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불 스님의 입춘단상을 읽고
무불 스님의 입춘단상은 궁극적으로 평등의 재정의를 요청한다. 근대적 평등 개념이 모든 차이를 제거하고 동일성을 강제하는 것이었다면, 스님이 제시하는 평등은 차이를 존중하는 평등이다.

입춘단상 / 무불
우주만물의 순환이 새로이 시작되는 날이다
하늘에는 해가 하나
하늘에는 달도 하나다.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이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나 똑같다.
하나의 햇빛으로 사과나무는 사과를 열게 하고,
복숭아 나무는 복숭아를 열게 한다.
참외는 참외의 맛을 내고 딸기는
딸기의 맛을 내게 한다.
참으로 우주 자연은 신비롭다.
오늘이 입춘, 빈부귀천 남녀노소
모두에게 평등하다.
나의 행복은 남편이요 아내다.
부부의 다정함이 입춘이 주는 가장 거룩한 만물의 하모니다.
자연 순리에 맞추어 주어진 여건과 환경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무불 스님의 입춘단상은 계절의 단아한 인사처럼 다가오지만 그 안에는 동아시아 사유의 핵심 명제가 응축되어 있다. "하늘에는 해가 하나, 달도 하나"라는 천문학적 진술을 시작하여 우주의 일원적 질서(一元的 秩序) 안에서 모든 존재가 동일한 조건 아래 값없이 받는 무료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존재론적 평등성을 시사한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햇빛으로 사과나무는 사과를 열게하고 복숭아나무는 복숭아를 열게한다"라는 진술은, 평등한 조건이 획일적 결과를 낳지 않는다는 차이의 존재론을 말한다. 여기에 하이데거적 용어를 빌리자면, 모든 존재자(Seiende)는 동일한 존재(Sein)의 빛 아래 있지만, 각각은 고유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낸다라는 점이다. 이는 서양 철학사가 고투해온 보편성과 특수성의 이율배반을 동양적 방식으로 해소한다. 즉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특수한 개별자를 보편적 형상의 불완전한 묘사로 격하했다면, 무불 스님의 사유에는 사과와 복숭아는 동등한 존재론적 위상을 지닌다. 따라서 햇빛이라는 보편자는 개별자를 억압하지 않고 오히려 그 고유성을 발현시키는 바탕이 된다. 다시말해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열등성은 개별 사과가 사과 이데아보다 "덜 실재한다"는 것이다. 영원하고 완전한 것이 더 실재적이고, 변하고 소멸하는 것은 덜 실재적이다는 이유를 무불 스님은 사과나무와 복숭아나무(개별자들)는 존재론적으로 동등함으로 사과나무는 불완전한 '과일나무의 이데아'라 말하지 않고 완전한 사과나무 그 자체로 대등하다고 보았으며 개별자는 그 자체로 완전하며, 보편자는 개별자를 억압하지 않고 발현시킨다는 것이다.
사과나무는 사과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사과나무이기 때문에 사과를 맺는다. 이는 노자가 말한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의 역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이룬다를 실천하는 자연의 모습이다.
현대 철학으로 말하자면, 이는 본질주의에 대한 거부이자 동시에 존재의 자기동일성에 대한 긍정이다. 사르트르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말했지만, 스님의 사유에서 사과나무의 실존과 본질은 분리되지 않는다. 사과나무는 사과나무로 존재함으로써 이미 자신의 본질을 실현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빈부귀천 남여노소"라는 수식어는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자연순리를 벗어나 인위적 위계를 만들어냈었다. 사과나무는 복숭아나무를 부러워하지 않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타자와의 비교 속에서 자신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나의 행복은 남편이요 아내다. 부부의 다정이 입춘이 주는 가장 거룩한 만물의 하모니다"라는 문장은 거대한 우주론적 담론이 갑자기 가장 사적이고 친밀한 관계로 수렴되는 이 급전환은, 불교적 소즉시대(小卽是大)의 논리를 체현한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을 통해 무한에 이른다고 했다. 스님에게 '남편' 혹은 '아내'라는 타자는 우주적 차이와 조화의 원리가 구체화된 현현이다. 사과와 복숭아가 같은 햇빛 아래서도 다른 열매를 맺듯, 남편과 아내는 같은 삶 속에서도 서로 다른 존재이다. 그러나 바로 그 차이로 인해 조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양 낭만주의가 사랑을 두 영혼의 완전한 합일로 이상화했다면, 스님의 부부론은 차이를 보존하는 친밀성을 강조한다. 부부는 하나가 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다정"하게 함께 있다. 이때 다정은 사람과의 완전한 일체화, 경계의 소멸, 존재론적 공존의 윤리가 된다.자아의 소멸임 동시에 "나"는 "우리" 속으로 완전히 녹아들어야 하며 사랑하는 사람간의 '차이'는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긍정적 부정이다.
"자연순리에 맞추어 주어진 여건과 환경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의 결론은, 이 글을 단순한 관조적 명상에서 실천적 윤리학으로 전환시킨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세계 내 존재(In-der-Welt-sein)라고 했다. 우리는 이미 던져진(geworfen) 상태에서 출발한다. 스님의 "주어진 여건과 환경"은 바로 이 피투성(被投性)을 가리킨다. 그러나 하이데거가 불안(Angst) 속에서 본래적 실존을 찾았다면, 스님은 감사속에서 조화로운 삶을 찾는다.
사과나무가 사과나무로 사는 것이 체념이 아니듯,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은 가장 능동적인 삶의 태도다. 니체가 "운명애"(amor fati)를 말했을 때, 그가 의미한 것도 바로 이것이다. 주어진 것을 사랑함으로써 자유로워지는 역설이다.
"입춘은 빈부귀천 남녀노소 모두에게 평등하게 온다" 사회적으로 구성된 위계(빈부귀천)와 생물학적 차이(남녀노소)를 모두 포괄한다. 봄은 차별하지 않는다. 그러나 봄은 획일화하지도 않는다. 각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봄을 맞는다.
이는 현대 다문화주의가 고민하는 문제, 보편적 가치와 문화적 다양성의 공존에 대한 동양적 해법을 제시한다. 사과와 복숭아가 같은 햇빛 아래 공존하듯, 서로 다른 문화와 정체성은 보편적 인간성이라는 '햇빛' 아래 각자의 고유성을 꽃피울 수 있다.
무불 스님의 입춘단상은 2천 년 동아시아 사유의 정수를 현대적 언어로 번역한 텍스트다. 도가의 자연관, 불교의 연기론, 유가의 관계 윤리가 하나의 유기적 사유로 통합되어 있다.
차이가 평등을 부정하지 않으며, 평등이 차이를 억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진정한 평등은 각자가 자기 본성대로 살 수 있을 때 실현된다. 사과는 사과로, 복숭아는 복숭아로, 당신은 당신으로, 나는 나로.
당신의 봄을 살면서 당신 고유의 열매를 맺으며 감사의 삶을 살면 좋겠다.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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