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47년 최승자 첫 시선집…'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7-14 08:56

강성은·김소연·김행숙 등 시인 9명이 시 선정 참여


"최승자 시를 통해 소독되었다"…시인에 대한 회고 묶은 '별책'도 출간


최승자 시인최승자 시인 [문학과지성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고통과 절망, 사랑과 죽음 그리고 욕망을 거침없이 노래하며 한국 현대 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온 최승자(74) 시인의 첫 시선집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가 출간됐다.


시선집의 제목은 1984년 나온 그의 두 번째 시집인 '즐거운 일기'에 수록된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에서 따왔다.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 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중)


1979년 시단에 등장한 최승자는 온몸으로 시대의 상처와 허무, 고통을 시로 토해낸 '시의 순교자'이자 '시인들의 시인'으로 불린다.


시선집에 담긴 91편의 시편 선정에는 강성은, 김소연, 김행숙, 신해욱, 이민하, 이원, 이제니, 진은영, 하재연 등 활발한 시작을 이어가고 있는 아홉명의 여성 시인이 참여했다.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 매독 같은 가을"이라는 강렬한 시구로 시작하는 '개 같은 가을이',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는 '삼십 세' 등 47년 시력(詩歷)의 정수가 담겼다.


최승자 시선집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최승자 시선집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문학과지성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최승자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나로서도 이 시선집은 어떤 획을 긋는다는 의미가 있을 것 같다"며 "봄은 봄이지만 늘 맞는 봄이 아니라 처음으로 맞는 봄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내 청춘의 영원한'이라는 제목의 별책에는 시선집 작업에 함께한 시인들의 산문도 묶였다.


김소연 시인은 '40년 전 어느 봄날'이라는 산문에서 "서가에 서서 시집을 빼내어 들고 아무 페이지나 펼쳤을 때, 낯설고 뜨거웠다. 아픔의 낭자함. 벌거벗은 고백들. 폭발력. 붉은 피가 뚝뚝 흐르는 듯했다"고 최승자의 시를 만난 순간을 돌아봤다.


그는 이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내 상처가 알싸해졌다. 알코올 솜으로 문지를 때처럼 쓰라림과 시원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나는 최승자의 시를 통해 처음 소독되었다"고 고백한다.


또 이제니 시인은 최승자의 첫 시집 '이 시대의 사랑'을 처음 읽은 순간을 떠올리며 "그 목소리는 단지 한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시대의 어둠을 건너온 목소리였다"고 평했다.


각각의 산문은 최승자의 시가 여전히 뜨겁고, 여전히 아프며, 그래서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문학과지성사. 220쪽.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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