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골목] "사진보다 더 좋네요"…중부권 낡은 골목에서 재발견한 낭만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10-18 08:31

성곽길엔 카메라·어촌 비탈길엔 '인생샷…핫플레이스 곳곳 북적


헌책방엔 추억·한옥 골목엔 청춘…철도관사촌도 '핫플' 변신


관광객 몰리며 골목상권 활기…주차난·상인 정착은 숙제


(전국종합=연합뉴스) "SNS에서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분위기가 훨씬 더 좋네요."


주말인 17일 강원 동해시 묵호의 어달삼거리를 찾은 김도겸(31·서울) 씨는 푸른 바다와 오래된 골목이 어우러진 풍경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같은 날 오전 11시 경기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 '행리단길'. 점심시간을 앞두고 맛집을 찾아 나선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행리단길 구석구석을 뷰파인더에 담는 관광객행리단길 구석구석을 뷰파인더에 담는 관광객 [촬영 이영주]


용인에서 온 곽현철(49) 씨는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골목 구석구석을 뷰파인더에 담느라 분주했다.


한때 쇠락한 원도심의 상징이었던 골목들이 젊은 여행객들의 발길을 끄는 '핫플레이스'로 변신하고 있다.


서울 을지로의 '힙지로'처럼 인천의 헌책방 거리부터 경기 수원의 한옥 골목, 강원 동해의 어촌 비탈길, 대전의 철도관사촌까지 오래된 공간에 새로운 활기가 돌고 있다.


동해 묵호 논골담길 야경동해 묵호 논골담길 야경 [동해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경기·인천 : 성곽길엔 카메라 찰칵…헌책방 골목엔 느릿느릿 발걸음


경기 수원 행궁동 '행리단길'의 매력은 현대와 전통,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골목에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 주변의 오래된 한옥과 주택이 카페와 음식점, 공방으로 변신했다.


곽씨는 "성곽길 등 경관이 좋고 구석구석 찍을 거리가 많다"며 "사람들이 많이 찾다 보니 동네가 활기 넘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4학년 자녀와 나들이 나온 이슬기(35) 씨도 "역사적인 시설물이 있어 교육적이어서 자주 오게 된다"며 "오늘은 맛집과 공방에 가볼 예정"이라고 웃었다.


K-드라마 열풍도 골목에 활력을 더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촬영지 맞은편에서 6년째 카페를 운영하는 박미정(55) 씨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뿐 아니라 유럽 관광객들도 깃발을 들고 찾아온다"며 "유명 드라마 촬영지를 코스로 삼아 골목 구석구석을 누빈다. 어마어마하다"고 말했다.


활기 넘치는 행리단길활기 넘치는 행리단길 [촬영 이영주]


행궁동상인회 조이화 회장은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젊은이들에게 도심 속 오래된 골목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맛집과 카페를 찾는 재미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경기 고양시 정발산동의 밤리단길과 보넷길에도 젊은 발길이 이어진다.


밤가시마을의 오래된 단독주택들이 음식점과 베이커리 카페, 빈티지 가구점으로 바뀌었다. 낮은 담장과 나무 대문 사이로 도자기·자수 공방도 들어섰다.


대학생 김동현(22) 씨는 "양식과 중식, 일식은 물론 커피와 디저트 맛집도 많고 유럽 분위기와 앤티크 감성을 느낄 수 있어 친구들과 종종 찾는다"며 "수제 제품 플리마켓도 구경만으로 즐겁다"고 말했다.


인천 제물포구 배다리 마을에서는 '헌책 사고 팝니다'라는 낡은 간판과 빛바랜 책들이 방문객을 맞는다.


세월의 흔적 간직한 '잇다스페이스'세월의 흔적 간직한 '잇다스페이스' [촬영 조보희]


1960년대 번성했던 헌책방 거리에는 독립서점과 공방이 들어서고 벽화가 더해졌다. 철길 음악회와 헌책 경매 등이 열리는 배다리 축제도 골목의 매력을 더한다.


인천 연수구에 사는 이모(32) 씨는 "바쁜 일상에서 잠시 여유를 즐기고 싶을 때 찾는다"며 "고즈넉한 골목 곳곳에 보물처럼 숨어 있는 가게들을 찬찬히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 강원·충청·대전 : 오징어 나르던 비탈길에 '인생샷'…철도관사촌도 북적


강원 동해시 묵호항 뒤편 논골담길에는 '남편과 마누라 없이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옛말이 전해진다.


동해 논골담길 벽화동해 논골담길 벽화 [동해시 제공]


어민들이 오징어와 명태를 지게에 싣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던 시절, 생선에서 떨어진 바닷물로 골목이 늘 질퍽했던 골목을 빗댄 말이다.


이제 그 비탈길에는 배낭을 멘 여행객들이 카메라를 들고 오른다.


가파른 논골담길을 올라 뒤돌아서면 낡은 지붕 너머로 푸른 동해가 펼쳐진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도로와 에메랄드빛 바다와 도로가 맞닿을 듯한 어달삼거리를 만날 수 있다.


2020년 KTX 개통으로 수도권에서 기차 한 번이면 닿는 묵호는 '뚜벅이 여행'의 명소로 떠올랐다.


동해 어달해변의 돌탑동해 어달해변의 돌탑 [촬영 유형재]


김도겸 씨는 "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바다를 보고 사진도 찍을 수 있어 여유롭게 여행하기 좋다"고 말했다.


관광객이 늘면서 골목상권도 활기를 띠고 있다.


묵호역 인근 공예품점 '묘한 동해' 운영자 추민정(45) 씨는 "2023년 5월 가게를 열었을 때보다 손님이 3배 정도 늘어난 것 같다"며 "많은 사람이 묵호를 찾아와 지역을 알아봐 줘 반갑다"고 했다.


동해시 소상공인연합회 기형규(38) 부회장도 "옛 정취와 풍경에서 낭만을 느끼려는 젊은 관광객들이 많다"며 "지역 소비와 상권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충북 청주 운천동 '운리단길'에도 단독주택을 개조한 카페와 고가구·도자기 공방 등 37개 점포가 들어섰다.


가을 문턱에 선 운리단길가을 문턱에 선 운리단길 (청주=연합뉴스) 김형우 기자 = 17일 청주 흥덕구 운천동 '운리단길'에서 한 시민이 은행나무가 늘어선 골목을 걷고 있다. 2026.10.17 vodcast@yna.co.kr


오래된 주택가 골목은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 뛰놀던 추억을, 또 다른 이에게는 조용한 만남의 공간을 떠올리게 한다.


서문규(36) 씨는 "어릴 적 골목에서 놀던 추억 때문에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2021년 8월 이곳에 카페를 연 이연국(33) 씨는 "조용하고 차분한 동네 분위기가 좋다"며 "소개팅하러 오는 손님들도 많다"고 전했다.


인근 흥덕사지와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는 역사 탐방도 즐길 수 있다.


대전역 뒤편 소제동 철도관사촌에서는 낡은 관사와 여관을 고친 카페와 레스토랑, 갤러리들이 여행객을 맞는다.


소제동 카페 찾은 관광객소제동 카페 찾은 관광객 [촬영 이재림]


주말 친구와 대전을 찾은 김주영(31·경기 성남) 씨는 "빵 축제에 오려고 왔는데 대전역 근처 천변에 이렇게 분위기 좋은 곳이 있는 줄 몰랐다"며 "한나절 이상 시간을 보내도 좋겠다 싶을 만큼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충남 공주 제민천 주변에도 오래된 한옥과 주택을 고친 카페와 책방이 들어섰다.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와 아담한 골목에는 옛 도심의 정취가 남아 있다.


◇ 관광객 몰리지만 주차는 불편…골목상권 지속 가능성이 숙제


낡은 골목이 관광 명소로 떠오르면서 주차난과 상인들의 안정적인 정착이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대전 소제동에서는 이면도로에 주차한 차량과 보행자가 뒤섞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대전 소제동 골목대전 소제동 골목 [촬영 이재림]


한 업주는 "손님이 늘어난 건 감사하지만 주차 문제로 찾아오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계속 듣는다"며 공영주차장 확충과 보행자 전용 구간 확대 필요성을 제기했다.


기형규 부회장도 "관광객이 지속해서 찾는 관광지가 되려면 주차와 숙박 여건을 개선하고 먹거리와 즐길 거리를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젊은 창업자들이 골목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청주 운리단길상인회는 올해 주민들과 상생협약을 맺고 임대료를 5년간 동결하기로 했다.


권오준(68) 상인회 사무국장은 "어떻게 하면 이 동네에서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가지고 뿌리를 내릴 수 있느냐, 거기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이재림 전창해 김형우 노승혁 이영주 김상연 류호준 이재현 기자)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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