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절기상 가을의 문턱으로 들어선다는 입추(立秋)다. 하지만 절기는 무색하다. 극한 폭염은 한풀 꺾였지만, 당분간 30도를 웃도는 무더위는 계속될 것이다.
대구의 한낮 기온은 33도, 전국 대부분 지역에 다시 폭염특보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고, 광복절 전후까지는 이른바 ‘불가마 더위’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계절은 가을을 가리키지만 현실은 여전히 한여름이다. 이처럼 현실과 기대가 엇갈리는 풍경은 날씨에만 그치지 않는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비슷한 이중성이 관측된다.
지난 6월 3일 실시된 제21대 대통령선거가 막을 내린 지 한 달이 지났다. 민심의 선택은 ‘변화’를 요구했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이전투구에 빠져 있다. 개헌 논의와 정책 논쟁은 실종되고, 정쟁과 이미지 정치만 난무한다. 유권자들은 다시 실망하고 있다. ‘정치 혐오’라는 단어가 뉴스 댓글마다 익숙하게 등장한다.
경제 상황도 녹록지 않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 3중고에 소비심리는 얼어붙고, 중소기업은 자금난에 허덕인다. 청년층의 체감 실업률은 20%를 넘나들고, 자영업자들은 ‘기약 없는 버티기’에 지쳐가고 있다. 물가는 오르는데 소득은 그대로다. 정책도, 대책도 더디기만 하다.
한편 코로나19는 2025년 들어 비로소 팬데믹 종식을 선언했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피로감은 여전히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거리두기는 사라졌지만, 사람들 사이엔 여전히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우울과 무기력, 고립감은 사회 전반의 새로운 전염병이 되었다.
이처럼 정치도, 경제도, 공동체도 지쳐 있는 시기. 그래서 우리는 다시 문학과 예술의 자리를 돌아봐야 할 때다.
어떤 이는 말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책이나 읽자는 말이 사치스럽다”고.
하지만 역사는 정반대의 사실을 증명해왔다. 위기 속에서 문화는 살아났고, 문화는 다시 위기를 견디게 해주었다.
자고이래로 문화와 예술이 번성할 때,
사회의 기운도 회복되고 사람들의 삶도 윤기를 되찾았다. 문학은 정치를 바꾸지 못하지만, 정치를 견딜 힘은 줄 수 있다. 시 한 줄이 세상을 구하진 않지만, 세상의 무게에 짓눌린 마음 하나쯤은 살릴 수 있다.
입추를 맞아 프랑스 시인 제프 딕슨의 시 「우리 시대의 역설」이 다시금 회자된다.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작아졌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좁아졌다.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들었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다.”
기술은 발달했지만 삶은 메말랐다. 정보는 넘치지만 지혜는 줄어들었다. 산업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었지만, 많은 것을 잃게도 했다.
이제는 돌아봐야 할 시간이다. ‘앞만 보고 달리는 시대’는 피로를 남겼고, ‘느리게 돌아보는 시간’은 새로운 해답이 될 수 있다. 문학과 예술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정치가 미덥지 않을 때, 경제가 냉랭할 때, 우리는 삶을 지탱해주는 다른 축을 찾아야 한다. 그 중 하나가 문화이고, 책이며, 시다.
문학은 삶의 대안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삶을 ‘버틸 수 있게’ 해준다. 하루 10분이라도 시집 한 권을 펼치는 시간.
그 시간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정치적 행위일지도 모른다.
이인성이 1934년 제13회 조선미술전람회 특선작품「가을 어느날」의 제목과 그림속의 상반신 누드그림이 계절의 표현과 차이가 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역시 이인성 작가의 감각은 천재성이다. 그는 가을 풍경 속에 상반신 나체 여인을 그렸다.
옛날에도 가을이 이렇게 덥다는 것을 알 게 한다. 곡식이 익어가고, 해바라기도 씨앗을 품고 있다.
폭염이 지나고, 낙엽이 떨어질 무렵.
우리는 올 여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시간으로 남기보다,
잠시 멈춰 자신을 들여다본 여름이 되길 바란다.
아! 가을이다. 그림 한점 속으로 시(詩)의 그늘을 찾아든다.
박상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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