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암 배성근 시와늪문인협회 대표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저마다의 그림자를 안고 산다.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 움켜쥔 상처 하나쯤은 있고, 때때로 그 상처는 우리의 걸음을 느릿하게 만들며 삶을 누르는 무게로 작용한다. 그러나 불교는 그 그림자에게 등을 돌리지 말라고 말한다. 차라리 그 자리에 등을 대고 오래 앉아 보라고 권한다. 우리가 고통이라고 부르는 것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때, 비로소 다른 길이 열린다고.
부처는 인간의 삶을 ‘고(苦)’라는 한 글자로 꿰뚫어 보았다. 그런데 그 고통은 우연한 비극도, 신의 시험도 아니었다. 마음이 무엇인가를 꼭 쥐고 있기에 아픈 것, 붙들고 놓지 않으려 할수록 더 무겁게 가라앉는 것—그것이 고통의 본모습이라고 그는 보았다. 그래서 불교는 고통을 제거하는 종교가 아니다. 고통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길을 찾도록 돕는 오래된 인문학이다.
불교의 핵심인 무상·무아·연기라는 세 단어는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 놓는다.
모든 것이 흐르며 사라진다는 **무상(無常)**은, 지금의 기쁨과 슬픔이 모두 강물처럼 스쳐 지나가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고정된 ‘나’라는 실체가 없다는 **무아(無我)**는, 우리가 지키려 애쓰던 자존심과 분노가 사실은 잠시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에 불과함을 일깨워 준다.
모든 존재가 서로의 조건이 되어 생겨난다는 **연기(緣起)**는, 홀로 존재하는 상처도 기쁨도 없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이 세 가지를 붙잡고 보면, 미워하던 일이 조금은 덜 미워지고, 버거웠던 관계도 한 걸음 떨어져 보게 된다. 고통의 절반은 ‘이래야 한다’고 여기는 마음에서 생겨나고, 나머지 절반은 ‘왜 나만’이라는 상상에서 자란다는 사실을 서서히 알게 된다.
팔정도라는 수행의 길도 이 문맥에서 다시 읽힌다. 바르게 본다는 것, 바르게 말한다는 것, 바르게 마음을 챙긴다는 것은 신비한 수행이 아니라 지금의 삶을 정갈히 정비하는 일이다. 혼란한 마음을 향해 빗자루를 드는 일, 내면의 먼지가 일렁일 때 그대로 바라보는 일—이 모든 것이 수행의 언어로 번역된 일상의 감각이다.
불교는 우리에게 고통 없는 세상을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고통을 다른 빛에서 바라보는 눈을 선물한다. 아침 첫 햇살이 어둠을 밀어내듯, 이해의 눈빛 하나가 마음의 그림자를 부드럽게 지운다. 고통의 자리에서조차 한 송이 깨달음이 피어난다는 믿음, 그것이 불교가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조용한 위로다.
그리고 그 위로는 늘 같은 문장으로 돌아온다.
“마음이 놓아질 때, 비로소 길이 열린다.”
우리가 긴 시간을 돌아 결국 도착하는 자리도, 어쩌면 그 한 문장의 몸속일 것이다.
시와늪문인협회 대표 배성근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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