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염원 서린 산골교회…'봉화척곡교회 119년 이야기'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6-15 11:17

설립자 손자 노력으로 역사 복원…교회사학자 임희국 집필


국가등록문화유산인 봉화척곡교회 예배당 정면국가등록문화유산인 봉화척곡교회 예배당 정면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대한제국 탁지부(度支部·국가 재무 담당 관청) 관료였던 김종숙(1874∼1956)은 을사늑약 체결 후 관직을 사임하고 경북 봉화로 낙향했다.


덕수궁 파견 근무 중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를 만나 새문안교회를 다녔던 그는 기독 신앙의 힘으로 몰락해 가는 대한제국을 구하고자 마을 주민 장복우, 최재구와 함께 봉화에 교회를 설립했다.


우국의 뜻과 독립의 염원을 모아 1907년 설립된 봉화척곡교회의 역사가 책 '봉화척곡교회 119년 이야기'로 복원됐다.


김종숙의 손자인 고(故) 김영성 장로가 쇠락한 교회에 남은 옛 문서와 유물을 발굴해 잊힐 뻔한 교회의 역사를 되살렸고, 이를 바탕으로 교회사학자인 임희국 전 장로회신학대 교수가 고증을 거쳐 서술했다.



봉화척곡교회는 근대식 교육기관인 명동서숙과 함께 건립됐다. 서울에서 교육 구국운동과 계몽운동을 목도했던 김종숙과 봉화에서 기독교와 서양 문명을 수용해온 장복우는 청년들에게 서양 선진 문명을 가르쳐 위기의 조국을 구하게 하려 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도 교회가 깊이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책에 따르면 김종숙의 처남인 의병장 석태산 등은 교회에 수시로 은밀히 모였고, 교회를 거점 삼아 독립운동 자금을 만주로 전달했다. 경북 일대 주재소(파출소)를 습격하거나, 반민족 친일 부자들의 재산을 탈취해 독립운동 군자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손자 김영성 장로는 어린 시절 교회 교인의 대다수였던 여성들이 예배당에 엎드려 흐느끼며 기도하던 모습을 기억한다고 했다. 독립운동을 위해 기약 없이 집을 떠났던 이들의 아내들이었다.


국가등록문화유산인 봉화척곡교회 예배당 내부국가등록문화유산인 봉화척곡교회 예배당 내부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 책에서 저자는 봉화척곡교회라는 작은 산골 교회의 역사를 통해 경북 지역과 우리나라 전체의 근대사도 함께 조망한다. 신식 사립학교 설립운동과 기독청년운동, 한국 장로교회의 역사 등도 살펴볼 수 있다.


한옥 내부에 서양 예배당이 들어서 동서양 건축 문화가 만난 봉화척곡교회의 건축적인 가치도 책에서 조명된다.


초창기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는 봉화척곡교회는 김영성 장로의 노력으로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6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태학사. 240쪽.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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