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비평칼럼] 마지막 선, 인간의 결심 — 낙동강 방어선」-청암 배성근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5-10 07:07

창녕 박진 전쟁기념관


전쟁은 과거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형태를 바꾸어 현재의 정책 속에 살아남는다. 낙동강 방어선 전투가 상징하는 것은 단순한 군사적 방어가 아니라, 국가가 붕괴 직전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가에 대한 기록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정책은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는가, 혹은 얼마나 반복되고 있는가.


창녕 박진 전쟁기념관 기념비


1950년의 낙동강 방어선은 ‘최후의 저지선’이었다. 물러날 곳이 없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선택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안보 정책은 그런 극단의 상황에 이르기 전에 위기를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문제는 이 ‘사전 억제’라는 개념이 실제로 얼마나 작동하고 있는가에 있다.


현재 한반도 안보 정책의 핵심축은 한미동맹이다. 이는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전쟁을 억제하는 구조다. 그러나 이 방식은 근본적인 딜레마를 안고 있다. 억지력은 강할수록 효과적이지만, 동시에 상대의 불안을 증폭시켜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 즉, 전쟁을 막기 위한 힘이 역설적으로 전쟁 가능성을 키우는 이중 구조가 형성된다.


또 다른 축은 외교적 관리다. 북한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듯, 대화와 제재는 반복적으로 병행된다. 그러나 이 접근은 ‘해결’이 아니라 ‘관리’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정책은 위기를 제거하지 못한 채, 단지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집중한다. 이는 안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장기적 불안정의 지속일 수 있다.


국제적 차원에서 보면 유엔 중심의 집단안보 체계 역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에서는 효과적인 개입이 어렵고, 결과적으로 분쟁은 지역 단위에서 장기화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제재와 외교가 작동하고 있음에도 전쟁 자체를 막지는 못했다.


경제적 상호의존 역시 정책적으로 강조되는 억제 수단이다. 글로벌 공급망과 금융 시스템의 연결성은 전쟁의 비용을 극단적으로 높인다. 그러나 이 또한 완전한 안전장치는 아니다. 오히려 경제 블록화와 공급망 분절이 심화될 경우, 전쟁의 비용 구조 자체가 재편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결국 현재의 안보 정책은 세 가지 축이 있다. 군사적 억지, 외교적 관리, 경제적 상호의존 위에서 작동하고 있다. 문제는 이 세 가지가 모두 ‘전쟁을 완전히 막는 구조’가 아니라 ‘전쟁을 지연시키는 구조’에 가깝다는 점이다.


이는 낙동강 방어선과 본 질적으로 유사하다. 그때의 방어선이 붕괴를 늦추기 위한 것이었듯, 지금의 정책도 위기를 근본적으로 제거하기보다 시간을 벌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정책의 핵심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전쟁을 막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미루고 있는가.



낙동강 방어선이 보여준 것은 “끝까지 버티는 결심”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정책은 “어떻게든 유지하는 관리”에 가까워 보인다. 이 차이는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의 방향성과 철학의 문제다.


앞으로의 과제는 분명하다. 억지와 관리에 머무르는 정책을 넘어, 갈등 자체를 구조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낙동강 방어선 위에서, 끝나지 않는 버티기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시와 늪 대표 배성근(시인. 수필, 소설. 평론(비평).칼럼리스트)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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