작으로 여섯 차례에 걸쳐 대전시 한국무기체계안전협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안 전 소장은 "한국의 국방과학 기술은 뛰어난 수준에 도달했다"면서 "그동안 ADD 연구원들의 피나는 노력이 그 토대가 됐다"고 했다.


그는 "천하(天下) 수안(雖安) 망전(忘戰) 필위(必危)라는 말이 있다"면서 "천하가 비록 평화로워도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기가 온다는 뜻"이라고 했다.


안 전 소장은 "우리가 또다시 전쟁의 아픔을 겪지 않으려면 군사력에서 주변의 적국보다 항상 앞서 있어야 한다"면서 "이는 강한 경제력과 뛰어난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우수한 무기체계를 발전시키고, 제대로 된 군사력을 갖추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안 전 소장은 경북중과 경북고를 거쳐 서울대 항공과를 졸업했다. 미국 노스럽 대학교 대학원에서 항공공학 석사학위, 영국 크랜필드 대학교에서 같은 분야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3년 ADD에 입사한 그는 1994년 항공기 체계 부장, 2000년 항공기·유도무기개발본부장, 2003년 국방부 연구개발관을 거쳐 2005년부터 3년간 ADD 소장을 지냈다. 그는 비(非)군인 연구원 출신으로는 최초로 이 연구소 소장이 됐다.


ADD에서 근무하면서 국산 비행기와 미사일 개발에 적극 나선 그는 한국의 국방과학기술 자립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현재는 한국무기체계안전협회 회장, 과학기술연우연합회장, 한서대학교 석좌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안동만 전 ADD 소장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안동만 전 ADD 소장 [윤근영 기자 촬영] 


다음은 인터뷰 3차 기사 질문-답변


-- ADD에 입사하고도 이 연구소 직원이라는 것을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했다고 하던데.


▲ 1970대에 진행된 미사일 개발은 극비였다. 적어도 미사일 팀의 멤버들은 자기 소속을 외부에 이야기할 수 없었다. 나는 가족들에게 주식회사 '흥능기계'에 다닌다고 했다. 대전으로 이사 가기 전에 ADD 본부는 서울 흥능에 있었다.


-- 한국은 1978년 9월 지대지 미사일 '백곰' 개발에 성공했는데, 날렵한 미사일에 왜 백곰이라는 이름을 붙였나.


▲ 서해안에 있는 안흥 시험장은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다. 서해에 발달한 구름 때문이다. 1974년 초 미사일 시험을 준비할 때였다. 김정덕 박사(육사 19기. 전자부품연구원장 역임)를 비롯한 조립점검팀 연구원들이 한겨울에 두꺼운 반코트 작업복을 입고 눈 위를 걸어 다녔는데, 약간 퉁퉁한 모습이었다. 언뜻 보면 마치 백곰 같은 느낌을 줬다. 이후 닉네임 공모에서 '백곰'이 제안됐고, 이는 심사를 거쳐 채택됐다. 이렇게 해서 한국 최초의 국산 지대지 미사일은 백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 당시 미사일 개발에 성공한 나라는 몇 나라 안됐다고 하던데.


▲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등 6개국이었다. 한국이 7번째였다. 당시 우리나라의 국력 수준을 감안하면 매우 빠르게 미사일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 ADD가 백곰 개발 성공 직후인 1980년대 초부터 수난을 겪었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 신군부가 12·12 사태를 통해 집권하면서 ADD가 어려움을 겪었다. 두 차례에 걸쳐 ADD에 대한 숙청 작업이 진행된 것이다. 그 결과 직원 2천600명 가운데 3분이 1인 800명가량이 떠나야 했다. 미사일 팀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고 기초 연구만 해야 했다.


-- 신군부가 왜 그렇게 했나.


▲ 쿠데타로 집권했기에 신군부는 정통성이 취약했다고 본다. 그러니 그들 입장에서는 미국의 지지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당시 미국에 한국의 미사일 개발은 골칫거리였다. 그 미사일이 핵탄두가 될 수 있고 이는 북한을 비롯한 주변국을 자극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신군부는 한국에서 미사일 개발은 없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미국에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


'백곰' 초기모델(왼쪽)과 개량형(오른쪽)'백곰' 초기모델(왼쪽)과 개량형(오른쪽) 사진은 '백곰, 도전과 승리의 기록'이라는 책에 수록된 것을 캡처한 것이다. 초기 모델에는 하단부에 원통이 4개이지만 개량형은 1개다


-- '백곰'은 미국의 지대공 미사일 '나이키-허큘리스'를 페인트칠한 수준이라는 음해가 있었다고 하던데.


▲ 보안사령부도 그런 식으로 보고를 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건 근거 없는 주장이었다. 당시 우리에게는 외형 설계 기술이 부족해서 '나이키-허큘리스'를 만든 항공사인 맥도널드 글라스(McDAC)의 도움을 받은 것은 맞다. 그래서 '백곰' 미사일의 외형이 '나이키-허큘리스'와 같다. 그렇지만 주요 핵심 3개 분야 모두를 우리가 개발했다.


--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 미사일은 유도조종장치, 추진기관, 기체(機體) 등 주요 3개 부위와 이를 종합하는 체계종합 기술로 구분된다. 우리는 유도조종장치에서 진공관 타입을 당시의 최고 기술인 트랜지스터로 바꿨다. 그리고 여기에 맞도록 컴퓨터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도 새로 개발했다. 로켓 추진기관에 들어가는 추진제(화약)의 원료도 미국이 아닌 프랑스에서 수입했다. 그때 도입한 추진제의 연료 출력(성능)은 나이키 허큘리스용보다 높았다. 같은 양의 연료라면 속도와 사거리가 크다는 뜻이다. 우리는 여기에 맞게 추진기관의 구조와 노즐 등을 새로 설계했다.


-- 기체도 바꿨나.


▲ 기체는 추진기관과 유도조종장치, 탄두가 들어가는 몸체인데, 이것도 우리가 다시 설계했다. 미사일의 속도가 빨라지면 미사일 구조에 엄청나게 높은 열이 발생한다. 압력도 속도의 제곱에 비례해서 올라간다. 이런 점을 감안해 우리는 날개를 비롯한 10여종의 구조를 새로 설계했다. 비철 금속의 판금, 주조, 기계가공 등의 공정도 우리가 개발했다. 그런데 당시 한국에는 그런 기체를 설계대로 만들어낼 업체가 없었다. 우리는 당시 경운기 제조업체인 대동공업(현 두원중공업)에 공정설계도 해주고, 장비도 갖다줘서 기체를 만들도록 했다. 당시 대동공업은 경남 진주에 있었는데, 우리 연구원들이 그곳에 상주하면서 생산과 조립을 지도했다. 당시 갓 결혼한 연구원은 신혼살림을 아예 진주에 차리기도 했다.


1983년 10월 미얀마 '아웅산 폭파 사건' 직후 현장의 모습1983년 10월 미얀마 '아웅산 폭파 사건' 직후 현장의 모습 사진은 사건이 발생한 1983년 10월 9일로부터 8일이 지난 10월 17일 촬영된 것이다.

[연합뉴스 사진]


-- 미사일 개발은 몇 년 안 돼서 다시 시작되지 않았나.


▲ 1983년 10월 9일 미얀마 양곤의 아웅산 묘소에서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미얀마를 방문 중인 전두환 대통령은 이 나라의 독립 영웅인 아웅산의 묘소에 참배할 예정이었다. 수행원들은 미리 묘소에 도착해서 대통령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북한 공작원이 미리 설치해놓은 폭탄이 터졌다. 그때 서석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이범석 외무부 장관, 함병춘 대통령 비서실장 등 17명이 숨졌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이기백 합참의장은 부상을 입고 필리핀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다. 귀국 후 이 의장은 ADD에 미사일 개발을 지시했다. 전두환 대통령에게 미사일 개발이 필요하다고 건의해서 승인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이렇게 해서 백곰 개량형(백곰-2)이 '현무(玄武)'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현무-1은 1986년에 공개됐고, 1990년부터 군에 배치됐다.


탄도미사일 현무-5탄도미사일 현무-5 2025년 9월 29일 국방부가 국군의날 행사에 앞서 언론에 공개한 현무-5

[연합뉴스 사진]


-- '백곰' 성공을 발판으로 그 후속인 현무 2∼5가 시리즈로 나왔는데, 현무-5에 관해 소개한다면.


▲ 지하 침투탄이니 벙커버스터(Bunker Buster)라고 할 수 있다. 콘크리트 등으로 돼 있는 벙커를 폭파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북한에는 갱도 진지와 땅굴들이 많다. 한국의 전술지대지(KTSSM)나 현무-5는 이런 벙커의 입구를 뚫고 들어갈 수 있고, 땅굴의 상부를 관통해서 그 아래 진지를 파괴할 수도 있다. 미국은 전략 폭격기로 대형 벙커버스터를 떨어트려 이런 땅굴을 파괴할 수 있다.


-- 현무-5의 위력이 미국의 벙커버스터인 GBU-57보다 강하다고 하던데.


▲ 현무-5의 탄두 무게가 8∼9톤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GBU-57 벙커버스터는 12톤가량 된다고 한다. 폭탄의 파괴력은 운동에너지에서 나온다. 이 에너지는 질량과 '속도의 제곱'에 비례해 커진다. GBU-57은 폭격기가 대기권 안에서 떨어뜨리는 폭탄이지만, 현무-5는 로켓에 의해 대기권 밖으로 나갔다가 빠르게 낙하하는 미사일이다. 고도가 훨씬 높으니 당연히 더 큰 중력 가속도가 붙는다. 현무-5의 파괴력은 비핵(非核) 탄두 중에서는 세계 최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건물의 표적을 정확히 타격하는 한국의 순항미사일건물의 표적을 정확히 타격하는 한국의 순항미사일 사진은 2013년 2월에 촬영된 것으로, 지금은 순항미사일의 정밀도가 한층 높아졌다고 안동만 전 ADD 소장은 말했다.

[해군 제공 사진]


-- 한국 순항미사일의 정밀도는 어느 정도인가.


▲ 명중률을 나타내는 CEP(원형공산오차)가 거의 제로 수준이다. 1천500㎞를 날아가서 특정 건물의 두 번째 창문을 타격할 수 있다는 것은 2013년 이명박 정부 시절에 공개된 적이 있다. 당시는 관성항법장치(INS), 위성항법장치(GPS), 지형 대조 등을 통해 목표물을 찾아가는 식이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욱 정밀해졌다. 탐색기(Seeker)를 장착한 데다 항법 기술이 더욱 발전했기 때문이다. 탐색기는 적외선 탐지기(IR Sensor)와 레이더 탐지기(Radar Seeker) 등인데, 한마디로 미사일에 눈이 붙은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탐지기 덕분에 야간이나 구름 낀 날씨에도 목표물을 정확히 식별할 수 있다.


-- 순항미사일은 저고도로 날아간다고 하던데.


▲ 지상 100미터 고도의 수준에서 제트엔진으로 비행기처럼 날아간다. 30층 건물 정도의 높이이므로 지표면에 거의 붙어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미사일은 직선으로 가지 않고, 계곡 등을 따라 구불구불 날아간다. 레이더망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속도는 아음속인 마하 0.8 정도다. 시속 900㎞가량이다.


-- 순항미사일 제조는 어려운가.


▲ 필요 기술이 탄도 미사일보다 복잡하고 어렵다. 그만큼 정밀도는 더 뛰어나다. 순항미사일은 미국과 소련이 1970년대 핵무기 위협을 줄이기 위해 전략무기제한협상(SALT)에 나서면서 발전했다. 핵탄두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줄이자는 것이 이 협상의 핵심이었다. 그렇지만 미소 양국은 다른 쪽으로 힘을 쏟았다. 작은 탄두를 갖고 정밀하게 침투하는 순항미사일 개발에 적극 나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의 '토마호크(Tomahawk)'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에서는 현무-3가 순항미사일이다. 우리는 함대함 미사일 '해성'과 같은 세계적 수준의 다양한 순항미사일을 개발했다. 현재 추가적 개발도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북한 북한 "다탄두 미사일 성공" 주장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2024년 6월 27일 "미사일총국은 26일 미사일 기술력 고도화 목표 달성에서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 개별기동 전투부(탄두) 분리 및 유도조종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당시 한국 군당국은 북한이 다탄두 미사일 시험에 실패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조선중앙통신 사진]


-- 다탄두 미사일이란 무엇인가.


▲ 다탄두(MIRV. Multiple Independently Targetable Reentry Vehicle)는 미사일이 날아가다 여러 개의 작은 미사일로 분리돼서 각각의 목표로 향하는 체계를 말한다. 예를 들어 큰 미사일 1기가 작은 미사일 여러 기를 갖고 날아가다 대기권 재진입 전에 이들을 분리한다. 이들 작은 미사일은 각각 유도조종 장치를 갖고 있어서 독립적으로 A, B, C 등의 개별 목표물을 찾아간다. 이렇게 갑자기 미사일이 여러 개로 흩어져서 날아오면 막아내기가 훨씬 어려워진다.


-- HGV 기술도 고난도라고 하는데.


▲ HGV(Hypersonic Glide Vehicle)는 극초음속(음속의 5∼20배)으로 날아가는 활공체다. 기존의 탄도 미사일은 포탄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므로 궤적을 예측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이런 예측을 피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극초음속으로 비행하는 탄두 부분이나 미사일이 대기권 진입 전후에 글라이딩(활공)을 하면서 궤도를 바꾸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추가로 작은 로켓 엔진을 달고, 정밀한 유도조종을 해야 한다, 그래서 고난도에 해당한다.


-- 한국은 이런 기술을 갖고 있나.


▲ "한국은 그동안 국방과학기술 자립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듯이 이런 첨단 기술도 연구개발하고 있을 것이다" 정도로 말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한국은 현무-5 이후에 더 멀리, 더 정확히 타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 구축함 '강건호' 무기 시험 진행북한, 구축함 '강건호' 무기 시험 진행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026년 7월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진수식 도중 좌초했던 신형 5천t급 구축함 '강건호'에 탑재된 미사일과 함포 등 주요 무기체계 시험을 지난 3일 참관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사진]


-- ADD 근무 시절 미사일 개발에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 장거리 미사일을 테스트할 곳이 없는 게 문제였다. 사거리 1천㎞급 순항 미사일의 경우 안흥 시험장 앞바다의 정해진 사격 구역 내에서 시험을 해야 했다. 해면 위 100m 정도에서 뱅글뱅글 돌도록 해서 그 거리를 비행토록 하는 식이었다. 한국에는 그런 사거리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의 시험장을 빌려 테스트를 하기도 했다.


-- 자탄 테스트도 어려웠다고 하던데.


▲ 한화가 개발한 다연장 로켓 '천무'는 분산탄 방식도 가능하다. 개발 과정에서 모탄(母彈)이 터질 때 자탄들이 어디로 떨어졌는지, 얼마나 분산됐는지 등을 체크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는 그런 테스트 시설이 없어서 외국의 시험장을 빌려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 국민과 정부, 국회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 평화를 유지하려면 국방력이 강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그만큼 침략당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국방 과학기술도 선진국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바뀔 수 있도록 생태계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방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도 확대해야 한다. 인적 자원 활용에 대한 규제 철폐, 무기 연구개발자에 대한 처우 개선도 필요하다. 국방과학기술자도 사기를 먹고 산다.


(인터뷰 3차 기사 질문-답변 끝)


2006년 10월 국회 국방위에 참석한 안동만 국방과학연구소장2006년 10월 국회 국방위에 참석한 안동만 국방과학연구소장 [연합뉴스 사진]


<인터뷰 1차 기사 요약>


[삶] "하늘에서 바늘로 바늘 맞추는격…한국 미사일, 세계 톱 수준"(7월13일)


이번 미국-이란 전쟁에서 UAE가 보여준 천궁-Ⅱ의 방어율 94∼96%는 정말로 뛰어난 수준이다. 현재 대공 방어 미사일 시스템이 가능한 나라는 미국, 러시아, 중국, 이스라엘, 한국 정도다. 그런데 이번 전쟁에서 중국산 대공 무기와 미국의 패트리엇 미사일보다 한국의 천궁-Ⅱ가 낫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대공 미사일은 톱 클래스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최초의 지대지 미사일을 만드는 '백곰사업'은 1971년 12월 24일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박 대통령은 친필 메모를 통해 1단계로 1975년까지 200㎞ 사거리의 국산 지대지 미사일을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백곰사업은 1978년 9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앞으로 자주국방 수준을 더욱 끌어올리고, 방산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도전했다가 실패해도 용인해주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성과에 대해 제대로 보상해줘야 한다.


현재는 관료주의가 문제다. 국회가 수많은 법을 만들고 정부가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을 내놓는데, 이게 너무 많다. 이러니 실패하면 이런 규정을 근거로 관련 기관들의 감사가 뒤따른다. 이는 연구개발자의 사기를 떨어트린다.


<인터뷰 2차 기사 요약>


[삶] "탱크의 무한궤도 파편이 대통령 관람석까지 날아들었다"(7월20일)


1971년 당시 한국이 ADD를 창설하고 기본 무기를 만드는 번개사업을 진행한 것은 안보 환경이 상당히 위급했기 때문이다.


1968년 1월 21일 북한이 대통령 암살을 목적으로 김신조 등 특수부대원 31명을 남한에 침투시킨 '1·21 사태'가 발생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울진-삼척 무장 공비 침투 사건이 있었다. 그다음 해인 1969년 7월 25일에는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취지의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당시는 주한 미군 전체가 철수하면 북한의 재침략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1971년 당시 한국은 소총, 기관총 등 기본 병기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ADD 연구원들은 밤낮으로 일해서 한 달 만에 기 병기들을 만들어냈다. 설계 도면이 없어서 미군의 소총, 기관총, 박격포, 대전차 지뢰 등을 해부한 뒤 다시 설계 도면을 그리는 역설계 방식으로 무기를 만들었다. 무기에 들어가는 원자재는 청계천 시장에서 구입하기도 했다. 과거의 이런 노력과 후속 국방 연구개발은 현재의 뛰어난 K-방산의 토대가 됐다.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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