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 나의 시는
박상봉
나의 시는 나의 약이다
잦은 기침 멈추게 하는 감기약이다
나의 시는 나의 밥이다
자정 넘어 밀려오는 외로움
마음의 공복을 채워주는 흰쌀밥이다
나의 시는 또 나의 편지다
사랑을 찾아 길 떠나는 노란 편지지
반생애의 상처 아물게 하는
나의 시는 한약처럼 쓰디쓴 추억 속에 있다
| 산문 | 나의 시는
시인이 시를 쓰기 위해 꺼내 드는 기억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다. 그것은 말로 되지 못하고 얼룩져 남은 마음의 절편이며, 손닿지 않는 자리에서 오래도록 눌러온 감정의 침전물이다. 추억이란 이름으로 부르기엔 그리움보다 더 쓴, 부끄러움보다 더 맑은 것들이다.
그 상처는 자주 감각의 가장자리에서 묵묵히 몸을 흔든다. 걸음을 멈춘 순간 문득 찾아오고, 빗물이 뺨을 스칠 때마다 되살아난다. 시인은 그것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면으로 응시한다. 말로 할 수 없었던 말들을 문장으로 바꾸기 위해, 고요 속에서 다시 불러낸다.
시가 되는 상처는 결코 즉흥적인 것이 아니다. 오래 묵힌 침묵이고, 바닥에 가라앉은 진심이다. 마음속 옹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단단한 매듭을 풀고자 할 때마다 시 한 줄이 나온다. 그리고 마침내 시는 누군가에게 전해져 또 다른 상처를 쓰다듬는 손이 된다.
예술은 정리된 아름다움보다 흐트러진 감정에서 태어난다. 그 감정이 말이 되고, 말이 리듬을 얻을 때, 비로소 작품이 된다. 시인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이가 아니라, 아름다움조차 껴안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모든 추함과 아픔을 지나, 결국 단어 하나로 이끌어야 하는 숙명을 가진 사람이다.
시인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앞으로 가는 세상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뒤를 돌아본다. 과거의 찰나, 한 사람의 눈빛, 오래된 향기까지 놓치지 않으려 한다. 모든 잊힌 것이 되살아나는 언어의 샘을 찾아, 그는 망각을 거슬러 걷는다.
가장 깊은 상처는 가장 빛나는 언어를 낳는다. 시인은 피를 멈추지 않는 손으로 시를 쓴다. 다 나았다고 믿었던 마음속의 흉터는 여전히 살아 있고, 시를 쓰는 동안 그 흉터는 새살처럼 다시 꿈틀거린다. 시는 고통의 반추이며 동시에 회복의 의식이다.
때로 시인은 자기 안의 어린아이를 꺼내 놓는다. 그 아이는 상처받기 쉽고, 쉽게 울고, 쉽게 용서한다. 그 투명함이야말로 시의 원천이다. 어른의 언어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어떤 감정을, 그 아이는 한 줄 시로 대신 말한다.
한 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잊고 싶었던 것을 다시 마주하는 일이다. 두려움, 후회, 사랑, 상실... 그 모든 것들을 곱씹으며 시인은 글자를 새긴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고, 또 다른 존재를 향한 손 내밈이다. 말이 닿지 않는 벽 앞에서 말이 되기를 바라는 몸짓이다.
그래서 시를 읽는 사람은 시인의 상처를 빌려 자기의 슬픔을 다시 느낀다. 그 느림과 울림 속에서, 독자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덧입힌다. 시는 그렇게 한 사람의 고백에서 시작해, 또 다른 사람의 기억으로 이어지는 공동의 언어가 된다.
예술가가 추억에서 소재를 찾는다는 말은 결국, 삶에서 길어 올린 진실을 예술이라는 그릇에 담는 일이다. 시인은 그 진실을 쓰다듬고, 말 위에 말의 그림자를 얹는다. 그렇게 완성된 시는 단단한 옹이처럼 다시 세상의 바람을 견디며 서 있는 것이다.
|박상봉 시인 약력
경북 청도 출신으로 대구에서 성장. 1981년 박기영·안도현·장정일과 함께 동인지 『국시』동인으로 문단활동 시작. 주요 시집 『카페 물땡땡』(2007), 『불탄 나무의 속삭임』(2021), 『물속에 두고 온 귀』(2023) 출간, 근현대 문학·예술 연구서 『백기만과 씨뿌린 사람들』 공저(2021). 고교시절부터 백일장·현상공모 다수 당선. 1990년 현암사 『오늘의 시』 선정, 제34회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북카페·문화공간 ‘시인다방’ 운영, 시·IT융합 문화기획, 중소기업 성장 컨설팅 전문가.
박상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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