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장소 ㉘] 만화책만 보는 곳이 아니라 꿈을 빌려보던 만화방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7-15 08:28

뿌연 알전구 불빛 아래 등받이도 없는 딱딱한 나무의자

몇 시간씩 앉아 만화를 봐도 왜그리 마냥 행복했을까

조금씩 어른이 되는 법을 배우던 유년의 은신처

옛날 만화방 풍경

요괴인간 


권혁웅


벰 베라 베로를 아시는가? 손가락이 세 개씩, 두 손에 도합 여섯 개밖에 없던 남매, 셋이 가진 걸 다 합쳐도 겨우 열여덟 개였던 남매, 게다가 말이는 장님이어서 셋을 모아도 눈동자가 넷뿐이었던 남매,


늘 사람이 되고 싶다고 중얼거리던 이들


돼지엄마네 큰형은 도수 높은 안경알 속에 콩알만한 눈을 끔벅이며 서류철 속에서 살았다 형은 동사무소 9급 주사보, 주민등록등본 호적등본 호적초본 인감증명서 토지대장 사이를 늘 왕복했다


작은형은 공장에 나갔는데 프레스기가 손가락 둘을 먹어버렸다 늘 왼손으로만 악수하던 사람, 사귀던 여자가 떠나갔는데 힘센 오른손으로는 잡을 수 없어서 대신에 세 손가락으로 엿을 먹였다고 한다


막내 미정이는 내 샌드백, 학교 가면서 한 번 오면서 한 번 저녁에 또 한 번 미정이는 얻어맞았다 왜 때렸느냐고 묻는다면 샌드백이 거기 있어서라고 대답할 수밖에, 나중에 버스 차장이 되었고 문틀에 끼어 왼손이 너덜너덜해졌다 오라이라는 거, 쉽지 않은 말이다


요괴인간은 늘 악마, 유령, 좀비, 늑대인간과 싸웠다 적들의 목록을 간추리는 일은 당신에게 맡기겠다 엄마가 돼지인지 돼지들의 엄마인지도 눈 밝은 당신의 몫이다 다만 내가 어둠의 세력이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사람이 되는 게 쉬웠으면 그들이 출연할 때마다 노래를 했겠는가 말이다


벰 베라 베로를 아시는가? 1969년 8월 17일부터 1970년 2월 1일까지 매주 일요일 저녁에 동양방송에서 방송되던 인기 애니메이션《요괴인간

“벰! 베라! 베로!” 요괴인간의 이름을 부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흑백 텔레비전이 아니라 학교 앞 만화방이다. 비닐 커튼을 밀고 들어서면 퀴퀴한 종이 냄새와 빛바랜 만화책 사이로 우리는 한 권의 책보다 먼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던 요괴인간을 만났다. 권혁웅의 시 「요괴인간」을 읽다 보면 잊고 지냈던 동네 만화방 문이 불쑥 열린다. 


사람이 되고 싶었던 요괴인간은 만화 속에만 살지 않았다. 학교 앞 만화방의 낡은 책장과 비닐 커튼 사이에도 벰·베라·베로는 오래 머물러 있었다. 만화를 보러 갔던 곳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곳은 우리 모두가 조금씩 어른이 되는 법을 배우던 유년의 은신처였다.


초등학교 다닐 때 자주 가던 만화가게에서 겪었던 일화가 생각난다. 그 당시 백원짜리 한 장은 요즘 만원 이상 값어치가 넘는다. 어느날 만화가게에 25원어치를 보고 백원짜리를 내밀었더니. 주인 아저씨가 “이미 백원어치 다봤으니. 거슬러 받을 돈 없다.”라면서 선심 쓰듯 “보고 가는 건 맘껏 보고 가라”고 해서 억울하게 잔돈도 못 받고 찔찔 울면서 자정까지 만화를 보다가 집에 와서 된통 혼났다. 


그때는 아이들 납치사건도 자주 일어나고 해서 아이가 없어졌다고 온집안이 발칵 뒤집어져 있었다. 만화 보고 왔다고 말하니 아버지가 귀싸대기를 때리면서 화를 내셨다.


야구를 소재로 한 인기 만화 이현세의「공포의 외인구단」 

그날 이후부터 성인이 되어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만화가 나올 때까지 만화방에는 두번 다시 가지 않았다.


대신 소년조선 등 어린이 신문과 소년중앙 따위의 어린이 월간 잡지를 구독해봤는데 한동안「요괴인간」, 「타이거 마스크」, 「황금박쥐」 에 푹 빠져 살았다.


「폭풍의 언덕」도 만화로 먼저 보고 나중에 소설을 읽었다.  「삼총사」, 「철가면」, 「무기여 잘 있거라」, 「부활」, 「전쟁과 평화」 등 명작들을 초등학생 6학년 무렵에 만화로 다 읽었다. 일찌기 어린시절에 만화를 통해 문학을 만나게 된 셈이다.


만화책을 자유롭게 볼 수 있고 대여도 해주는 만화가게가 대중화한 것은 1950년대 후반 무렵이다. 변변한 놀거리도, 공공도서관도 드물던 60~70년대엔 동네 만화가게가 아이들에게 유일한 문화공간이자 꿈의 장소였다. 요즘처럼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성인만화가 가득한 곳이 아니라 친절한 주인 아저씨나 아줌마가 신간을 안내해주고 간식도 팔며 아이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다. 


중학교도 시험을 쳐서 들어가던 시절. 단골학생이 명문학교에 합격하면 20권을 무료로 볼 수 있는 티켓을 축하선물로 줄 만큼 넉넉한 인심이 흐르는 곳이었다.


한국 만화의 전성기인 그 시절을 풍미한 만화로는 라이파이, 엄마 찾아 삼만리, 짱구박사, 땡이, 어사 박문수 등이 기억난다. 


여학생들은 민애니·엄희자·박수산 등 순정만화 작가들의 「엇갈린 모정」, 「유리의 성」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장르도 과학·역사·명랑 등으로 다양했고 독특한 그림체로 만화의 한 장면만 봐도 작가를 구별할 수 있었다.


여학생 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엄희자의 만화

만화책은 끝부분에 “만화작가가 되려는 문하생을 모집한다”는 구인광고부터 독자들이 보낸 만화를 소개해주는 코너까지 곁들여 일종의 잡지 역할도 했다. 아이들은 만화를 보며 과학자나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키우고, 악인은 결국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의 교훈도 깨달았다. 


만화가게는 만화만 보는 곳이 아니었다. 텔레비전이 귀중한 재산목록이던 그 무렵, 가게 주인집의 마루에 놓인 요술상자 텔레비전을 보는 것도 큰 볼거리였다. 어떤 만화가게에선 만화 5권을 보면 텔레비전을 한 차례 시청할 수 있는 쿠폰을 발행했고 김일·장영철·천규덕 등의 레슬링 경기가 있는 날에는 동네 어른들도 슬금슬금 만화가게로 찾아들었다. 


프로레슬러 김일이 박치기 하나로 상대로 때려눕히는 걸 만화방에서 흑백 TV로 보며 열광했던 시절이 있었다.

흑백TV가 나오고 나서는 만화방에 가서 TV를 봤다. 한국 프로레슬링을 이끈 주역이자 스타 프로레슬러 김일이 박치기 하나로 상대로 때려눕히는 걸 만화방에서 흑백 TV로 보며 열광했던 시절이 있었다.


세뱃돈을 받거나 친척이 와서 용돈을 받은 날엔 지폐를 펄럭이며 만화가게로 달려갔다. 때로는 저녁 먹는 시간도 잊고 만화책에 몰두하다 찾아온 어머니에게 붙들려 가기도 했다. 집으로 끌려가면서도, 어른이 되면 만화가게 주인이 되어 이 재미있는 만화들을 눈치 안 보고 맘껏 읽어야겠다는 포부를 다졌다. 


뿌연 알전구 불빛 아래서 등받이도 없는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몇 시간씩 만화를 봐도 왜그리 마냥 행복했을까. 왜 불후의 세계명작 주인공들은 기억나지 않는데 라이파이, 땡이, 민식이는 친구처럼 선명하게 떠오를까.


나중에 어른이 되어 다시 찾은 만화가게는 많이 변해 있었다. 천진난만한 표정의 아이들은 그곳에 없었다. 학원 다니고 컴퓨터게임 하기에도 바쁜 아이들은 만화가게를 찾지 않고, 부모가 사준 학습용 만화를 읽거나 인터넷에 연재되는 웹툰을 즐긴다. 대신 어른들이 만화가게를 점령했다.


요즘 만화가게는 대부분 24시간 운영되는데, 인조가죽 소파에 누운 어른들이 옆에 무협지나 성인만화 몇 권을 쌓아두고 라면을 끓여 먹다 만화책으로 얼굴을 덮고 잠을 청한다. 


아이들이 꿈을 빌리던 만화가게는 어느새 꿈을 잃은 어른들이 시간을 빌리는 곳이 되었다. 책은 더 두꺼워졌는데 마음은 더 얇아졌다. 다시는 벰과 베라, 베로를 만나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우리 안의 요괴인간이 끝내 사람이 되지 못해서일까.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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