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고택
제1차 문학기행, 시인 이상화편(대구 달성공원, 2017년 4월 30일)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한 평생을 살다가 다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한번 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이라 하여 이를 일생(一生)이라고 한다.
영국의 어느 교육자의 말에 의하면 “인생은 연극이다”라고도 했지만, 나는 “인생은 여행이다“ 라고 말하고 싶다.
여행만큼 삶을 풍부하게 하고 즐겁게 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행이 있는 그대로의 사물들을 느끼기 위한 발자취라면, 기행은 느끼고 싶은 대상을 정하고 그것에 대해 미리 조사하고 준비해서 감흥을 최고로 하기 위한 여행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작년에 일년 동안 바람과 함께 걸었던 삼남길 역사기행을 성공리에 마치고(역사 기행문 “걸어서 삼남길” 참조), 이번에 새롭게 시작하는 문학기행은 문학인들(소설가, 시인)의 삶과 발자취를 따라 탐방을 하고 거기서 보고 느낀 것을 수필체 양식을 빌어 기행문 형식으로 표현하고자 함이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
이미 대학 1학년 때부터 나는 노트에 여행하고 싶은 곳을 그때그때 적어 놓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다녔다.
실제로 대학 3학년(1977년) 가을에 홀로 전국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민족시인 이상화시비가 있는 대구 달성공원이었다.
마침 그 당시 대구에는 친구 최충국(경북고 영어교사 역임)군이 경북대를 다니고 있어 들렀던 것이며, 달성공원을 물어 이상화시인의 시비를 스케치했던 것이다.
그래서 삼남길 역사기행을 마치고, 문학기행을 계획하면서 문득 떠올랐던 것이 바로 대구 달성공원의 이상화시인의 시비였다.
앨범과 노트를 뒤져 그때의 사진과 스케치 내용을 찾아내 대구로 첫 번째의 문학기행을 떠났던 것이다.
2017년 4월 30일, 우리는 마침내 달성공원을 찾아갔다.
이른 더위에 달성공원은 여름을 맞이한 듯 해살이 따갑게 내리쬐었고 공원을 찾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예전의 기억은 가물가물했지만 공원은 아주 깔끔하고 아름답게 잘 가꾸어져 있었다.
꽃길을 걸어 올라가다가 범상치 않은 키 큰 나무 한그루가 잔디공원 중앙에 서 있었는데 반은 하얗게 꽃이 핀 듯 그리고 반쪽은 초록색 그대로 이어서 일종의 데칼코마니를 연상케 했다.
능선을 따라 조금 더 오르니 이상화 시비가 눈에 들어왔다.
무려 40년만의 만남이었다.
시비는 그 자리에 그대로 묵묵히 서 있었고 예전 그대로 아담하고 소박했다.
1948년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시비 상단의 “(상화시비)” 글씨는 오세창이 그리고 앞면에는 시인의 초기 대표작인 ‘나의 침실로’ 후반부의 2행이 세로로 새겨져 있는데, 이 글씨는 상화의 막내아들인 태희씨가 11세 때 썼다고 하며, 글씨체가 소박한 시비와 잘 어울린다.
“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엮는 꿈.
사람이 안고 궁그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느니.
아 어린애 가슴처럼
歲月모르는 나의 寢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게로”.
마돈나의 상징적 의미는 지시적 의미에 따라 기독교의 성모 마리아, 즉 인류를 구원하는 박애적인 모성을 나타내기도 하며,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민족의 해방을 가져다줄 절대적 존재, 즉 해방된 조국을 나타낸다.
이들은 모두 시적 화자에게 부활을 가져다줄 ‘구원의 여성’을 표상하고 있다고 해법문학의 현대시에서는 이렇게 평하고 있다.
한편, 연세대 마광수교수는 그의 에세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에서 “나의 침실로”라는 시는 우리나라 연애시 가운데 가장 격렬하고 드라마틱한 내용을 담은 퇴폐적 상징시의 백미(白眉)라고 평을 했다.
또한, 김동길교수는 어느 TV 토론회에서 연사로 나와 “나의 침실로‘ 라는 시를 줄줄이 외우며 이러한 시를 고등학교 2학년 때 쓴 이상화시인은 그 당시 일제시대의 현실적인 사회적 상황을 생각해보면 과연 천재적인 시인이라고 아니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여기서 김수현 산문집 “바람처럼 재즈처럼”에서 “서러운 조화”편을 일부 되새겨 보자.
“독립 운동가이며 민족 시인이셨던 이상화 선생의 詩 2편이 새로이 발굴되었다고 오늘자 ‘한국일보’에 기사가 났다.
일제강점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쓴 저항시인 이상화의 시 두 편과 수필 한편을 찾아내 <근대서지> 최신호를 통해 공개했다.
시의 말미에,
"이른 봄 힘없는 이 땅은 발버둥을 쳐보아도 죽은 무덤과 같이 가위만 눌린다."
라는 대목에서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와 마주했던 시인의 내면과 절망적인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상화시비와 작별한 우리는 상화고택으로 향했다.
계산성당 정문 쪽 우측으로 길게 늘어선 담을 따라 걸어가다가 끝나는 지점에서 왼쪽 기와집이 그가 1943년 4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 4년간을 살았던 집이라고 했다.
상화고택에는 그의 삶과 문학을 조명할 수 있도록 흉상도 서있고 작품들과 글씨들이 전시되어 있다.
고택 우물 옆 담벼락 앞에 시인을 소개하는 기념비와 시인의 대표시비 두개가 세워져 있는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역천'이다.
이상화 고택 안쪽에는 '계산예가'라는 건물이 있는데, '계산동 예술의 집'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대구시 중구의 골목 투어를 활성화 하고 이 지방 출신 예술인들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하여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 라는 이름으로 313㎡ 의 터에 영상실과 한옥전시실, 휴식공간을 갖추어 놓았다.
이상화 고택이 있는 계산오거리 인근 매일신문사에서 동산의료원까지 이르는 골목길은 대구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 골목길에서 당시 대구보통고등학교, 계성고, 대구신명학교 학생들이 3월 8일에 만세운동을 시작한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인의 연보를 살펴보면, 대구에서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 서울로 올라와 지금의 중앙고를 졸업했으며, 이듬해에 고향 대구로 내려가 삼일운동에 가담했다가 검거를 피해 서울로 다시 올라와 하숙을 전전하며 피신을 하게 된다.
1921년 고향 친구인 현진건의 소개로 박종화를 만나 “백조”동인에 가입한다.
이때부터 창간호에 “말세의 희탄”을 발표하면서 홍사용, 나도향, 박영희와 함께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프랑스로의 유학을 꿈꾸며 일본 도쿄에서 공부하던 중, 1923년 관동대지진 때 동포들의 참상을 목격하고 귀국하여 서울 가회동에 기거하면서 작품활동에 몰두하게 되는데, 문단초기에는 위에서 언급한 “나의 침실로”(1923년 백조 3호)와 같은 탐미적인 경향의 시를 쓴다.
이어서 1925년에는 김기진, 박영희와 함께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를 창립한다.
카프 가입이후에 사회적인 책임감을 느끼며 백조동인의 나약하고 낭만적인 시인에서 탈피하여 향토적인 저항시인으로 거듭난다.
이 무렵부터 일제의 탄압에 저항하는 시를 쓰게 되는데, 이때 저항시의 백미인 식민지 생활하의 민족현실을 노래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년 개벽 6월호에 발표)를 발표한다.
1927년 다시 대구로 돌아와 신간회 대구지회 출판간사직에 있었던 상화는 의열단 사건에 연루되어 말 못할 고초를 겪고 이후로도 독립운동 혐의로 몇 차례 감옥생활을 하게 된다.
이어 중국으로 건너간 상화는 북경, 남경 등을 전전하다 1936년 귀국하여 교남학교(지금의 대륜중고에서 교사생활을 하게 된다.
교가 가사를 작사한 것이 문제가 되어 가택수색을 당했고, 자신의 시고 전부를 압수당했다.
1939년에 교사 생활에서 물러난 상화는 문학활동에만 열중했으나 악화된 병세를 이기지 못하고 1943년에 이곳 계산동 고택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상화고택을 방문하면서 이상화기념사업회에서 발행하는 소식지(2016년 12월 제16호)를 얻을 수가 있었다.
발행인인 기념사업회 박동준회장은 “지금이 바로 상화정신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한다.
일제시절 우리 민족에 서린 저항정신을 나타낸 대표적인 문학가인 상화선생의 독립의지와 문학세계를 오래도록 전하고자 어김없이 회원들이 애써온 흔적들을 소식지에 담아 두었다고 한다.
점심식사 후에 수성못을 갔었으면서도 그곳에 있다는 시비를 보질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다음번엔 반드시 상화동상과 또 다른 시비가 있다는 두류공원과 상화가족묘역을 둘러보면서 다시 한번 그의 저항문학가 정신을 고취해 보고 싶다.
시작이 반이라 했던가, 이제 내 인생의 문학기행은 비로소 첫 발을 디딘 것이다.
앞으로 3년여 동안 만나게 될 문학인들의 발자취가 기대된다.
김수현 여행작가
이원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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