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하회 선유줄불놀이 알아보기

권오정 문화부장/ 기자

등록 2026-10-26 18:18


밤하늘과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빛의 연회, 하회 선유줄불놀이


경상북도 안동 하회마울의 밤이 깊어지면, 부용대 64m 낭떠러지와 낙동강 백사장 사이로 차가운 밤바람을 뚫고 정적을 깨는 빛의 장관이 펼쳐진다. 


공중에서는 수천 개의 숯불 알갱이가 소리를 내며 붉은 별빛처럼 떨어지고, 강물 위에는 계란껍질에 얹은 불꽃이 실려 흐른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안동 하회마을의 대표 민속놀이, '하회 선유줄불놀이'다.


1. 발생 유래와 전승 역사: 양반의 풍류와 민중의 위로가 만난 밤


선유줄불놀이는 약 450여 년 전, 조선 선조 대의 대학자 겸암 류운룡과 서애 류성룡 형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회마을의 풍산 류씨 가문 문중을 중심으로 매년 음력 7월 16일 백중날 밤에 펼쳐지던 선유(船遊) 풍류에서 시작되었다.


단순히 양반들만의 문학적 기흥을 달래는 자리에 그치지 않고, 마을 주민 전체가 함께 준비하고 참여하는 축제였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한때 전승이 중단되는 위기를 겪었으나, 마을 주민들과 안동시, 하회별신탈놀이보존회의 헌신적인 복원 노력을 통해 오늘날까지 살아있는 유산으로 이어졌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하회별신탈놀이'와 함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2. 정성과 지혜가 담긴 전통 제작방법

선유줄불놀이의 화려한 빛은 첨단 과학 기술이 아닌, 자연에서 얻은 재료와 선조들의 지혜로 완성된다.


•  줄불(숯가루 봉지): 뽕나무나 서나무 등을 태워 만든 숯가루에 소금을 섞고, 이를 한지로 싸서 길게 꼬아 만든다. 이때 소금을 넣는 것이 핵심인데, 소금이 불꽃이 튈 때 '탁, 탁' 소리를 내며 불꽃의 화력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멀리 튀도록 돕는다. 이렇게 만든 숯봉지(줄불) 수백 개를 긴 새끼줄에 일정 간격으로 매달아 준비한다. 


• 낙화(落花): 부용대 정상에서 강물로 떨어뜨릴 거대한 솔가지 뭉치를 만든다.


• 연등과 달걀불(달걀껍질 불): 달걀 알맹이를 빼낸 껍질 속에 기름을 적신 솜을 넣고 밑바닥에 물에 뜨도록 진흙을 붙여 만든다.


3. 네 가지 불꽃이 어우러지는 놀이 방법


선유줄불놀이는 네 가지 핵심 요소인 줄불, 낙화, 연등(달걀불), 선유가 하나의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며 진행된다.


1. 줄불 점화: 부용대 정상과 강 건너 만송정 소나무 숲 사이에 공중으로 길게 연결된 새끼줄에 줄불을 달아 매고 불을 붙인 뒤 매달아 올린다. 숯봉지가 타들어 가며 밤하늘에 타오르는 은하수 같은 빛의 줄기가 완성된다.


2. 달걀불 띄우기: 강물 위로 수백 개의 달걀불을 띄워 보낸다. 어두운 낙동강 물결을 따라 유유히 흘러가는 은은한 불빛은 강 위에 또 하나의 별자리를 만든다.


3. 선유(뱃놀이): 양반과 시인묵객들은 강 위에 띄운 배 안에서 시를 읊고 가야금 소리에 맞춰 거문고를 타며 술잔을 기울인다.


4. 낙화(낙화야!): 뱃놀이의 흥이 완숙에 이르면 배 위에서 "낙화야!" 하고 크게 외친다. 그 신호에 맞춰 부용대 정상에서 불붙인 대형 솔가지 뭉치를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뜨린다. 거대한 불꽃 기둥이 절벽을 타고 낙동강으로 쏟아져 내리는 순간, 관객들의 탄성과 함께 연회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4. 선유줄불놀이에 담긴 양반 문화의 미학

하회 선유줄불놀이는 조선시대 양반 문화를 이해하는 훌륭한 창(窓)이다.

동양의 전통 미학에서 선비들은 자연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자연 속에 녹아드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삶을 지향했다. 부용대의 기암절벽, 낙동강의 부드러운 물결, 만송정의 푸른 소나무라는 자연적 무대 위에 하늘(줄불)과 땅(낙화), 물(달걀불), 인간(선유)이 불꽃을 매개로 하나가 되는 조화를 연출했다.


또한, 이는 신분제 사회 속에서도 양반과 민중이 어우러졌던 공동체적 승화의 장이었다. 양반들은 시문과 풍류를 즐겼고, 마을 주민들은 줄불을 만들고 떨어뜨리며 고된 노동의 피로를 씻어냈다. 


엄격한 예교 사회였던 조선에서 빛과 소리, 시와 음악을 매개로 마을 전체가 하나 되어 자연의 이치를 노래했던 정교하고 아름다운 예술 문화였던 것이다.


오늘날 하회 선유줄불놀이는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시공간을 초월해 선조들이 누렸던 멋과 여유, 그리고 자연을 대하는 겸손한 태도를 일깨워주는 빛의 서사시로 묵직한 울림을 준다.


권오정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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