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길 정체에서 떠올리는 역사
1968년 12월 21일 경부고속도로 착공식
명절이 다가오면 전국 고속도로는 귀향길 차량들로 가득 메워진다. 그러나 만약 이 땅에 고속도로가 없었다면? 가족을 만나기 위해 며칠을 걸려야 했을 것이다. 교통 인프라의 부재는 곧 지역의 낙후를 의미했다. 산업화 이전 한국은 도로 사정이 열악해 물자는 제때 움직이지 못했고, 교육·의료·문화 자원은 고립된 지역에 닿지 않았다.
이 막힌 길을 뚫은 것이 바로 고속도로였다. 1968년 착공해 1970년 7월 7일 개통한 경부고속도로는 국가 경제를 살린 혈관이자, 산업화를 가능케 한 대동맥이었다.
국민일보, 1996년 11월 1일자 신문
국민일보, 1996년 11월 1일자에 따르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돈은 적게, 빨리빨리”라는 압축 구호를 내걸고 건설을 밀어붙였다. 독일 아우토반을 모델로 삼아 시작된 이 사업은, 외자 도입 대신 국내 기술과 인력만으로 추진됐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428km를 불과 2년 5개월 만에 완공한 세계적 기록으로 남았다. 산악지형이 70%에 달하는 한반도에서, 낙석·비탈면 붕괴·교량 안전 등 숱한 난제를 극복해야 했으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전쟁”에 비견되었다.
당시 공사 현장에는 수많은 기술자와 감독관이 투입됐다. 그중에서도 박종생 회장은 개통식 현장에서 대통령 곁에서 리본을 자르고, 또 현장에서는 무너진 비탈면을 손수 점검하며 문제 해결을 주도했다.
박종생 회장의 현장 지휘 장면
그의 메모에는 당시의 긴박한 상황이 남아 있다.
“개통 후 비탈면이 쏟아져 도로에 돌사가 쌓여 제거하고… 영주 북쪽 현지 답사”
“도로 유지 관리 경험이 없어 우선 공사 감독원 박종생을 모셔와 부장으로 건역하였다”
이는 경부고속도로가 개통 후에도 수많은 위기를 겪었음을 보여준다.
도로를 놓고 유지·보수와 안전 관리까지 국가 기간산업의 안전을 책임져야 했던 인물이 바로 감독원 박종생이었다.
고속도로가 없던 지역은 물류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 산업 기반이 취약했고, 인구는 떠났다. 하지만 고속도로가 놓이자 몇 시간이 걸리던 거리가 1일 생활권으로 단축되었고, 생산지와 소비지가 연결되어 물류비 절감으로 산업 경쟁력이 강화됐으며, 기업이 지방으로 들어오고 고용이 늘어 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이 가능해졌고 낙후 지역도 경제적 기반을 확보되어 지역 균형 발전하게 되었다. 이는 토목공사로 시작해 한국 근대화의 방향을 바꾼 대역사였다.
오늘날 수백만 대의 차량이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며 산업과 일상을 이어간다. 사람들은 그 길이 어떻게 세워졌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길은 기억한다. 현장에서 손을 굳게 쥐고 책임을 다하던 사람들을...
“산업화의 길을 닦은 사람, 박종생 회장.”
그는 산업화와 현대화를 연결한 산증인이었다.
우리는 불과 반세기 전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출발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나라가, 어떻게 세계가 주목하는 산업화를 이루고 선진국의 문턱에 서게 되었는지 그 과정은 기적에 가깝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기적을 가능케 한 고난과 헌신은 잊히고 있다.
박종생 회장 위령제 후 육필
나라 사랑은 추상적 구호에 머무를 수 없다. 그것은 길을 닦고 산업화를 밀어붙였던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들의 헌신을 되새기고, 다시금 이 땅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묻는 것, 그것이 곧 애국이다.
오늘날 우린 그 길 위에서, 여전히 달리고 있다.
이원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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