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정치》 김구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등록 2026-03-24 22:05


김구





6·25가 발발하기 1년전, 민족의 비극을 예고라도 한듯한 총성이 울렸다. 1949년 6월26일 온 나라가 눈물의 바다가 되었다. 하늘이 울고 땅이 울고 겨레가 울었다. 해방이후 국민장 국장 사회장으로 민족의 지도자를 저 세상에 보냈지만 백범 선생의 영결식 만큼 통곡을 자아낸 일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19세기 후반에 태어나서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흉탄에 쓰러지기까지 김구 선생의 일대기는 그대로 야인의 삶이었다. 8·15광복후 귀국한 그의 모습은 바로 서민 그것이었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었다. 일찍이 독립운동에 몸을 던져 자리를 탐한 일이 없다. 임시정부 청사의 수위직을 자청한 소탈한 성격이 지금도 우러러보인다. 백범 선생은 많은 일화를 남겼다. 그 일화에 담긴 이야기는 선이 굵고 대범하다.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지휘한 것은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위업이다. 8·15 환국뒤에 설렁탕집을 자주 찾은 서민적인 생활은 해방시대에 잊지 못할 지도자상의 한 단면으로 남아 있다. 그야말로 파란만장의 생애에서 흠 잡을데가 없을 만큼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남겼다. 지금의 정치 현실에서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사람에 따라선 그와 노선을 달리 했거나, 또 역사적인 평가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만은 명백하게 밝혀둘만 하다. 독립운동사에서 백범의 존재는 독보적이다. 우리 역사에 이런 출중한 인물이 있었음이 자랑스러울 따름이다. 그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거인의 모습은 세월이 흐를 수록 더욱 크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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