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보다 사유의 방향을 묻다
수능은 있지만, 삶의 질문지는 없다.
교실은 쉼 없이 굴러가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자주 멈춰 선다. 질문은 속으로 삼켜지고, 외워야 할 정답만이 칠판을 뜨겁게 달군다. 정답을 맞춘 아이는 칭찬받고, 의문을 품는 아이는 뒤처진다. 그렇게 우리는 아이들로부터 '사유의 시간'을 빼앗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교육이 먼저 선행되어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과연 교육이란 무엇이며, 삶을 배운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그 질문의 중심에 ‘인문학’이라는 오래된 길을 다시 떠올려보자..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삶과 존재를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그 이해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학문 영역이다. 철학,문학,역사,예술,언어학 등, 사람과 사회의 관계를 탐구하는 모든 지적 활동을 포괄하며 인간이 왜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묻고 사유하는 훈련이며, 생각,감정,가치,의미를 조율하는 작업이다. 다시말해 인문학의 주된 핵심은 질문하는 힘, 상상력과 공감, 비판적 사고, 그리고 인간다운 회복에 있다. 이 네 가지 요소가 어릴 때부터 길러질 때, 아이들은 삶의 의미를 탐구하고, 사회와 자신을 이해하는 옳바른 주체로 성장할 수 있다.
과거에는 '교양'이라는 말로 불리던 것이, 지금은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불리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인간적인 삶의 품격과 사유의 여백을 되찾으려는 열망이 인문학이라는 형태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만약 학교에서 인문학을 정규 교과로 도입하여 가르친다면 어떻게 될까?
어릴 때부터 철학과 문학, 예술과 역사가 접목된 인문학 공부를 통해 삶을 되묻고 질문하는 훈련을 한다면, 아이들의 시야는 좀 더 멀고 깊어질 수 있지 않을까.
청소년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떠오른 지금, 인문학은 아이들의 내면을 지탱할 단단한 기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초등학생에게 인문학으로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지식을 주입만 할 게 아니라 질문하고 상상하고 사유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수능을 향해 무작정 달리게 하기보다, 최소한 인문학 시간만큼은 정답 없는 질문이 허용되고, 사유의 숨통이 트이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한 아이가 집에 돌아와 "왜 나쁜 애들이 더 인기가 많아요" 라고 질문을 한다면 이미 ‘정의’라는 복잡한 윤리적 개념을 자기 언어로 탐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문학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근본을 묻는 공부다.
문학 속 인물과 함께 울고 웃고, 역사 속 인물의 입장에서 고민하며, 철학의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연습. 이 모든 과정은 단 하나의 정답이 아닌, ‘왜’라고 묻는 힘에서 시작된다.
상상력은 오답에서 자라며, 생각의 근육은 질문을 통해 단련된다. 우리는 그들의 사유 근육을 키워주는 어른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은 질문하는 아이보다 정답을 빨리 고르는 아이를 키운다. 생각은 아날로그처럼 섬세하고 복합적인데, 교육은 디지털처럼 이분법적인 정답만을 강요한다.
결국 우리 아이들은 정보에는 민첩하지만, 감정에는 둔감한 존재로 성장한다.
인문학은 속도를 늦추는 공부다. 생각의 깊이와 말의 무게, 그리고 ‘듣는 힘’을 회복하는 시간이다. 고전 속에도 그 가르침은 숨어 있다. 삼국지의 유비는 제갈량을 얻기 위해 세 번 초가집을 찾았다. 거절당했다고 돌아서지 않았고, 기다릴 줄 알았다. 그 겸손과 끈기가 천하를 바꾼 지혜를 만든 것이다.
“유비는 왜 세 번이나 갔을까?”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아이의 마음엔 사유의 불씨가 켜진다. 인문학은 그렇게 질문에서 질문으로 이어지며, 과거와 현재를 잇고, 아이들의 내면을 키운다.
미국의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철학 동화를 읽히고, 학생이 직접 질문을 만들게 한다. 영국은 말하는 법만큼 듣는 법도 가르친다. 정답 없는 교육을 통해 ‘사람다움’을 배우는 첫 교과서가 바로 인문학인 것이다.
기성세대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어쩌면 이 말일지도 모른다.
“지금 네가 하는 생각이 참 소중해.”
그 한마디가, 한 아이를 사유의 세계로 이끌고, 삶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질문하는 아이는 결코 길을 잃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질문이야말로 진실이 머무는 방향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청소년 문제의 뿌리를 깊이 들여다보고 싶다면, 아이에게 먼저 질문할 기회를 줘야 한다.
정답을 외우는 교육에서 벗어나, 질문하는 교육의 전환이 필요하다.
교육과정에 인문학 교과를 신설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면, 각 교과서에라도 인문학적 사유를 불러오는 단원을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들에겐 시급한 일이다.
지금 "우리의 교실은 지나치게 가속화되었고, 교육은 사고의 여백조차 허락하지 않은 채 앞질러 간다."
이원희 기자
이원희
기자
헤드라인 뉴스
-
《인문학》 꽁치구이와 인문학
꽁치구이와 인문학 우리 동네엔 꽁치구이가 유별난 밥집이 있다. 그 집 꽁치는 파랗고 탱탱한 살집이 일품으로 출출한 발길이 그 구수한 유혹을 떨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런데 열흘 전 일이다. 자르르 맛깔난 꽁치구이 한 점을 막 집어들려는데 좀처럼 술을 입에 대지 않던 아줌마가 반쯤 남은 소주병을 들고 와 잔을 권하며 탄성처럼 말을 토한다. “돈벼락 좀
-
《인문사회칼럼》 시간강사·인문학의 위기
시간강사·인문학의 위기 조카 아이는 대학원에 진학해서 역사를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나중에 뭐 먹고 살려고 그런 공부를 하느냐며 걱정을 했단다.사실 인문대학에 입학할 때만 해도 인문학을 업으로 삼게 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것이다. 그런데 학부 시절, 선생님들은 조카아이에게 학문에 대한 열정, 인문학을 통해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
《인문사회칼럼》 인문학 바람
1. 인문학 바람 ? 올해 대학생이 된 조카아이가 학교에서 받아 온 학교 생활 안내서를 우연히 들춰보게 됐습니다. 고등학교 생활이 지긋지긋하다던 아이가 대학에 가서 뭘 배우고 어떤 생활을 할지 궁금했습니다. 안내서에는 대학 4년간 교육과정, 전공과목 소개, 진로·직업 소개 등이 있었습니다. 그걸 보다가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
《인문사회학칼럼》인문학과 향연
인문학과 향연 요즘 대학가에서는 각종 논문 발표 행사가 유례없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교수들은 발표할 논문 쓰기에 바빠서 서로 얼굴 보기도 힘들고 학생 교육은 뒷전인 경우도 많다. 대학 간의 경쟁이 격화되고 개인의 역량을 논문의 수로 가늠하게 된 데 따른 결과다. 대학의 학술행사를 통상 ‘심포지엄’이라 부른다. 이 말은 인문학 분야의 토론회를 일컫는 데
-
한국매일뉴스 최용대 발행인 제1회 ‘아름다운 시집’ 선정 【창작지원금 3천만원】
한국매일뉴스 (최용대 발행인)은 우리나라 예술 작가들의 열악한 창작 환경을 개선하고 문학 생태계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아름다운 시집’ 선정 및 창작지원금 제도를 올해 처음으로 도입했다. 최용대 발행인은 “상업성과는 거리를 두고 문학적 성취를 중시하는 작가에 힘을 보태어 한국 예술의 다양성과 창작 기반 환경을 넓히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하며,
-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이라면 꼭 알아야 할 제도”-이원희기자-
[한국=문화·예술] 많은 예술인들이 창작 활동에 평생을 바치지만, 정작 생계·법적 보호·사회보장 면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2년 설립된 기관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다. 하지만 여전히 제도가 존재하는 사실조차 모르는 예술인들이 많아 혜택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예술인복지재단은 예술인복지법에 근거해 설립된
-
《인문사회칼럼》 보통사람에 부는 ‘인문 바람
보통사람에 부는 ‘인문 바람’ “문학과 철학이 내 인생의 객관적 모습을 변화시킨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달라지게 했다. 처음으로 딸에게 편지를 썼다.” 8년째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는 이모씨(56)의 말이다. 이씨는 서울시가 노숙자 등을 위해 마련한 ‘희망의 인문학’ 과정에 참여한 뒤 이렇게 소감을 말했다. 이씨의 말은 어느 위대한
-
《인문정치칼럼》 인문학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이유
인문학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이유 인문학이 위기라 한다. 이미 진부해져 버린, 하지만 나름대로는 심각한 이 문제에 대해서 다시 거론하고자 한다. 진부해졌다 함은 그토록 많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함은 인문학의 위기가 인문학 연구자 및 관련 종사자만의 그것이 아닌 한국 사회 전반의 위기를 경고한다는
-
《인문사회문학》일본 국수주의와 인문학
일본 국수주의와 인문학 일본의 소위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대표격인 자들이 일본이나 아시아 역사가 아니라 독일의 철학이나 문학 등을 전공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들은 독일 찬양자, 특히 독일이 그 도발로 비난받는 제1, 2차 대전은 물론 그 역사의 찬양자로서 그 중에는 저명한 니체 연구자도 있다. 그런 독일 찬양자는
-
《사설》인천상륙작전 75주년
인천상륙작전 75주년 더글러스 맥아더(자리에 앉은 사람) 유엔군사령관이 1950년 9월 15일 상륙지휘함 마운트 맥킨리호에서 인천상륙작전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맥아더 왼쪽에서 망원경으로 전방 상황을 확인하는 사람이 에드워드 알몬드 10군단장이다. 해리 트루먼 도서관 9월 15일은 인천상륙작전이 75주년을 맞는 날이다. 더글러스 맥아더 지휘를 받는
-
《사설》 78년 만 검찰청 해체, ‘또 다른 괴물’ 낳지 않도록
78년 만 검찰청 해체, ‘또 다른 괴물’ 낳지 않도록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 개혁과 관련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논란 많던 수사구조 개편이 일단락됐다. 정부·여당이 7일 확정 발표한 정부 조직개편안에는 검찰청을 폐지하고 수사(중대범죄수사청)와 기소(공소청)를 분리하는 내용이 담겼다. 1년 유예기간 뒤
-
《사설》 수출보국, 수입애국
수출보국, 수입애국 대한민국 경제는 수출로 성장해왔다. 전후 폐허 위에서 오직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신념이 나라를 일으켜 세웠고 '수출보국(輸出報國)'이라는 말이 국민적 구호처럼 자리 잡았다. 그러나 우리가 종종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찬란한 수출 성과의 이면에는 언제나 묵묵한 수입이 있었다는 점이다. 대표 수출품인 반도체는 한국 기술의 상징이지만, 그
-
<사막에 지다> 한국인 최초 '펜과 엔진으로 사막을 횡단한 예술가 '최종림 작가의 리얼 체험 수기
오늘부터 '펜과 엔진으로 사막을 횡단한 예술가' 최종림 작가의 책, 『사하라에 지다』를 신문 연재로 만나보게 된다. 우리는 종종 작가를 고즈넉한 서재에 앉아 펜을 든 고독한 존재로 상상하곤 한다. 그러나 최종림 작가의 삶은 그 어떤 소설보다도 드라마틱한 현실 모험 그 자체이다. 최종림 작가는 문학에 정통한 시인이자 소설가다. 그의 이력에서 가장 빛나는
-
지난 주 가정법원 에서 있었던 재판장의 판결
지난 주 가정법원 에서 있었던 재판장의 판결 김귀옥(60·사법연수원 24기) 신임 인천지방법원장은 명성여자고등학교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3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5년 사법연수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했다. 1995년 대구지방법원 판사로 공직생활에 입문해 수원지방법원판사, 서울지방법원 판사, 서울고등법원 판사 등을 역임했다. 서울동부지법
-
《사설》 40년뒤 韓국가채무 비율 156% …'국가 위기' 프랑스보다 높아
40년뒤 韓국가채무 비율 156% …'국가 위기' 프랑스보다 높아 인구 고령화와 저성장으로 인해 40년 뒤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현재의 3배로 폭등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아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억대 빚쟁이가 되는 셈이다. 재정파탄을 막는 방법은 한 푼이라도 정부지출을 줄이는 것이지만, 정부는 2029년까지 재정을 풀겠다는
-
나눔으로 세상의 빛이 되어 준 '안성 ESG나눔기업' 15곳에 'ESG나눔기업패' 전달
나눔으로 세상의 빛이 되어 준 '안성 ESG나눔기업' 15곳에 'ESG나눔기업패' 전달 경기 사랑의열매(회장 권인욱)는 5일(금) 오전 11시 30분 안성시의 15개 기업 및 법인에게 'ESG나눔기업패'를 전달했다. 안성시에서 열린 전달식에는 김보라 안성시장, '안성 ESG나눔기업(법인)' 15곳의 대표자, 권인욱 경기 사랑의열매 회장이 참석했다. 경기
-
고흥군-㈜칸코쿠 노리 재팬, 일본 공동마케팅 협약식 열려
고흥군-㈜칸코쿠 노리 재팬, 일본 공동마케팅 협약식 열려 "고흥의 청정 바다에서 자란 김이 일본 전역에서 프리미엄의 표준이 될 것입니다" 지난 4일, 일본 현지에서 열린 협약식에서 공영민 고흥군수의 힘 있는 목소리에 자리한 참석자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이날 고흥군과 일본 ㈜칸코쿠 노리 재팬(Kankoku Nori Japan Co., Ltd.)은
-
《사설》 中 열병식의 정치학
中 열병식의 정치학 중국이 3일 ‘중국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반파시스트 전쟁(제2차 세계대전) 승리 80주년’을 맞아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전승절 열병식을 거행했다. 1949년 이후 매년 건국절(10월 1일)에 열병식을 연 중국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 발생한 때인 1960년부터 24년간 중단했다가 1984년 재개했다. 건국절이 아닌 전승절에 톈안먼에서
-
《사설》 왕비의 비극, 김 여사의 막장극
왕비의 비극, 김 여사의 막장극 역대 영부인으로는 처음으로 구속 기소된 김건희 여사의 극적인 인생은 드라마와 역사 속 인물과 비교되곤 한다. 강한 권력욕으로 남편을 왕위에 올려놓고 함께 몰락하는 셰익스피어 비극의 맥베스 부인 같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친정 식구들을 동원해 국정 전반을 주물렀던 명성황후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명품백 스캔들이 터졌을 땐
한국매일뉴스 © 한국매일뉴스 All rights reserved.
한국매일뉴스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