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코전이 끝난 뒤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은 장면은 골도 아니고 화려한 개인기도 아니었다. 잠시 주장 완장을 맡았던 김민재 선수가 경기 후 손흥민 선수에게 완장을 건네는 짧은 순간이었다. 불과 몇 초에 지나지 않는 장면이었지만, 그 안에는 스포츠를 넘어서는 깊은 인간학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흔히 완장을 권한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완장을 차는 사람은 팀을 대표하고, 구성원들을 이끌며, 중요한 순간에 책임을 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완장을 차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더 높은 자리, 더 큰 권한, 더 넓은 영향력을 갖는 것을 성공의 증표처럼 여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사람들을 감동을 주는 것은 권한을 얻는 순간보다 그것을 사용하는 태도였다. 권력을 손에 쥐는 사람은 많지만, 권력의 무게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리를 얻는 것은 능력일 수 있지만, 그 자리를 품위 있게 내려놓는 것은 인격의 문제다.
김민재 선수의 행동은 바로 그 점을 보여주었다. 그는 잠시 주장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뒤 그 역할을 원래의 주장에게 자연스럽게 돌려주었다. 특별한 의식도 없었고 과장된 행동도 없었다. 하지만 그 짧은 손짓은 "나는 이 자리를 소유한 것이 아니라 맡고 있었을 뿐이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오늘날 많은 갈등은 자리에 대한 집착에서 시작된다. 정치에서도, 기업에서도, 단체에서도, 심지어 작은 모임에서도 사람들은 종종 역할보다 직함을 먼저 생각한다. 책임보다 권한을 탐하고, 봉사보다 지배를 원한다. 그래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치열하지만, 자리를 내려놓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공자는 "군자는 의를 생각하고 소인은 이익을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의(義)는 단순한 도덕률이 아니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와 물러서야 할 때를 아는 균형 감각이다.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사람은 언제나 앞에 서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할 때는 앞에 서고 필요할 때는 뒤로 물러설 줄 아는 사람이다.
자연도 이 원리를 보여준다. 큰 나무는 숲의 중심에 서 있지만 혼자 숲을 이루지 못한다. 작은 풀과 관목, 이름 없는 미생물까지 각자의 역할을 할 때 비로소 숲은 살아간다. 어느 하나가 자신만 빛나려 한다면 숲은 균형을 잃는다. 인간 공동체도 다르지 않다.
우리가 존경하는 위인들 역시 권력을 소유했기 때문이 아니라 권력을 절제할 줄 알았기 때문에 위대했다. 역사에 남은 지도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 하기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했다. 그들은 자리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고, 자신을 통해 자리를 빛냈다.
완장은 팔에 차는 물건이다. 하지만 완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에 새겨야 할 책임감이다. 완장보다 더 큰 것은 신뢰이며, 완장보다 더 무거운 것은 공동체를 향한 배려다. 완장은 언젠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지만, 신뢰와 존중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다.
체코전 이후 우리에게 남은 것은 승리의 기록만이 아니다. 완장을 건네던 한 선수의 손짓이 보여준 인간다움의 가치다. 그 짧은 순간은 말없이 가르쳐 주었다. 진정한 리더는 앞에 서는 사람만이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한 뒤 미련 없이 다음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공동체를 움직이는 힘은 완장이 아니라 그런 품격에서 나온다.
결국 사람을 크게 만드는 것은 완장이 아니다. 완장보다 큰 것은 사람의 품격이다.

시와 늪 대표 배성근(시인, 수필, 소설, 평론(비평). 칼럼리스트)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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