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카르노국제영화제 그랑프리 받은 한국영화 100년사 가장 뛰어난 작품
산천초목 삼라만상, 여기와 저기가 한 울타리 속
가는 것이 오는 것이고 오는 것이 가는 것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스틸 컷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박상봉
벽 앞에 앉아서 먼지를 털었다
대답은 늘 바람보다 늦게 도착하고
길은 질문보다 먼저 시작되었다
달마는 아마도 길을 떠난 것이 아니라
질문을 버리기 위해 걸었을 것이다
서쪽의 말들이 너무 무거워
신발 밑창에 붙은 교리를 털어내려
동쪽으로 걸어갔을 터이다
바다는 아무 말 하지 않았고
파도는 경전을 읽지 않았다
물 위에 뜬 하늘만이
그에게 한 장의 빈 페이지를 건넸다
그 무렵
봉산동 시인다방에서 밤을 지새고 있었다
커피값도 못 내는 친구들과
영화 한 편이 세상을 건널 수 있을까
막걸리잔을 돌리며 떠들던 밤
내 귀는 조금씩 멀어졌다
사람들의 말은 술잔 속으로 가라앉고
웃음은 연기처럼 천장에 붙어
입술의 움직임으로
대화를 짐작하는 버릇을 배웠다
동쪽에는 특별한 답이 없었다
다만 아침이 먼저 오는 방향이 있을 뿐
어둠이 가장 늦게 물러나는 곳에서
빛은 늘 처음처럼 태어났다
그래서 달마는 걸었을 것이다
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 다시 묻게 하기 위해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나는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잘 들리지 않는 귀 속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바람 소리를 듣는다
그날의 질문이 아직 길 위에 남아
지금도 누군가의 발뒤꿈치 밀고 있다
세계적인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포스터.
세계적인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조감독을 맡은 영화인 강충구 감독은 나와 절친한 친구 사이다.
과거 시인다방 할 때 알게 되어 금방 친해졌는데 지금도 종종 연락하고 지낸다. 강충구 감독은 대구 봉산동에서 시작한 시인다방을 문화동으로 옮겨 새로 꾸밀 때 실내 인테리어 등 공사 총 감독을 맡았고 손님들도 많이 끌어다주었다.
그 손님들이라고 해봐야 커피값도 제대로 못내는 룸펜이 대다수였지만 나는 강 감독을 시인다방에 여러가지로 도움을 많이 준 고마운 친구로 지금껏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강충구 감독이 나중에 내가 시인다방을 그만 두고 서울의 영화 잡지사에서 기자생활을 하고 있을 때 도움을 청해온 적이 있다.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드디어 완성했는데 영화관 개봉을 잡기 위해서는 언론홍보를 좀 해야 한다면서 영화잡지에 기사로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안그래도 시인다방 시절에 받은 도움도 갚을 겸 기념비적인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세상에 알릴 겸 편집국장한테 그의 말을 전하고 기사를 쓰겠다고 했다가 된통 욕만 얻어 먹었다.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주인공 기봉스님 역을 맡은 친구 신원섭.
다른 영화잡지사 기자들에게도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영화제작 과정만 해도 충분히 기사거리가 된다고 떠들고 다녔는데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강충구 감독에게 잡지사가 가지고 있던 해외영화제 정보를 알려주면서 해외영화제에 나가보라고 권하고 “상만 받으면 영화개봉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 차원에서 말해줬다. 그런데 그가 진짜로 해외영화제에 나간다고 연락해왔다.
나는 편집국장에게 “독립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해외영화제 나간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거리가 충분히 된다”면서 기사로 다루자고 한번 더 제안했다가 “초짜 기자가 벌써 친구 사정이나 봐줄려고 꾀를 쓴다”고 옥상에 불려가 왕복으로 귀싸대기를 엄청 얻어맞았다.
안그래도 어릴 적에 물에 빠진 후유증으로 중이염을 심하게 앓고 있었는데 얼마나 쎄게 맞았는지 그날부터 귀가 잘 들리지않았다. 나중에 결국 장애인 수준의 반귀머거리가 되어버린 것도 그날 고막이 크게 손상되어 그리된 것이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고 돌아오자 충무로는 물론 언론사와 온나라가 발칵 뒤집어졌다. 심지어 어떤 기자는 나한테 연락와서 취재를 하는가 하면 배용균 감독을 만나게 해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한 여성잡자사 기자는 내가 한말을 그대로 기사화 하기도 했다. 소품 담당을 했던 신원섭이라는 미술학도가 어느날 머리를 빡빡 밀로 나온 것을 보고 배용균 감독이 즉석에서 주연으로 캐스팅하였다는 에피소드. 그 주연배우가 지금은 자전거 빵꾸 때우는 일로 입에 겨우 풀칠하고 산다는 이야기.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한 장면.
노승 혜곡(이판용)은 포장마차에 들렀다가 그곳 주인을 즉석에서 캐스팅했다는 등등 내가 전한 말을 기사로 그대로 썼는데 나도 직접 현장을 확인한 것이 아니고 간접적으로 들은 것이어서 나중에 강충구 감독에게 확인해보니 사실이 아닌 부분도 꽤 있었다.
자칫 사장 될 뻔했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그렇게 떴다.
배용균 감독이 만든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은 고집스러울 만큼 집요한 작업 끝에 나온 문제작이자 당대 한국영화계가 이루지 못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작품이다.
상업적으로는 다른 대중적인 영화에 비해 성공을 하지 못했지만, 상영시간 2시간15분의 이 영화는 심오한 불교 철학은 물론 한국적인 영상미의 극치로 평가받으면서 우리 영화계에 큰 영향을 미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지금껏 기억되고 있다. 전문가들에게 한국영화 100년 사상 가장 뛰어난 작품 한 편을 고르라고 하면 아무 망설임 없이 선뜻 지목할 작품으로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손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만든 이들은 누구도 영화계에서 더 이상 빛을 보지 못했다. 강충구 감독만 서울로 올라와 지금껏 충무로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강 감독은 그 당시 내가 다니던 영화잡지사의 모기업인 세경프로덕션에 소개해주고는 잊고 지냈는데, 나중에 다시 만나보니 그때 이장호 감독이랑 배창호 감독 등과 인연이 되어 영화제작 일을 하고 있었다.
나의 오랜 친구는 정식으로 프로덕션을 차리고 영화제작사 대표가 되어 지금도 충무로를 기웃거리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과 그 친구가 서울로 간 까닭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웃음과 기쁨을 선물하려는 오랜 친구의 웃음끼 넘치는 순수한 얼굴이 떠오른다.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한 장면.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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