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골목] 캐리어 끌고 카메라 들고…과거·미래 공존의 남부권 '핫플'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10-18 08:30

청년들 "데이트하고 옷 사러 매달 찾아와요"…상권도 활기 돌아


제주 탑동부터 경주 황리단길·전주 객리단길까지 '개성 톡톡'


청년 창업·친환경·도시재생이 빚어낸 구도심의 '부활'


전주 객리단길 걷는 시민들전주 객리단길 걷는 시민들 (전주=연합뉴스) 김문경 기자 = 지난 16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고사동 객리단길을 시민들이 걷고 있다. 2026.10.16


(전국종합=연합뉴스) "주말마다 발 디딜 틈이 없어요. 예전엔 가던 사람도 (좁고 지저분해서) 발길을 돌리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젊은 친구들이 더 찾아와요."


16일 오후 찾은 전북 전주시 객리단길.


조선시대 전주부성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 고즈넉한 골목은 평일 낮임에도 캐리어를 끌고 온 관광객과 카메라를 든 젊은이들로 활기가 넘쳤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낡은 주택과 인구 감소로 쇠락해가던 구도심이었지만, 지금은 소박하고 개성 넘치는 맛집과 예쁜 카페들이 속속 들어서며 '젊음의 거리'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전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제주부터 경주, 부산, 대구에 이르기까지 남부권 주요 원도심과 낡은 골목길이 청년 창업가들의 감각적인 디자인과 지자체의 도시재생을 업고 세대를 아우르는 '핫플레이스'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제주시 탑동해안로 산책길제주시 탑동해안로 산책길 [연합뉴스 자료사진]


◇ 제주 : 탑동 원도심과 이중섭 거리의 재발견


제주국제공항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제주시 탑동은 1990년대 번화가였으나 2000년대 초 구도심이 쇠락하면서 차츰 발길이 뜸해졌던 곳이다.


하지만 2020년 이후 친환경과 감각적 이미지를 내세운 글로벌 브랜드와 대기업, 신진 브랜드 매장이 잇따라 둥지를 틀면서 도민은 물론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디앤디파트먼트'를 비롯해 업사이클링 가방 '프라이탁', 코오롱스포츠 친환경 매장 '솟솟 리버스', 수제맥주 '맥파이', 아웃도어 브랜드 '살로몬'과 '헬리녹스', 워케이션 숙소 '맹그로브 제주시티', 로컬 시트러스 브랜드 '귤메달' 등이 자리 잡았다.


제주의 옛 정취와 새로운 상업·문화 콘텐츠가 공존하며 원도심에 새로운 활력과 경쟁력을 불어넣고 있다.


서귀포시 '이중섭 거리' 역시 한국전쟁 당시 피난 와 머물던 화백의 초가와 이중섭 미술관, 아기자기한 공방들이 어우러져 깊은 예술의 향기를 전하고 있다.


여수 고소동 천사벽화마을여수 고소동 천사벽화마을 [연합뉴스 자료사진]


◇ 전남·광주 : 여수 고소동 벽화마을과 해남 북평 영화의 거리


여수시 고소동 벽화마을은 2009년부터 주민 중심으로 조성한 1천650m 규모의 골목길에 여수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벽화가 그려진 야외 미술관이다.


여수 앞바다 풍경과 해상 케이블카를 조망하며 걷는 재미가 크고, 지나치게 붐비지 않아 특유의 주거지 분위기가 잘 유지되고 있다.


영화 촬영지로 주목받는 해남 북평면 남창리 일대는 1980년대 감성의 포니 경찰차와 영화 속 파출소를 재현한 공간, 벽화가 어우러져 이색적인 볼거리를 선사한다.


해남군은 주민들과 함께 '북평면 손님맞이 마을지도'를 제작해 숨은 명소를 안내하고 있다.


부산 감천문화마을 찾은 '트래블 버블' 싱가포르 관광객부산 감천문화마을 찾은 '트래블 버블' 싱가포르 관광객 [연합뉴스 자료사진]


◇ 경남·부산 : 창원 소리단길과 부산 전포사잇길·감천문화마을


경남 창원시 중동의 '소리단길'은 조용한 주택가였으나, 청년 창업가들이 빈 건물에 감각적인 카페와 레스토랑을 채우면서 창원의 대표 핫플로 자리 잡았다.


주민과 상인이 함께하는 음식 페스타와 플리마켓이 열리고, 유휴시설 리모델링도 이어지며 골목에 역동적인 활기를 더하고 있다.


부산진구 '전포사잇길'은 하루 평균 청년 방문 인구가 38만명을 넘어서며 서면의 새로운 청년 명소로 급부상했다. 1960∼70년대 공구상가와 주택가였던 골목이 감각적인 편집숍과 음식점으로 탈바꿈했다.


한국의 '마추픽추'로 불리는 사하구 '감천문화마을'은 1950년대 피란민 정착촌의 역사를 간직한 계단식 주거지로, 외국인 관광객 비율이 60∼80%에 달하는 글로벌 명소다.


감천문화마을은 1950년대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계단식 집단 주거지다.


다만 과잉 관광 피해를 막기 위해 주민 거주 공간은 오후 6시 이후 출입을 통제하는 등 특별관리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전주 객리단길 걷는 시민들전주 객리단길 걷는 시민들 (전주=연합뉴스) 김문경 기자 = 지난 16일 오후 전북 전주시 완산구 고사동 객리단길을 시민들이 걷고 있다. 2026.10.16


◇ 전북 : 도시재생의 모범, 전주 한옥마을


전주시 교동 한옥마을 일대는 30여 년 전만 해도 낡은 가옥과 인구 감소로 활기를 잃어가던 구도심이었으나, 대규모 한옥촌의 유산을 살린 성공적인 도시재생사업 덕분에 전국 최고의 관광 명소로 탈바꿈했다.


경기전, 전동성당, 전주향교 등 고즈넉한 문화유산이 전통 한옥의 '느림의 미학'과 조화를 이루며 도시민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으며, 관광객의 발길은 인근 구도심 전체의 상권 활성화까지 견인하고 있다.


남부시장의 한 상인은 "한옥마을과 전통시장을 잇는 골목이 지역 상권 활성화의 새로운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면서 "식당 앞에 길게 줄지어 한 시간씩 웨이팅(대기)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큰길에서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골목 덕분에 상권에 활기가 돌고 있다"고 반겼다.


전주시 중앙동에는 조선시대 출장 나온 관리들의 숙소로 쓰였던 전주객사(客舍·풍패지관)가 있다. 몇 년 전부터 객사 뒤편으로 작지만, 다양한 맛집과 예쁜 카페 등이 속속 들어서며 일대가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객리단길'로 되살아났다.


객리단길에서 만난 연주가 정영광(30)·정지윤(29·여)씨는 "공연과 데이트, 옷 구매를 위해 객리단길을 한 달에 1∼2번 정도는 꼭 찾는 편"이라며 "주변에 높은 빌딩이 없어 마음이 차분하고 편안해지는 분위기라 자주 오고 있다"고 말했다.


붐비는 경주 황리단길붐비는 경주 황리단길 [연합뉴스 자료사진]


◇ 대구·경북 : 경주 황리단길과 대구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경주의 대표 상권인 '황리단길'은 전국적인 인기를 넘어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관광지로 도약했다.


대릉원과 첨성대 등 신라 유적과 인접한 이곳은 지난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이후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며 국제적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내남사거리에서 황남초교 사거리까지 700m 구간인 황리단길은 인근 대릉원, 첨성대, 월성 등 다양한 신라시대 유적을 관람하려는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휴일·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올해 상반기 외국인 방문객이 전년 동기보다 19% 늘어 70만명을 넘어서는 등 APEC 개최 이후 높아진 국제적 인지도가 관광 수요로 이어지고 있다.


경주시는 황리단길을 찾은 관광객이 길 건너편 구도심 상가에도 찾도록 다양한 노력을 벌이고 있다.


대구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대구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구 중구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하 김광석길)'도 지역 대표 관광지로 꼽힌다.


김광석길은 2009년 방천시장 문전성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가수 고(故) 김광석이 살았던 대봉동 방천시장 인근 골목에 그의 삶과 음악을 주제로 조성된 벽화 거리다.


관할 중구는 시장 주변 환경을 정비한 뒤 이 길의 제방을 따라 만들어진 벽면에 김광석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벽화 40여개를 그려 넣었다.


길 곳곳에는 스피커를 설치해 김광석의 노래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도록 했고 의자를 설치해 쉴 수 있도록 배려했다.


김광석 스토리하우스, 야외 콘서트홀, 공영주차장 등 인프라를 조성해 영화관, 문화공연, 콘서트, 버스킹 공연 등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다만 최근에는 전성기 때보다는 관광객 발길이 주춤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지자체와 상인 등이 새로운 도약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전주시 관계자는 "오래된 골목에 다시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는 어쩌면 그곳에서 잊고 지냈던 여유와 사람 냄새를 발견하기 때문인지 모른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골목의 인기가 지속되려면 (골목을) 일시적인 유행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임대료 상승과 기존 상인·주민의 이탈, 소음과 쓰레기 문제 등을 함께 살펴 그곳에서 오랫동안 삶을 이어온 주민과 상인의 가치를 지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손형주 장아름 백나용 김선경 박세진 김문경 김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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