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파업 등 현실적 우려에 공감대…2회만에 시청률 14.9%
천재 의사 연기한 김지원…탁월한 완급 조절 연기로 호평
'오란씨걸'에서 '원톱 배우'로 우뚝…"시대적 문제의식 얘기하는 배우"
일본 드라마 원작에 한국적 정서 재해석…의사 희화화엔 지적도
배우 김지원 [SBS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장진리 기자 = "의사 면허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실패도, 하지 않습니다."
17일 방송계에 따르면 SBS 금토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이하 '닥터X')에서 배우 김지원(34)이 연기하는 계수정은 오직 자신의 실력만을 믿는 천재 의사다.
의료계의 기득권에 편입되길 거부하는 그는 원장과 교수의 회진은 물론 회식, 친목을 위한 대화도 하지 않는다. 병원장의 권력에 절대복종하는 의사들을 향해선 "너네 같은 무책임한 인간들. 너네 진짜 후져"라고 거침없이 일갈한다.
"실패는 없다"고 계수정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사는 장르를 넘나드는 변신으로 다양한 흥행작을 쌓아 온 김지원의 성장 궤도와도 절묘하게 겹친다.
◇ 천재 의사로 돌아온 김지원…통쾌한 일갈
김지원은 업계에서 장르를 타지 않는 흥행 배우로 통한다. 작품 선택에 매우 신중하며, 한 작품에만 깊고 충실히 몰입하기 위해 다작을 피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난 9일 첫선을 보인 '닥터X'는 그가 '눈물의 여왕'(2024)으로 안방에 흥행 돌풍을 일으킨 후 2년 만에 선보이는 차기작이다. 데뷔 후 처음으로 의학물에 본격 도전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 작품은 2012∼2021년 총 일곱 시즌에 걸쳐 방송한 일본 TV아사히 드라마 '닥터X: 외과의 다이몬 미치코'를 원작으로 한다.
뛰어난 실력을 갖춘 비주류 의사가 의료계의 권위와 부조리에 맞선다는 기본 설정은 유지하면서 한국의 현실과 정서에 맞게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이것은 한 마리 늑대의 이야기"라는 반복적인 내레이션을 비롯해 일본 드라마 특유의 만화적인 연출은 살렸다. 대신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파업 등 국내에서 논란을 빚은 의료계의 현실을 작품에 반영했다.
닥터X 출연하는 김지원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배우 김지원이 7일 서울 양천구 SBS사옥에서 열린 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10.7 mjkang@yna.co.kr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는 "계속된 의료 파업으로 우리나라의 의료 체계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며 "대중이 답답하게 여기는 지점을 계수정의 목소리를 통해 시원하게 긁어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인공의 외형과 성격에도 변화를 줬다. 원작 주인공의 화려한 화장과 하이힐은 수수한 옷차림과 투박한 부츠로 바뀌었다. 세상 물정에 어두워 보이는 성격은 그대로 유지하되, 잘 먹는 식성은 음식에 유독 집착하는 모습으로 발전시켜 캐릭터의 개성을 강조했다.
김지원은 이처럼 상반된 면모를 지닌 계수정을 완급 조절이 돋보이는 연기로 표현한다. 평소에는 어딘가 허술하고 엉뚱해 보이다가도 수술실에 들어서면 냉철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극명한 간극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여성 의사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그동안 의학 드라마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지닌 천재 의사는 주로 남성 배우들의 전유물이었다.
물론 여성 의사가 주인공인 작품도 적지 않았다. 다만 여성 의사를 내세운 '외과의사 봉달희'(2007), '병원선'(2017), '닥터 차정숙'(2023) 등이 의사로 성장하거나 삶의 전환점을 맞는 인물의 변화에 무게를 뒀다면, '닥터X'는 이미 독보적인 실력을 갖춘 여성 의사의 '다크 히어로' 같은 활약을 조명한다.
배우 김지원 [SBS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 '오란씨걸'에서 '원톱 주연'으로…"성실함·연기력 빛 발해"
김지원의 호연에 '닥터X'는 시청률 면에서도 쾌조의 출발을 보였다. 1회는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11.4%로 올해 방영한 미니시리즈 중 가장 높은 첫 회 시청률을 기록했고, 2·3회는 각각 14.9%와 15.1%로 뛰었다.
이는 4회 만에 20%를 돌파하며 올해 드라마 중 최고 시청률을 쓴 '김부장'에 견줄만한 수치로, 시청률 20%를 넘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SBS 금토드라마로 방영한 후 넷플릭스로 공개되는 이 작품은 공개 3일 만에 공식 사이트 투둠에서 집계한 비영어 쇼 1위로도 직행했다.
이 같은 성과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업계에선 익숙한 이미지에 안주하지 않고 매 작품 새로운 인물에 도전해 온 김지원이 원톱 주인공으로 마침내 자신이 쌓아온 내공을 발휘한 것으로 평가한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김지원은 조연부터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와 지금에 이르렀다. 좋은 연기와 태도로 시너지를 내며 상대를 함께 빛나게 해주는 배우"라며 "오래 지켜온 투철한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마침내 원톱 주연작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원은 그룹 빅뱅과 함께한 휴대전화 광고로 데뷔해 '오란씨걸'이라는 애칭을 안긴 음료수 광고로 얼굴을 알렸다. 배우로서의 진가를 본격적으로 드러낸 건 단연 로맨스물이다.
계급의 장벽에도 계산 없이 사랑에 돌진하는 군의관을 연기한 '태양의 후예'(2016), 아나운서를 꿈꾸는 취업준비생으로 현실 청춘을 대변한 '쌈, 마이웨이'(2017), "넌 뭐든 할 수 있다"는 응원을 담은 '추앙'을 갈망하는 시청자들을 위로한 '나의 해방일지'(2022), 뇌종양으로 시한부를 선고받고 진정한 사랑과 부부애를 알게 된 재벌 3세가 된 '눈물의 여왕'(2024) 등으로 배우로서의 진면모를 보여줬다.
흥행 성적도 뒤따랐다. '태양의 후예'는 방영 당시 최고 시청률 38.8%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고, 김지원이 첫 주연을 맡은 '쌈, 마이웨이'도 5.4%에서 출발해 13.8%로 종영하는 등 시청률이 약 2.6배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전작인 '눈물의 여왕'의 경우 마지막회가 최고 시청률 24.9%를 기록하며 역대 tvN 드라마 최고 시청률 기록을 썼다.
김지원 '볼 콕'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배우 김지원이 12일 서울 광진구 비스타워커힐에서 열린 이탈리아 보석 브랜드 불가리의 하이 주얼리 컬렉션 '에클레티카' 이벤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5.12 scape@yna.co.kr
◇ "김지원, 시대의 얼굴 될 수 있는 배우"…의사 희화화는 논란
김지원이 꾸준히 흥행작을 내놓는 배경엔 시대의 고민을 담아낸 작품 선택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교수는 "김지원은 '쌈, 마이웨이'로 사회에 자리 잡지 못한 청년의 문제를 얘기했고, '태양의 후예'에선 단순히 로맨스 드라마의 주체적인 여성을 뛰어넘는 자기 주도적 삶에 대해 잘 보여줬다"며 "'눈물의 여왕' 역시 현실 감각을 부여한 재벌 3세의 인간적인 캐릭터를 다뤘다. 이렇게 형성된 공감대가 시청률로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지원의 대본 선택은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하는가?'라는 자기 고민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며 "연기 이력이 더 쌓이면 그가 당대의 현실을 보여주는 '시대의 얼굴'이 될 가능성도 있는 배우"라고 내다봤다.
다만 '닥터X'는 방송 후 의료진을 무능한 악역으로 희화화하고 의학적 고증에도 충실하지 못했다는 일부의 지적을 받고 있다.
자신을 정형외과 의사라고 소개한 한 시청자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닥터X'가 의료 현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는다는 이유로 13일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했다며 접수 화면을 공개했다.
드라마의 현장 의학 자문으로 참여한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SNS를 통해 "의학적으로 틀린 부분이 나온다면 자문과 제작진이 싸우다가 자문이 패배한 걸로 보시면 된다"고 언급했다.
통쾌함과 우려를 동시에 낳은 '닥터X'의 설정에 윤 교수는 "이 작품은 생각하기보다는 소비하게 만드는 대중적인 스토리텔링 전략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서 우려가 되는 지점이 생길 수 있다"면서도 "드라마를 현실과 100% 비교하는 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